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명예교수가 3월31일 비즈니스포스트와 만나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반도체만으로는 국가에 미래가 없어요, 반도체는 이내 중국에 추월당할 겁니다.”
문송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대학원 명예교수가 3월31일 가진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에서 국가 산업 전략에 변화가 필요하다며 작심하고 내뱉은 말이다.
윤석열 정부가 2042년까지 용인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산업단지를 만들겠다고 발표한 점을 놓고 문 교수는 정부와 국내 대기업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드웨어(HW) 중심에서 탈피해 소프트웨어(SW)로 나아가야 할 때라는 것이다.
문 교수는 숭실대학교에서 전산학을 전공하고 수퍼컴퓨터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1980년대초 전산학박사를 취득한 ‘국가전산학박사 1호’다.
그는 영국에서 '한국의 빌 게이츠'로 불렸는데 그곳에서 대학교수 생활을 오랫동안(1980년대 영국 명문 에딘버러대학교 전산학과, 1990년대 케임브리지 대학교 전산학과, 2010년대 뉴캐슬대학교 전산학과) 했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클라우드’라는 용어를 세계 최초로 만든 인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 반도체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문 교수는 메모리 중심, 하드웨어 중심의 현재 국내 반도체산업에 대해 매우 회의적으로 바라봤다.
"삼성전자는 TSMC를 경쟁상대로 삼으려 해선 안 됩니다. 삼성이 언젠가 파운드리에서도 TSMC 수율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삼성이 가야할 길은 TSMC가 아니라 인텔이나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처럼 독자적인 운영체제(OS)나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는 기업입니다."
문 교수는 족쇄 투성이인 반도체로는 전망이 밝지 않다고 했다.
"반도체 적색등 추세는 상당 기간 계속될 겁니다. 반도체로는 경제 위기 극복에 중장기적으로도 별 효력이 없어요. 정부가 '한국판 칩스법'으로 세제혜택을 준다고 하지만 적자가 나서 세금 낼 것도 없는 판에 혜택을 주면 뭐합니까. 부창부수하듯이 미국이 반도체를 지원한다고 하니까 따라하는 거지요. 또 (용인에 투자하는) 300조 원 중에서도 실제 반도체 산업에 투자되는 것은 얼마 없을 겁니다."
문 교수는 중국, 대만, 일본이 반도체에서 우리를 추격하기 전, 약간의 '여유'를 갖는 동안 우리는 반도체 (하드웨어) 기반 산업에서 탈피해 두뇌산업(소프트웨어)으로 한 발 먼저 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시장 규모에서 봐도 소프트웨어(2500조 원)가 반도체(하드웨어, 530조 원)의 4.7배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 삼성전자 소프트웨어에 투자 전무
문 교수에 의하면 삼성전자도 소프트웨어를 키울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사실 삼성은 소프트웨어와는 전혀 무관한 행보를 지난 30년 동안 일관되게 보여왔어요. 19년 전(2004년) 안드로이드 인수를 거절했던 것이 대해 아직껏 일말의 후회도 없는 행보를 보여온 것은 참으로 IT업계 불가사의 중 하나입니다. 삼성이 안드로이드 인수를 거절한 딱 2주 후인 2004년 7월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인수했습니다."
물론 삼성전자도 운영체제(OS)를 해보려고 한 적이 있었다.
문 교수는 "삼성도 과거 바다나 타이젠이란 OS를 스마트워치에 도입했다가 잘 안되니까 접었다"며 "그 뒤에 소프트웨어는 한국에서 안 된다는 걸 알고 관련 부서를 미국으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지금이라도 삼성이 마음만 먹으면 소프트웨어를 할 수 있지만 최근엔 아예 관심이 없어 보이는 점을 문 교수는 안타까워 했다.
"삼성이 반도체에 투자하는 것에 비하면 소프트웨어는 지금 아예 안 한다고 보면 맞습니다. 삼성이 시스템 반도체, 바이오, 5G, 인공지능(AI)을 키우겠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 전부 하드웨어에요. 소프트웨어에 소자도 안 들어가요, 방향이 잘못됐다는 거죠. 특히 인공지능은 소프트웨어란 기본이 없으면 불가능해요."
▲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3월31일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소프트웨어에 투자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즈니스포스트> |
◆ 결국은 사람이 문제
문 교수는 우리나라가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약한 것은 결국 사람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동안 정부 요직에서 소프트웨어 전문가는 철저히 배제됐습니다. 역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중에서 소프트웨어 전문가는 한 명도 없었어요. 국회에도 IT 비례대표로 들어간 사람들이 여당, 야당에 있지만 그 사람들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요."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바라봤다.
문 교수는 "역대 삼성전자 CEO(최고경영자)들은 전부 하드웨어 전문가였지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관심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며 "국내 정치권이나 재계가 모두 소프트웨어 쪽에 관심이 없으니까 IT 인재들이 국내에 남아있지 않고 다 미국으로 간다"고 안타까워 했다.
"카이스트 전산과에서 졸업한 제자들도 대부분 MS, 구글로 갔습니다. 저도 과거에 MS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은 적이 있어요. 국내에서 교수로 정착하는 인재들도 순수 OS에서 응용쪽으로 방향으로 바꿉니다. 그래야 대기업에서 프로젝트를 받기 수월하니까요. 소프트웨어 쪽에서 우리나라에 인재들이 많은데 이들을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해요."
문 교수는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을 위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산업계와 학계를 연결해줌으로써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강화했어요, 우리 정부도 이런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