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년이 안된 시점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첫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를 결정한 법이 다수 남아있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앞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거부권 행사가 늘어갈 수록 정치적 부담이 커질 수 있어 윤 대통령의 고민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 윤석열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여야의 갈등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4월4일 서울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은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열어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요구권을 심의·의결했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률에 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2016년 5월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약 7년 만이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지난 3월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민주당은 당초 쌀 초과 생산량 3%, 전년 대비 5% 이상 쌀값하락을 정부 의무매입 요건으로 했지만 김진표 국회의장이 제시한 중재안을 받아들여 본회의를 통과시켰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대통령에 거부권행사를 요청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의 재의 요구를 두고 "당과 논의를 해봐야겠지만 당연히 헌법과 법률에 따른 절차를 밟을 것"이라며 재의결 추진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이날 거부권을 행사함에 따라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의석구조를 봤을 때 사실상 법률 통과 가능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국회법에 따라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한 법안의 통과를 위해서는 재적 과반수 출석과 출석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현재 재적 299석 가운데 115석을 확보한 국민의힘이 자력으로 재통과를 막을 수 있다.
정부여당으로서는 국회 의석수가 절대적으로 밀리는 상황에서 대통령 거부권을 써서 민주당의 ‘직회부’ 전략을 한 번 막은 셈이다.
문제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합의하지 못한 법안이 많아 앞으로도 양곡관리법과 같은 사례가 계속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지난 3월21일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바꾸는 방송법 개정안 본회의 직회부를 결정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곧바로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거론했다.
이에 더해 민주당이 다수를 점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도 3월9일 간호법과 의료법 개정안 등 6개 법안을 본회의에 직회부하기로 결정했고 23일 본회의에 안건으로 상정했다.
이밖에 노란봉투법, 화물운수업법, 대장동·김건희 여사 관련 특검법 등도 직회부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진다.
윤 대통령이 직회부 되는 법안마다 거부권을 행사하면 1987년 민주화 이후 집권한 대통령 가운데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3월31일 펴낸 ‘역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해외사례’에 따르면 역대 대통령들의 거부권 행사는 모두 66건이었다. 이승만 대통령(45회)이 가장 많았고 민주화 이후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7건)이다.
집권기간 여소야대 국면을 맞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관련 특검법을 포함해 6차례 거부권을 행사했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2번에 그쳤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아예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본회의 ‘직회부’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지속적으로 부딪힌다면 4월 임시국회는 물론 남은 21대 국회 임기동안 쟁점 법안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는 ‘식물국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윤 대통령이 민주당이 발의한 쟁점법안에 대해 모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총션이 1년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거부권 행사가 늘어날 수록 정치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이날 윤 대통령의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를 두고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모습을 보였다.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MBC뉴스외전에서 “국회 선진화법은 다수당이 일방적으로 법을 처리하지 말고 합의하라는 취지로 제정된 것”이라며 “그런데 다수당인 민주당은 ‘편법’과 ‘꼼수’로 법안을 강행처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국회 선진화법에 ‘식물국회’가 되면 안 된다는 입법 취지가 있었기 때문에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과 본회의 직회부 규정이 있는 것”이라며 “(민주당은) 법에 있는 제도와 절차를 활용한 것이지 꼼수나 편법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정부나 여당이 적극적으로 본인들의 생각을 법안이나 제도로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