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쇼핑이 부산에 짓기로 한 부산롯데타워 조감도. 첫 건축허가가 난 지 23년 만에 본격적으로 건물이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롯데쇼핑> |
[비즈니스포스트] “부산지역의 경제 부활과 자존심 회복의 신호탄.”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2000년 12월. 롯데그룹이 부산에 제2롯데월드(현 부산롯데타워)를 짓겠다며 기공식을 열었을 때 나왔던 평가다.
당시만 해도 2005년쯤이면 부산에 당시 기준으로 세계 최고 높이의 빌딩이 생기는 듯 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웬일인지 속도가 나지 않았다. 본격적 건설에 들어가기까지 특혜 논란과 자금 문제, 롯데그룹 총수의 부재 등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롯데쇼핑은 17일 오전 11시 부산 중구 부산롯데타워 공사현장에서 기공식을 열었다.
박형준 부산시장과 김상현 롯데쇼핑 대표이사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사실 부산롯데타워의 기공식은 이번이 세 번째다. 이미 2000년 12월18일 같은 자리에서 부산롯데타워로 불리기 직전 명칭인 부산 제2롯데월드라는 이름으로 기공식이 열린 적이 있다. 2009년 3월에도 기공식이 또 한 차례 열렸다.
기공식은 통상 한 건물이 올라할 때 이를 기념하고 안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한 번만 열린다. 이 행사가 세 번씩이나 열리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의미다.
기공식이 세 차례나 열릴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부산롯데타워 얘기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부터다. 부산에 대한 애정이 많았던 창업주 신격호 회장이 부산에 롯데그룹의 상징을 하나 만들고 싶어 했고 대형 건축물 건설 계획을 추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부산 광복동이 부산롯데타워 부지로 선정된 이유도 롯데그룹에 매우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신격호 회장은 1940년대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20대 청년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는데 당시 광복동 일대에서 생활하며 영도대교의 도개 모습을 보며 성공을 꿈꿨다고 한다.
부산시는 1995년 시청을 새 곳으로 옮기면서 옛 시청부지를 매각하려고 했는데 마침 부산롯데타워 건설 계획을 가지고 있던 롯데그룹에게 이 부지를 팔았다.
롯데그룹은 부지를 사들인 뒤 토지보상계획과 교통영향평가 등을 거쳐 부산시와 조율 끝에 2000년에 부산롯데타워 건축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부지매입비와 공사비 등 모두 1조2천억 원을 투자하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첫 발을 떼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기공식 이후 본격적으로 착공에 들어갔어야 할 건물은 좀처럼 올라가지 않았다. 이 프로젝트는 100여 층 높이의 타워와 백화점·엔터테인먼트동 등 부속건물 등을 짓는 공사로 구성돼 있는데 부속건물만 지어지고 나머지 타워 공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부산시는 우선 건설된 롯데백화점 광복점을 놓고 2009년 12월 임시사용승인 허가만 내렸다. 일반적으로 건물이 다 지어지면 준공 허가를 내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함께 짓기로 한 타워를 건설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임시사용만 승인한 것이다.
롯데그룹은 2009년 3월부터 지상 107층, 총 높이 510m 규모의 타워건물 착공에 들어갔다. 이 시기 다시 기공식을 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롯데그룹이 3년에 걸쳐 지하 8층까지 기반을 다지는 공사를 마무리하면서 2016년경에는 드디어 부산롯데타워가 건설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번졌다.
그러나 용도변경 문제가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롯데그룹은 2009년 11월 107층 높이의 타워동 가운데 아파트 35개 층과 오피스텔 등 주택시설 용지 83개 층의 용도지구 지정을 변경해 허가해달라고 부산시에 요청했다.
당시 롯데그룹은 사업성 부족을 이유로 들었다. 상업시설 유치만으로는 타워 건설에 따른 수익을 보장하기 힘드니 분양수익을 낼 수 있는 주거시설을 유치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으로 해석됐다.
롯데그룹은 부산시가 용도변경을 허가해주지 않으면 타워동 건설이 힘들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타워 건설을 놓고 부산시를 강하게 압박한 셈이다.
실제로 롯데그룹은 부산해양수산청에 두 차례에 걸쳐 용도변경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한 뒤 타워 건설과 관련해 기초공사만 마무리하고 단 1층도 올리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반발이 거셌다.
시민단체 좋은롯데만들기 부산경남운동본부는 2015년 12월 롯데백화점 광복점 앞에서 ‘부산롯데타워 특혜개발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롯데가 시간만 끄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며 “앞으로 3년만 버티면 롯데는 의도대로 주거지 용도변경을 시도할 것이며 그에 따른 막대한 분양 수익을 챙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산시도 이런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롯데그룹에 용도변경을 허가해주면 특혜를 봐줬다는 비난이 거셀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롯데그룹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았다.
롯데그룹의 태도를 종합해볼 때 결국 자금 부족이 부산롯데타워 건설에 속도를 낼 수 없었던 이유가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부산시를 향해 용도변경을 신청하며 내세웠던 논리가 ‘사업성 부족’인데 결국 초대형 빌딩을 지을 돈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다.
▲ 부산롯데타워는 기공식만 총 3차례 열렸다. 통상 한 차례면 족한 기공식이 세 번이나 열렸다는 것은 이 사업에 우여곡절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2009년 3월 부산롯데타운 신축현장에서 열린 부산롯데타운 타워동 기공식 모습. <연합뉴스> |
실제로 한국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호텔롯데가 2016년경 기업공개 계획을 밝힐 때 조달할 자금 일부를 부산롯데타워 조성에 쓸 것이라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롯데그룹이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왕자의 난’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는 점도 부산롯데타워 건설 일정이 지연된 이유로 꼽힌다.
신동빈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두고 신동주 회장의 공격을 방어하느라 힘을 쓰다 보니 부산롯데타워 사업을 챙길 만한 여력이 줄어들었을 수 있다.
롯데그룹에 리더십이 부재한 시기도 있었다. 신 회장은 박근혜 게이트에 연루돼 경영비리 등으로 재판을 받아 구속되기도 했는데 이 시기 롯데그룹의 굵직한 사업은 모두 중단되다시피 했다.
결국 롯데그룹은 여러 의혹뿐 아리나 내부적으로도 혼란스러운 시기를 지내며 부산롯데타워 건설에 좀처럼 나서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 사업에 갑자기 탄력이 붙기 시작한 시기는 지난해부터다.
박형준 시장이 지난해 1월경 롯데그룹을 향해 부산롯데타워 건립을 압박하면서 부산 롯데백화점 광복점의 임시사용 승인을 중단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내는 등 강수를 두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타워 건설을 이유로 롯데백화점을 짓게 해 준 것인데 타워를 안 짓는다면 백화점도 운영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 박 시장의 논리였다.
결국 롯데그룹은 지난해 6월 부산롯데타워 건립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22년 동안 지지부진했던 사업에 불씨를 다시 살리기로 했다.
이후 사업 주체인 롯데쇼핑은 지난해 말 부산시에 부산롯데타워 건축허가를 다시 냈고 올해 5월에는 전담 태스크포스까지 구성하며 타워 건립을 본격화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뒤 8월17일 오늘에서야 세 번째 기공식이 열린 것이다.
부산롯데타워는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름과 높이도 수없이 변경됐다.
애초 롯데그룹이 구상했던 타워는 높이 510m의 건물이었으나 수차례의 설계변경을 통해 결국 342.5m까지 낮아졌다. 이는 부산시 기준으로만 봐도 초고층 주상복합건물 엘시티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부산롯데타워라는 이름도 처음에는 부산 제2롯데월드, 부산롯데타운타워 등으로 불리다가 지난해 시민 공모를 통해 명칭이 부산롯데타워로 확정됐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