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질주가 놀랍다. 두 회사는 1분기 합산 영업이익이 6조4667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현대차가 3조5927억 원, 기아는 2조8740억 원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4분기에 이어 2개 분기 연속으로 최대 영업이익 기록을 새로 썼다. 이 덕분에 두 회사는 1분기 국내 상장사 영업이익 1, 2위에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1분기 합산 영업이익이 6조4667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사진)은 2분기에도 실적 질주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
현대차와 기아는 수익성 측면에서 세계 자동차 판매 선두 일본 토요타도 넘어섰다. 토요타의 1분기 영업이익은 5094억 엔(약 5조1천억 원)에 머문 것으로 추산된다.
토요타의 1분기 영업이익률은 5%대로 현대차와 기아의 합산 영업이익률(10.5%)의 절반 수준에 머문다. 토요타가 차를 더 많이 팔지만 현대차와 기아의 수익성이 더 좋은 것이다.
우호적 환율 효과도 있었지만 값비싼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와 큰 차를 많이 판 효과를 본 것으로 분석된다. 초기 단계인 전기차 시장에서도 현대자동차그룹은 글로벌 완성차업체 가운데 수익을 내는 몇 안 되는 곳이다.
현대차와 기아 두 회사가 좋은 값을 받고 차를 팔 수 있었던 데는 높아진 브랜드 가치도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차그룹은 최대 시장인 북미 지역에서 주요 글로벌 완성차업체 가운데 인센티브(판매장려금)가 가장 낮은 편이지만 중고차의 잔존가치는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현대차와 기아의 질주는 2분기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비수기인 1분기보다 2분기 영업환경이 더욱 좋아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현대차와 기아도 컨퍼런스콜을 통해 2분기 실적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의 합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실적 전망치 평균)는 6조5068억 원으로 1분기를 웃돌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연간 실적에서도 나란히 영업이익 '10조 클럽'에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증권업계에선 올해 두 회사의 합산 영업이익이 23조 원(현대차 13조 원, 기아 10조 원)에 이를 것으로 바라본다.
두 회사의 주주 입장에선 현대차와 기아가 올해 내내 질주할 것만 같아 보인다. 하지만 불안 요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불씨는 현대차그룹의 최대 해외시장 미국에서 자라고 있다. 바로 '기아 보이즈'로 불리는 10대 소년들에 의한 차량 도난사고 급증 문제다.
특히 틱톡 같은 소셜미디어에선 현대차와 기아 차량을 훔치는 영상을 올리면서 '기아 챌린지'라는 이름까지 달고 있다. 이는 현대차와 기아 차량이 훔치기 쉽다는 인식이 퍼진 데 따른 것이다.
미국 언론에서는 2021년 이전에 생산된 현대차와 기아 차량에 도난방지 장치가 부착되어 있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도난 피해자가 늘어나며 현대차와 기아 차량 구매자들은 집단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 차량 소유자들의 피해금액이 보험사 추정치보다 높은 8억5천만 달러(약 1조1400억 원)에 이른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 법원이 집단소송에서 피해자 측의 손을 들어주거나 그 이전에라도 교통당국이 대규모 리콜을 결정한다면 현대차그룹으로선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천문학적 세타엔진 품질비용 문제도 있다.
세타엔진은 로열티를 주고 쓰던 일본 엔진을 대체한 현대차그룹 엔진 기술의 상징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2015년 세타2 엔진을 탑재한 차량에서 시동꺼짐과 화재 발생 등 문제가 발생하면서 리콜이 이어졌고 2017년에는 집단소송으로까지 번졌다.
그 뒤 현대차그룹은 2019년 집단소송 소비자와 화해안을 도출하면서 해당 엔진 탑재 차량을 대상으로 평생 보증을 하는 방안을 내놨다.
이에 2020년 3분기 현대차와 기아는 모두 3조3944억 원의 세타2 엔진 관련 품질비용을 반영했고 2022년 3분기에도 2조9044억 원을 추가 반영했다. 합치면 6조2988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 3분기 현대차와 기아는 분기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됐으나 세타2 엔진 품질 비용으로 전년 동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실적이 후퇴했다.
증권업계에선 현대차와 기아가 또다시 추가 충당금을 설정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이 여전히 남아 있다. 과거 두 번의 품질비용 반영 과정에서 보듯 평생 보증의 특수성으로 인해 클레임률이 예상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으로선 천문학적 추가 품질비용이 발생한다면 이를 좋은 영업이익 흐름이 나타나는 시기에 반영하고자 할 가능성이 높다.
이제 현대차와 기아는 높은 브랜드 가치와 좋은 품질로 뛰어난 실적을 올리는 기업이 됐다. 이에 더해 10년 가까이 이어온 엔진 품질비용 문제까지 완전히 끊어낸다면 주주들의 신뢰까지 회복해 기업가치 측면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와 기아의 올해 실제 성과는 '얼마나 더 버느냐'보다는 '얼마나 덜 물어내느냐'에 좌우될 공산이 커 보인다. 박창욱 산업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