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SMC가 일본에 새 파운드리 공장을 마무리하기 전부터 현지 고객사의 위탁생산을 대거 수주했다. 대만 TSMC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 <TSMC> |
[비즈니스포스트] 대만 TSMC가 일본 구마모토에 새 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마무리하기 전부터 소니 등 현지 고객사의 반도체 위탁생산 수주 실적을 대거 쌓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TSMC가 추가 공장 증설에도 자신감을 얻어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더 끌어올리고 반도체 생산 거점 다변화에도 결실을 거둘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6일 대만 경제일보 보도에 따르면 소니와 혼다 등 기업들이 잇따라 TSMC 일본 공장에서 생산되는 반도체를 수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소니의 반도체 자회사 소니세미컨덕터를 이끄는 시미즈 테루시 사장은 소니의 이미지센서 등 반도체 위탁생산 수요가 TSMC 새 반도체공장의 생산 능력을 웃돌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혼다 역시 구마모토 공장 건설이 마무리되면 TSMC에 처음으로 반도체 제조를 맡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를 위해 두 회사가 긴밀히 협력하겠다는 발표도 내놓았다.
TSMC 일본 반도체공장은 2024년 12월부터 고객사에 공급을 목표로 두고 있는데 벌써부터 파운드리 수주물량을 최대치 수준까지 확보했다는 의미다.
현재 TSMC가 구마모토에 신설하는 반도체공장은 22/28나노, 12/16나노 미세공정을 주력으로 도입할 계획을 두고 있다.
이는 주로 자동차용 반도체와 이미지센서에 활용되는 구형 공정으로 일본 내 고객사의 수요를 고려한 것이다.
특히 소니는 TSMC의 일본 반도체공장에 합작사로 참여해 직접 투자한 만큼 수주물량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공산이 크다.
경제일보에 따르면 TSMC는 이러한 현지 고객사의 수요와 일본 정부의 적극적 자금 지원을 고려해 공장 투자 금액을 당초 70억 달러에서 86억 달러(약 11조2400억 원)까지 늘렸다.
현재는 이와 비슷한 규모로 구마모토에 1곳의 공장을 더 짓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소니는 제2공장에도 합작법인 형태로 건설과 운영 비용을 투자하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류더인 TSMC 회장 역시 최근 주주총회에서 일본 정부가 현지 반도체공장 투자 확대를 원하고 있다는 언급을 내놓은 적이 있다.
소니는 스마트폰과 자동차 등에 활용되는 세계 이미지센서 시장에서 부동의 1위 기업이다.
그동안 이미지센서를 대부분 자체 공장에서 생산해 왔지만 제한적인 투자 여력과 공정기술 등을 고려해 TSMC에 위탁생산을 맡기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TSMC가 제2공장을 설립한다면 구형 공정뿐 아니라 10나노 미만의 첨단 미세공정 기술을 도입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자율주행과 고사양 인포테인먼트 등 기술 발전에 따라 자동차 분야에서도 점차 고성능 연산을 구현할 수 있는 미세공정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미지센서 역시 요구되는 성능 향상에 따라 점차 미세공정 중심으로 전환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여러 시장 상황이 TSMC의 수주 확대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 소니의 이미지센서 반도체 이미지. <소니> |
TSMC는 다수의 자동차용 반도체 고객사가 밀집한 유럽에도 이와 비슷한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
하반기부터 투자 절차를 본격화하는 독일 반도체공장에 주로 28나노급 미세공정 도입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지만 향후에는 첨단 공정 생산라인을 구축할 가능성도 언급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와 유럽연합 당국, 현지 고객사가 모두 TSMC의 반도체공장 투자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앞세우고 있는 상황은 TSMC의 중장기 전략 차원에서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꼽힌다.
TSMC는 중국의 대만 침공 등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해 반도체 생산 거점을 대만 이외 국가로 다변화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 반도체공장에 400억 달러(약 52조 원)를 투자하기로 한 TSMC의 결정은 이런 위험성에 대응하기 위한 대표적 방법으로 꼽힌다.
TSMC가 실제로 미국에 이어 일본과 유럽에 첨단 파운드리공정을 도입한다면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 대안이 될 수 있다.
독일에 건설되는 TSMC 공장에도 보쉬와 같은 현지 주요 고객사들이 투자에 직접 참여해 반도체 공급 물량을 확보하는 합작법인 형태의 투자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결국 TSMC의 생산 거점 다변화에 촉매제 역할을 하는 요인은 전 세계 고객사들의 강력한 수요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TSMC가 대만과 미국, 유럽과 일본 공장에서 모두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를 생산하게 된다면 지정학적 리스크를 크게 낮추는 것은 물론 현지 고객사 수요를 통해 점유율을 더 늘리는 효과를 거둘 공산이 크다.
파운드리 최대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한국과 미국 이외 국가로 손쉽게 투자 결정을 내리지 못 하는 사이 TSMC가 빠르게 앞서나가 전 세계의 반도체 위탁생산 수요를 선점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TSMC는 대만 내부의 정치적 여론을 고려해 최신 공정을 활용하는 반도체 생산 설비는 모두 대만에 우선적으로 구축하겠다는 입장을 앞세우고 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