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현 기자 naforce@businesspost.co.kr2023-04-14 15: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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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인텔이 모바일 프로세서(AP) 아키텍처(구조) 최강자인 ARM과 손잡고 1.8나노급 반도체 양산에 도전하면서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겸 대표이사 사장은 최첨단 미세공정 개발을 계획대로 진행하면서 인텔의 최대 경쟁자이기도 한 AMD를 비롯해 퀄컴, 엔비디아 등과 협력을 강화해 파운드리 생태계를 강화하는 전략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 인텔이 ARM과 손잡고 모바일 반도체 파운드리에 진입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에 장기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겸 대표이사 사장.
14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인텔이 모바일 반도체설계 아키텍처(구조)를 꽉 쥐고 있는 ARM과 동맹관계를 구축해 모바일 반도체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그동안 TSMC와 삼성전자가 양분하고 있던 파운드리 산업에 지각변동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
ARM은 모바일 반도체에서 독보적인 기업으로 기본 설계기반을 제공하고 로열티를 받는 사업구조를 갖고 있다. 전 세계 스마트폰의 모바일 프로세서(AP) 대부분이 바로 이 ARM의 설계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의 AP가 ARM 설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애플의 AP 바이오닉 시리즈 역시 ARM 아키텍처을 기반으로 재설계한 제품이다.
인텔은 그동안 PC 반도체 설계와 생산에 집중했던 만큼 칩 성능은 강력한데 모바일에 적합한 저전력 구조에는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따라서 ARM이 이런 약점을 보완해준다면 인텔이 모바일 반도체 생산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게 될 공산이 크다.
인텔은 2025년 1.8A(1.8나노급) 미세공정을 TSMC나 삼성전자보다 먼저 도입해 모바일 반도체 파운드리에 진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ARM과 연합이 인텔의 마지막 퍼즐조각이 될 수 있는 셈이다.
포브스는 “인텔이 ARM과 협력하는 일은 파운드리 사업자로서 신뢰성과 명성을 구축하기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며 “인텔은 모바일 프로세서를 시작으로 자동차, 사물인터넷(IoT), 데이터 센터, 항공우주 등으로 반도체 생산을 확대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인텔이 1.8나노 기반으로 파운드리 시장에 침투한다면 가장 위협을 받는 곳은 삼성전자다.
대만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2년 2분기 기준 파운드리 시장점유율 16.5%를 차지했다. 선두인 대만 TSMC의 시장점유율 53.4%와의 격차는 36.9%포인트로 상당하다.
이는 파운드리 업력이 30년 넘은 TSMC와 달리 삼성전자는 이제 고객층을 확보하는 단계이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인텔까지 파운드리 산업에 뛰어든다면 삼성전자의 점유율부터 잠식당할 수 있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전체 파운드리 매출의 60% 이상을 모바일 분야에 의존하고 있어 인텔에 모바일 반도체 고객을 빼앗긴다면 타격이 커질 수밖에 없다.
▲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퀄컴 등이 설계한 반도체 파운드리를 수주해 고객들과 신뢰를 쌓고 있으며 이와 같은 파트너십을 확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경계현 사장은 인텔과 달리 단계적으로 첨단 미세공정으로 전환해 파운드리 경쟁력을 키우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2년 세계 최초로 3나노 양산을 시작한 데 이어 2025년 2나노, 2027년 1.4나노 파운드리를 양산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순차적으로 공정난이도를 높여가며 안정적으로 고객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반면 인텔은 2023년 하반기 7나노급 반도체를 생산한 뒤 삼성전자보다 1년 빠르게 2024년 2나노, 2025년에는 1.8나노를 생산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짧은 기간에 파운드리 선두주자인 삼성전자와 TSMC를 기술력으로 따라잡겠다는 계산인데 과거 7나노 양산도 포기했던 인텔이 일정대로 미세공정 전환이 가능할지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인텔이 최근 출시한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사파이어 래피즈도 일정이 1년 이상 연기된 점을 고려할 때 인텔의 공정 로드맵은 신뢰감이 떨어진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만약 양산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고객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의 수율(완제품에서 양품이 차지하는 비율)을 달성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삼성전자는 4나노에서 이와 같은 수율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고 이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공정안정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경계현 사장은 파운드리 생태계 구축 측면에서도 인텔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파운드리는 수주사업이기 때문에 주요 고객과 장기적인 파트너십이 중요하다.
경계현 사장은 2022년 9월 기자간담회에서 이와 관련해 “파운드리는 마치 호텔 사업처럼 캐파(생산능력)를 먼저 확보하고 고객을 유치하되 장기적인 전략적 파트너십이 중요한데 삼성전자가 그 부분에서 다소 부족했다”고 인정하며 “매출 1등이 아니라 내용적인 1등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모색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도 TSMC와 비교하면 퀄컴, 엔비디아 등 고객사와 파트너십을 맺은 지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3~4나노에서 수주를 받아 안정적으로 제품을 인도할 수 있다면 이제 막 파운드리 고객사를 확보해야 하는 인텔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다.
삼성전자가 최근 인텔의 최대 경쟁자인 AMD와 적극 협력하는 것을 두고 반인텔 진영을 구축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투자금 측면에 있어서도 삼성전자가 인텔보다 유리하다.
인텔은 최근 반도체 수요가 약해진 데다가 기존 PC, 서버 시장점유율도 경쟁사에게 잠식되면서 현금흐름이 악화됐다. 올해 2월 글로벌 신용사 피치는 인텔의 잉여현금흐름이 2023~2025년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며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하향조정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도 메모리반도체 업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115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현금성 자산을 확보하고 있어 파운드리에 투자할 여력은 인텔보다 훨씬 나은 상황에 놓여 있다.
블룸버그는 “과거 사례에 비춰보면 인텔이 매년 삼성전자, TSMC와 같은 경쟁사의 기술력을 따라잡는 대신 5년 안에도 몇 번씩 반도체공정 개발주기가 늦춰질 것”이라며 “인텔은 삼성전자와 TSMC 등 선두그룹과 UMC, 글로벌 파운드리 등 후발그룹의 중간에 끼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