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최대 에너지기업 에니(사진)가 이탈리아 첫 기후소송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에니 이외에도 엑손모빌, 셰브론, 셸 등 글로벌 '석유 공룡'들을 향한 화석 연료 관련 사업 및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에 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 EKH-Pictures > |
[비즈니스포스트] 이탈리아 최대 에너지기업인 에니(ENI)가 이탈리아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기후소송을 당하는 등 석유사업으로 성장한 글로벌 메이저 에너지기업들, 일명 ‘석유 공룡’들을 향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이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화석 연료가 기후에 미칠 ‘재앙’을 알았음에도 이를 묵과했다고 주장한다. 이들 기업은 ‘그린워싱’도 서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9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은 이탈리아 최대 에너지기업 에니가 자국에서 환경단체들에 기후소송을 당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기후소송은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정부나 기업을 상대로 시민들이 주도해 제기하는 소송을 뜻한다.
그린피스 이탈리아와 이탈리아 환경단체 리커먼은 5월19일까지 로마 민사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11월에 청문회가 시작되도록 요청하기로 했다.
이들은 에니가 1970년 이후 자신들의 화석 연료 관련 사업이 기후변화에 미칠 위험을 알고 있었음에도 더 많은 화석연료 관련 사업을 추진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에니가 과거 작성한 보고서 등을 근거로 삼고 있다.
이들 단체는 에니가 직접 1969~1970년 외부에 의뢰한 연구분석을 통해 화석연료의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대기의 이산화탄소가 급격히 증가하고 이는 기후에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근거로 에니가 1978년 작성한 보고서를 제시했다. 이 보고서에는 화석 연료의 소비 증가에 따라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1970년 325ppm에서 2000년 375ppm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보고서는 에니가 1980~1990년대 회사 잡지(에코스)를 통해 천연가스를 깨끗한 연료로 홍보하는 광고 캠페인을 진행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을 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린워싱은 실제로는 100% 친환경이 아닌 것을 친환경인 것처럼 포장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천연가스는 주요 성분이 메탄으로 온난화 효과가 작지 않다. 이런 이유로 많은 환경단체들은 천연가스를 친환경적이라고 강조하는 일이 기업들의 대표적 그린워싱 행태라고 보고 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이들이 제기한 소송을 두고 에니는 이 소송이 근거가 없다는 점, 탈탄소를 위해 자신들이 올바른 접근 방식을 취했다는 점을 법정에서 입증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린피스 이탈리아와 리커먼이 에니를 상대로 제기하기로 한 소송은 이탈리아의 첫 기후소송인데 이탈리아에서는 최근 들어 기후위기를 경고하는 환경단체의 행동이 이어지고 있다.
▲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환경단체 울티마 제네라치오네가 로마 나보나광장에 위치한 피우비 분수에 검은 액체를 투척하고 화석 연료 관련 투자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울티마 제네라치오네> |
이탈리아 환경단체 울티마 제네라치오네는 6일 로마 나보나광장에 위치한 피우미 분수에 숯으로 만든 식물성 검은 액체를 뿌리는 ‘먹물 테러’ 행위를 했다. 이들은 4월에도 로마 스페인광장의 바르카치아 분수에 같은 방식의 시위를 했다.
이들은 먹물 테러를 진행하면서 “우리의 미래는 이 물처럼 어둡다”며 정부에 온실가스의 원인인 화석 연료와 관련한 투자 및 지원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먹물 테러 이외에도 로마 중심가 도로에서 ‘화석연료 중단’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차들을 막거나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서 명화 작품의 보호 유리에 자신들의 손을 접착제로 붙이는 등 다양한 형태의 시위를 벌였다.
석유 공룡이라 불리는 글로벌 메이저 에너지기업들을 향한 비판은 세계적으로 더욱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말 푸에르토리코의 지방자치단체 16곳은 미국 엑손모빌, 셰브론, 영국 셸 등 석유화학기업 12곳을 상대로 2017년 발생한 허리케인에 따른 피해에 책임이 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석유화학기업들의 화석 연료 관련 사업이 허리케인 발생에 영향을 줬고 기업들이 석유화학제품들을 판매할 때 기후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의도적으로 숨겼다고 주장했다.
미국 뉴저지주도 지난해 말 엑손모빌, 셰브론 등 5개 석유기업이 화석 연료가 기후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이유를 들어 소송을 제기했다. 셸은 비슷한 시기 네덜란드에서 ‘그린워싱’ 논란을 겪기도 했다.
한 기후소송 전문가는 가디언에 “글로벌 석유 메이저들은 그들의 제품이 세계에 미칠 재앙적 영향을 이해했지만 대중에게 경고하지 않았고 지식을 숨겼으며 문제를 부인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에니는 궁극적으로 이런 ‘속임수’ 및 그에 따른 피해에 관해 법정에서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