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교육전문가 김홍수 문산수억고 교사가 28일 경기도 파주 문산수억고에서 비즈니스포스트와의 인터뷰에 임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아이들이 지구의 상주가 되는 세상을 만들어선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에 '지구장례식'이 기괴하거나 무섭다고 했죠. 하지만 이게 현실이라는 걸 아이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기후장례식을 시작하게 된 이유입니다."
여기, 23년 동안 기후교육에 몸담은 '수학' 교사가 있다. 김홍수 문산수억고 교사다. 파주에서 그는 꽤 잘 알려진 기후환경교육 전문가다. 전국 최초로 학생들이 주도한 '지구장례식'이라는 퍼포먼스를 지도했다.
인터뷰 장소로 가는 길, 택시기사는 23년 전 자신이 문산으로 이사를 하자 지인들이 남북 접경지역이라며 "죽으러 가느냐"고 말했다고 했다.
하지만 김 교사의 생각은 그 택시기사와는 달랐다. 그는 문산이 "생물다양성이 전국에서 가장 풍부한, 평화의 장소"라고 자랑했다. 우리 아이들은 여기서 해바라기처럼 꿈을 키우고 있다고, 그 꿈을 이뤄주기 위해선 우리가 반드시 '기후위기'를 헤쳐나가야 한다고.
아이들과 함께 부대낀 23년은 어떤 꽃을 피웠을까. 28일 경기도 파주 문산수억고에서 비즈니스포스트가 김 교사를 만났다.
김 교사는 자신을 ‘육사 출신’이라고 소개를 했다.
“64년생입니다. 첫 시간에 ‘육사 출신 김홍수입니다'하고 경례를 하면 왜인지 모르게 기합이 빡 들어가요. 학생들에게 이렇게 기세를 잡는 거죠.”
하얀 머리, 형형한 눈빛을 지닌 괴짜 수학 선생님. 아이들은 정년이 3년 남은 그를 ‘홍수쌤’이라고 불렀다.
김 교사는 수억고 환경동아리 ‘해바라기’의 지도교사다. 해바라기는 환경, 기후, 평화, 역사, 봉사가 융합된 수억고의 대표 동아리다. 수상실적만 봐도 2018년 유엔 청소년 평화상, 2011년 '제1회 대한민국 창의체험 페스티벌' 최우수상 등 국내외 36개에 이른다.
김 교사가 해바라기를 만든 건 2000년이었다. 성균관대 수학과를 나와 10년 동안 중앙교육진흥연구소에서 수학교육 담당자로 근무하다가 37살이 되던 해, 그는 수억고 수학교사가 됐다.
평생 수학만 알던 그에게 아이들은 ‘봉사’를 하자고 했다. 수시가 없던 시절, 봉사는 대학 입시에 도움이 크게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한 명 당 200시간씩 묵묵히 봉사를 나갔다. 300시간을 채운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봉사를 하면서 행복해 했다.
거기에 ‘환경’과 ‘기후’를 덧붙인 건 김 교사였다. 비무장지대(DMZ)가 있는 파주를 그는 ‘생물다양성의 천국’이라고 표현했다. 파주의 지역적 특색을 활용해 해바라기는 임진강, 파주 갯벌, 멸종위기종 등 환경 탐사를 시작해 나갔다.
▲ 문산수억고 환경기후 동아리 '해바라기'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2020년부터 '지구장례식' 퍼포먼스를 진행해왔다. 사진은 3월28일 지구장례식 장례상에 서 있는 '해바라기' 학생들. <비즈니스포스트> |
2020년 그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학생들과 함께 ‘지구장례식’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진짜 장례식처럼 지구의 영정사진을 그리고 상복을 입었다.
제사상에는 '고인' 즉 죽은 지구가 좋아했을 법한 음식을 올렸다. 학생들은 “고탄소 음식을 할까, 저탄소 음식을 할까”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했다.
학생들은 ‘고탄소 음식’을 먹어서 지구가 아프게 됐다며 결국 ‘고탄소 음식’을 제사상 위에 올렸다. 일회용품, 매연을 뿜는 자동차 등으로 제사음식이 차려졌다. 학생들은 이 주제로 환경 다큐멘터리 영화 '지구장례식'을 제작하기도 했다.
김 교사는 "아이들에게 기후교육을 하면서 '인성'교육도 더해졌다"고 말했다. 제사상을 차리며 어떻게 제례를 지내야하는지, 절은 어떻게 하는지도 배우며 우리 사회에 관해 더욱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2학년 한태희 학생은 김 교사에게 어떤 ‘포스(분위기)’가 감돌았다고 했다.
“처음 본 날부터 홍수쌤은 무언가 달랐어요. 끌림이 있었어요."
같은 학년 이윤주 학생은 “동아리 활동을 통해 집에서도 직접 재활용을 하게 되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게 됐다"고 말했다.
"생활 속에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작은 실천을 하면서 뿌듯함을 느껴요."
같은 학년 서현주 학생은 부끄럼을 타면서도 기후위기를 느끼고 있냐고 물어보니 꽤 진지해졌다. 그는 “봄에 갑자기 눈이 오는 등 일기예보가 잘 안 맞는 현상을 체감하면서, 앞으로 예측하기도 힘들 정도로 기후위기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해바라기' 소속 학생들은 동아리 활동을 통해 생활 속에서 환경 운동을 실천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문산수억고 2학년 한태희, 이윤주, 서현주 학생. <비즈니스포스트> |
‘해바라기’를 거친 아이들은 ‘환경’을 자신들의 꿈에 입히고 있다.
김 교사의 말을 따르면, 해바라기 출신 학생들 가운데 과학 교사나 환경 담당 공무원이 된 학생들이 많단다.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에 취직한 학생도 있다. 모 명문대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한 학생은 앞으로 ‘환경 담당 외교관’이 될 것이라 포부를 밝혔다고 했다.
김 교사는 기후교육을 배운 아이들이 건축이나 수송 등 다양한 사회 분야에서 이를 활용할 수 있고, 직접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떤 분야를 가더라도 ‘환경과 기후’을 생각하는 사회인이 될 수 있는 거에요. ‘기후위기’라는 문제를 직면할 때 이를 자신의 삶에서 풀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죠.”
김 교사는 교직과 해바라기 지도 외에도 DMZ 생물다양성 연구소 대표, 파주환경운동연합 대의원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파주환경운동연합을 창립하고 에너지기후변화 전문가 양성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 그는 녹내장으로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건강이 좋지 않다. 과로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가 크게 나 몸을 다치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환경 교육을 해 주고 싶어 주말마다 혼자 코엑스와 킨텍스를 돌아다녔다고 했다. 환경친화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는 좋은 기업이 있으면 무턱대고 '교사'라는 직업을 밝히고 제품 샘플을 얻어오기도 했단다.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뭘까. 김 교사는 “시골이라 대도시 아이들만큼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아버지가 6살 때 돌아가셨어요. 제자들한테만큼은 좋은 기회를 주고 싶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 길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문산역 앞엔 꽃집 두 개가 나란히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꽃집 앞에는 노랗게 핀 해바라기 꽃이 가득 꽂혀 있었다. 23년 동안 매년 피어난 해바라기 덕분에 파주 끝에서는 기후 꿈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박소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