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12일 전남 나주시 한전 비전홀에서 열린 '비상경영 및 경영혁신 실천 다짐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정 사장은 이날 한전 사장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도 결국 피하지 못했다.
정권 교체 뒤 벌어져 왔던 ‘한전 사장 잔혹사’는
윤석열정부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정 사장은 12일 ‘전기요금 정상화와 관련하여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 입장문을 내고 “오늘 자로 한국전력공사 사장직을 내려놓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전 사장의 임기는 3년이다.
정 사장은 2021년 6월1일자로 임기를 시작한 만큼 2024년 5월까지가 정해진 임기였다.
하지만 한전 사장에게 임기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한전이 공기업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데다 국내 에너지 정책의 정점에 있는 공기업인 만큼 정치권의 외풍에서 특히 자유롭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뒤 한 달 남짓 지난 2022년 6월부터 “공기업이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며 한전은 물론 공공기관, 공기업 전반을 겨냥해 압박을 시작했다.
이후 강도 높은 감사 등이 이어지면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주요 공기업에서는 전 정권 때 임명된 사장들이 물러났다.
정해진 임기를 채우고 있는 기관장들을 향해서는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위원장이 4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정부 기관은 전 정권 충신에게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숙주가 아니다”라고 발언하는 등 최근까지도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정 사장은 한전의 대규모 영업손실 문제가 불거지자 국민의힘으로부터 강도 높은 공격을 받았다.
한전 영업손실의 주요 원인은 원가보다 낮은 전기요금이다. 게다가 전기요금은 전력을 판매하는 한전이 아니라 여권이 실질적으로 결정한다.
하지만 여권의 입장에서는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정치적 부담’은 말 그대로 부담스럽다. 여권은 방만 경영, 기강 해이 등을 주장하며 한전과 정 사장을 향해 날을 세웠다.
박 의장은 4월 이후 정 사장을 향해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에 책임을 지고 즉각 물러나라”고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사퇴를 압박했다.
정 사장은 결국 12일 한전의 핵심자산 매각 등 내용이 담긴 25조 원 규모 자구안을 내놓고 사퇴를 발표했다.
만약 한전이 수십조 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보는 등 경영 상황이 매우 긍정적이었다면 정 사장은 임기를 채울 수 있었을까?
과거 사례를 되짚어 보면 ‘임기 중 중도 사퇴’라는 결론이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여야 사이 정권교체가 일어난 뒤에 전 정권이 임명한 한전 사장이 임기를 채우는 일은 전무했다. 모두 스스로 혹은 정부 압박에 물러났다.
한국사 첫 여야 정권교체로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뒤인 1998년에는 이종훈 전 한전 사장이 물러났다. 이종훈 전 사장은 당시까지 최장수 한전 사장으로 1993년부터 한전 사장을 맡아 3년 임기를 채운 뒤 3년 임기로 재선임됐으나 두 번째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2007년 3월 취임한 이원걸 전 한전 사장은 이명박정부가 들어서자 2008년 4월에 사의를 표명했다. 당시 이명박정부는 참여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 등의 물갈이를 추진했고 한전에도 강도 높은 감사원 감사가 진행됐다.
이명박정부 막바지인 2012년 12월에 임명된
조환익 전 사장은 한전 사장의 임기가 얼마나 정권에 영향을 받는지 보여 주는 좋은 예다.
조완익 전 사장은 사실상
박근혜 정부의 인사로 평가받으며 2017년 박 전 대통령 파면 후까지 자리를 지켜 이종훈 전 사장을 제치고 역대 최장수 한전 사장이 됐다.
하지만
조환익 전 사장도 여야 정권교체는 견뎌내지 못했다.
조환익 전 사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문재인정부가 들어서자 2017년 12월에 스스로 물러났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