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3-08-17 15: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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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서울 신림역과 경기도 성남 서현역 등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이 이어지면서 국회도 입법을 통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다만 흉악범죄에 대한 처벌수위를 높이는 것이 묻지마 범죄를 대응하는 데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존재해 법안의 국회 통과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 묻지마 범죄 처벌수위를 높이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병욱 의원실>
17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여야 의원들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무차별 범죄를 엄중하게 처벌하는 내용의 법안을 여러 건 발의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묻지마 범죄를 법률적으로 규정하고 해당 범죄에 형량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16일 대표발의했다.
김 의원의 개정안은 ‘묻지마 범죄’를 뚜렷한 동기 없이 불특정한 2인 이상에게 신체 위해를 가한 사람으로 명시했다. 또 묻지마 범죄로 피해자를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 최고 25년 이하의 징역,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최고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처벌조항도 마련했다.
김 의원뿐 아니라 다른 의원들도 묻지마 범죄에 현재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유정주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은 무차별 범죄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도 사회에 대한 증오심·적개심 등을 표출할 목적으로 살인·상해·폭행 등의 죄를 저질렀을 때 해당 죄 형량의 2배까지 가중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다수의 법안이 처벌 수위를 높이는 데 방점을 둔 데에는 묻지마 범죄를 향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는 인식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최근 신림역 및 분당 서현역에서 묻지마 범죄가 벌어지면서 시민들이 자신도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처벌수준을 강화해 범죄 예방 효과를 살리는 것이 우선이었다”고 개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대법원 판결서 인터넷 열람을 통해 2022년 8월17일부터 이날까지 1년 동안 ‘묻지마’로 검색한 결과 37건 가운데 집행유예가 선고된 경우가 9건 있었다.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진 사례에서 형량은 징역 1년~1년6개월이 대다수였다.
정부는 묻지마 범죄 억제를 위해 ‘가석방 없는 무기형’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실질적 사형폐지국인 점을 고려해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을 영구 격리함으로써 재범을 막겠다는 취지다. 법무부는 14일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신설한 형법 개장안을 입법예고했다.
▲ 한덕수 국무총리가 8월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 현안 관계 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국정현안 관계장관회의에서 “묻지마 범죄는 우리 사회의 상식과 기본 질서를 파괴하는 심각한 범죄”라며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을 도입해 강력한 범죄 억지력을 보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처벌 형량을 늘리는 법안을 두고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이미 사형으로 법정 최고형이 규정된 상황에서 처벌의 하한선을 높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2021년 9월 유정주 의원의 법률안 검토보고서에서 "현재 양형단계에서 범행의 동기 등을 참작하여 양형을 정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무차별 범죄를 가중처벌하는 규정을 법에 두지 않더라도 불법에 상응하는 형벌을 부과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사례에 비춰볼 때에도 강력한 처벌이 묻지마 범죄 발생을 줄일지 여부는 미지수라는 시각이 나온다. 일본은 지난 2001년 오사카의 이케다 초등학교에서 한 30대 남성이 흉기 난동을 벌여 초등학생 8명이 살해되고 15명이 크게 다치는 사건이 발행한 뒤 묻지마 범죄에 강력한 처벌로 대응하고 있다.
사형집행국가인 일본은 2022년 7월26일 지난 2008년 트럭을 돌진해 7명의 사망자와 10명이 부상자를 발생시킨 도쿄 아키하바라 사건 범죄자의 사형을 집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NHK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일본에서 매년 평균 3~4건씩 발생한 묻지마 범죄 발생 건수는 지난 2021년부터 2022년 초반까지 15건 이상으로 급증했다.
그럼에도 묻지마 범죄의 형량을 높이는 법안에는 여야의 공감대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잇따른 무차별 흉기난동 사건으로 강력 범죄자를 엄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병욱 의원실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2021년) 법사위가 법률을 검토할 때는 지금보다 묻지마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지 않은 상황이라 처벌 강화에 보수적 접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묻지마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만큼 처벌을 강화하자는 논의가 훨씬 쉬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무조건 처벌수위를 높이는 게 정답이라고 볼 순 없지만 적어도 묻지마 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법안을 발의했다”고 덧붙였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