▲ 미국 정부의 강도 높은 반도체 규제에도 중국 기업들이 기술 발전 성과를 과시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정부의 강도 높은 규제에도 기술 발전에 꾸준한 성과를 내고 있다. 시진핑 정권의 적극적 지원 정책에 힘을 얻은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이 이에 대응해 더 강력한 수출 및 투자 제한 조치를 꺼내든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기업도 동반 타격을 피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3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중국 화웨이가 새 스마트폰 ‘메이트60프로’ 출시 계획을 내놓은 뒤 미국에서 중국의 반도체 기술 발전 속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화웨이가 미국의 반도체 등 첨단 기술 규제를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트60프로는 중국의 자체 기술로 개발하고 생산한 5G 통신모뎀 등 고사양 시스템반도체를 탑재하고 있다는 점을 기존 중국산 스마트폰과 가장 큰 차별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해당 반도체는 화웨이가 설계하며 중국 파운드리 업체 SMIC가 7나노 미세공정으로 제조한다.
7나노 공정은 5G 통신모뎀은 물론 고성능 프로세서와 인공지능(AI) 반도체 생산에 모두 쓰일 수 있는 첨단 기술에 해당한다.
엔비디아 인공지능 반도체 주력상품 ‘A100’ 등 제품이 대만 TSMC의 7나노 공정기술을 활용한다.
중국 업체가 7나노 반도체 제조 능력을 갖춰낸 것은 결국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발전 잠재력을 증명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미국은 중국이 이러한 고사양 반도체 제조 능력을 갖출 수 없도록 트럼프 정부 시절부터 반도체 장비 및 소프트웨어 수출을 금지하면서 적극적으로 견제해 왔다.
특히 화웨이는 중국 정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의혹으로 가장 강력한 규제 대상에 놓였다.
이런 상황에서 화웨이의 새 스마트폰이 중국의 가장 앞선 반도체 기술을 적용했다는 점은 다분히 미국 정부를 겨냥한 것으로 볼 만한 여지가 충분하다.
화웨이가 해당 제품을 공개한 시점은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한 것과 같은 날이라는 점도 중요한 배경으로 주목받는다.
워싱턴포스트는 “수 년째 미국의 규제를 받던 화웨이는 러몬도 장관 방문을 노려 새 스마트폰을 공개했다”며 “미국이 중국의 기술 발전을 막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글로벌타임스 등 관영매체도 화웨이 스마트폰 출시가 담고 있는 의미를 강조하는 보도를 내놓았다.
화웨이 제품에 적용된 반도체를 통해서 미국이 주도하는 무역 전쟁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창신메모리(CXMT) 역시 최근 인공지능 반도체에 주로 쓰이는 HBM(고대역) 메모리반도체와 유사한 사양을 갖춘 신형 메모리를 공개하며 힘을 보탰다.
미국 정부가 가장 민감하게 바라보는 인공지능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이 꾸준히 발전해나가고 있다는 점을 과시한 셈이다.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메모리반도체 생산공장. |
미중 반도체 갈등과 관련한 책 ‘칩 워’를 쓴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화웨이와 같은 중국 기업이 아직 상당한 발전 잠재력을 안고 있다는 점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더 이상 중국과 벌이는 반도체 전쟁에서 승리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크리스 밀러는 미국 정부가 화웨이 스마트폰 출시를 계기로 더 강력한 대중국 규제 도입 가능성을 논의하게 될 수도 있다고 바라봤다.
기존에 도입했던 반도체 장비 및 기술 수출규제 등 조치가 중국의 기술 발전 의지를 꺾지 못하고 오히려 더 자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중 반도체 갈등이 앞으로 더 심화하는 국면에 들어서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에도 부정적 여파를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SMIC 등 중국 기업이 기술력에 자신감을 찾고 반도체 생산을 확대해 나가면서 전 세계적으로 가격 경쟁을 촉발하게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미국이 중국 반도체 산업을 더 강력하게 규제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중국에 반도체 생산공장을 운영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압박을 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미국 규제로 중국에 원칙상 첨단 반도체 시설 투자를 할 수 없지만 한시적으로 유예기간을 부여받은 상태다. 이러한 정책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도 충분하다.
중국을 최대 수출국이자 주요 생산거점으로 두고 있는 한국 반도체기업 입장에서는 이처럼 중국의 기술 발전과 미국의 규제 강화가 모두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워싱턴포스트는 “중국은 미국 규제가 시작된 이래 세계 반도체 산업이 미국 중심으로 흘러가는 일을 막으려는 시도를 강화하고 있다”며 “다만 중국이 반도체 기술력을 높이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
▲ 중국 SMIC 반도체 생산공장. < SMIC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