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준 기자 hjkim@businesspost.co.kr2023-09-03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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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전북 순창군 쌍치면, 충남 홍성군, 경북 예천군, 강원 고성군.
이들은 모두 올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곳들이다. 전 세계적 기후변화로 폭설, 폭우, 태풍, 산불 등 각종 재난이 늘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이 8월29일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강원 고성군, 경북 경주시 산내면, 경북 칠곡군 가산면 등 3개 지자체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추가 선포했다. <연합뉴스>
그만큼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되는 사례도 늘고 있지만 제도의 허점이 적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공시설 복구 지원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 특별재난지역 선포의 특성상 상당한 혜택을 받는 지자체와는 달리 이재민들이 당장 쓸 수 있는 실질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재난예산을 올해 대비 44% 증액하는 등 재난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총예산이 72조945억 원으로 올해 대비 10.4%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행정안전부가 8월29일 공개한 ‘2024년 행정안전부 예산안’에 따르면 2024년 재난예산은 모두 1조8939억 원이 편성됐다. 1조3093억 원 규모였던 올해 재난 관련 사업비와 비교하면 5846억 원 늘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지하차도 침수 우려 시 자동으로 출입을 통제하는 차단기 확대 설치에 135억 원(67억 원 증가), 재해위험지역 정비 예산이 8629억 원(1596억 원 증가)이 편성됐다. 국가재난관리정보시스템 고도화 예산은 올해보다 105억 원 늘어난 186억 원이었다.
피해복구 지원 등에 쓰이는 재난대책비는 6천억 원이 편성됐는데 이는 올해 1500억 원에 비해 4배 규모에 해당한다.
재난대책비는 특별재난지역 지원에 활용되는 예산이다.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하면 지역의 재난 복구를 위해 중앙정부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심의를 거쳐 재난대책비를 교부한다.
최근 특별재난지역 선포 사례가 늘고 있어 관련 예산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8월29일 제6호 태풍 카눈으로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강원 고성군·경북 경주시 산내면·칠곡군 가산면 등 3개 지방자치단체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추가 선포했다.
윤 대통령은 앞서 8월14일 태풍 카눈으로 피해를 본 대구 군위군과 강원 고성군 현내면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했다.
7월에는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입은 전북 익산, 충북 청주, 경북 예천군, 충남 공주·논산 등 13개 지자체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기도 했다.
하지만 재난예산의 증가를 특별재난지역 이재민들이 직접적으로 체감할지는 미지수다. 공공시설 복구 지원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 특별재난지역 제도의 한계 때문이다.
지자체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면 행정안전부는 재정자립도와 지방 정부의 재해예방 노력지수 등을 고려해 지자체가 부담하는 피해복구비의 50~80%를 국고로 지원한다.
피해복구비는 집중호우로 파손된 시설 복구나 신축에 사용된다. 포항시를 예로 들면 2017년 지진으로 구청사에 균열이 생기자 신청사를 건설했는데 건설비 가운데 100억 원은 특별재난지역 선포 뒤 행정안전부가 국비로 지원했다.
다만 특별재난지역 예산과 지방비를 합쳐서 집행하는 피해복구비의 특성상 피해예방이라는 명목으로 재난 피해와 상관없어 보이는 사업에 자금이 융통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감사원이 지난해 4월 발표한 ‘재해재난 대비 사업 예산 운용실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행정안전부는 2019년 강원도 고성군과 강릉시 등에 발생한 산불 피해 복구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지원대상이라고 볼 수 없는 농산물 보관창고, 쓰레기 분리시설 등 공공시설 신축사업에 재난안전관리 특별교부세 43억 원을 지원했다.
그나마 이런 혜택을 받는 것은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된 곳뿐이다. 재난을 입었으나 피해액이 기준을 넘지 못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지 못한 곳은 특별재난지역에게만 주어지는 재난대책비를 지원받지 못한다.
행정안전부 내년 예산안에서 지방교부세 규모가 올해에 비해 11.3%(8조5172억 원) 줄어든 만큼 특별재난지역이 되지 못한 일반재난지역은 오히려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도 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자체가 상당한 혜택을 받는 것과 별개로 이재민이 얻는 혜택은 일반재난지역과 큰 차이가 없다. 인명·주택·생계 피해와 관련해 지급되는 재난지원금은 특별재난지역 선포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이재민에게 동등하게 주어진다.
특별재난지역 주민은 일반재난지역 주민과 비교해 건강보험료·전기료·통신요금·도시가스요금 감면·농지보전부담금 면제 등 12개 항목에서 추가 지원을 받기는 한다.
그러나 대부분 감면·면제 등의 간접 지원 방식에 그쳐 당장 도움이 필요한 이재민에겐 커다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의견이 많다.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피해 보상을 받지 못한 이재민들은 집회에 나서고 있다.
▲ 전북 익산지역 농민들이 8월28일 전북 익산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삭발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북 익산지역 농민 500여 명은 8월28일 전북 익산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폭우로 시설하우스가 물에 잠기는 등의 피해를 봤지만 실제 피해 보상은 일부에 그치고 있다”며 실질적 피해보상과 함께 수해 대책의 조속한 시행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지자체를 믿고 힘을 내 피해복구에 집중해 왔다”며 “하지만 특별재난지역 선포 이후 피해 신고와 접수에서 제외된 피해 항목이 많고 무엇보다 피해 농가에 대한 직접적 보상은 미미하다”고 덧붙였다.
2019년에 있었던 강원 고성산불 이재민도 제대로 된 피해 지원을 받지 못했다. 2019년 강원 속초·고성 산불 당시 국비 지원액은 주택 전파 기준으로 가구당 최대 1300만 원에 불과했다. 도비와 군비로 지원된 금액을 합쳐도 6천만 원 가량이 전부였다.
2019년 고성 산불 주민들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이들은 국민 성금으로 가구당 7천만 원 상당을 받을 수 있었지만 2018년 고성에서 발생했던 화재 이재민들은 국민 성금으로 242만 원을 받았다.
정치권에서도 국민 성금에 의존하는 정부의 재난지원금을 현실화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던 지난해 4월5일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열린 간사단 회의에서 “얼마전 동해안 산불로 많은 분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지만 이재민에게 지원금 규정상 주거비 1600만 원과 1인당 구호비 48만 원만을 지원한다는 사실을 접하고 숨이 턱 막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계 10대 경제강국 대한민국이 언제까지 국민 성금에 의존해 이재민들 도와야 하느냐”며 “재난지원금을 현실에 맞게 인상을 검토할 때”라고 강조했다.
주택 전파 지원금은 일률적으로 1600만 원을 지원해 왔으나 지난해 태풍 힌남노를 계기로 피해주택의 면적에 따라 최소 2천만 원에서 최대 3600만 원까지 지원하는 것으로 개편됐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