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현 기자 naforce@businesspost.co.kr2023-03-27 15: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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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년 만에 중국을 방문해 미·중 갈등 속에서 현지 사업을 챙기고 있다.
삼성그룹은 중국에서 막대한 매출을 올리는 동시에 생산기지도 두고 있는 만큼 중국 사업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이재용 회장은 미국 기업 애플이 미·중 갈등이 심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기업이 된 것을 참고해 중국과 ‘공생’하는 방법을 찾아 나설 것으로 보인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사진)이 3년 만에 중국을 방문해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중국과 함께 성장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이 23일 오후 베이징 공항에 도착해 24일 톈진의 삼성전기 사업장을 방문한 것을 두고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갈등을 염두에 둔 동선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애초 이 회장은 시안과 쑤저우에 위치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중국 반도체산업에 대한 견제수위를 높이고 있는 지금, 행동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상무부가 21일 발표한 반도체지원법 가드레일(안전장치)에 따르면 반도체기업은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다면 향후 10년 동안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5% 이상 확장하지 못한다.
이 회장은 동선뿐 아니라 발언에 있어서도 굉장히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이 회장은 ‘중국발전고위급포럼에 참석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북경이 날씨가 너무 좋죠?”라며 직접적인 대답을 피했다.
반면 이 회장과 같이 중국발전고위급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팀 쿡 애플 CEO(최고경영자)는 훨씬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쿡 CEO는 애플의 생산기지를 중국에서 인도로 점차 옮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플과 중국은 함께 성장해왔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공생적인 관계였다”며 “중국에서는 혁신이 빠르게 이뤄져왔고 더 빨라질 것으로 믿는다”고 중국을 치켜세웠다.
쿡 CEO는 애플이 중국에서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투자하는 규모를 기존 1500만 위안(약 28억 원)에서 1억 위안(189억 원)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안도 내놓았다.
미·중 갈등 속에서도 중국에서 사상최대 매출을 내고 있는 애플과 반도체 규제에 직격탄을 맞게 된 삼성전자의 희비가 경영자의 태도에서도 비춰지고 있는 셈이다.
다만 중국사업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삼성전자는 애플과 처지가 같다.
현재 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 최대 고객사는 중국 기업들이다. 2022년 한국의 메모리반도체 수출 물량 가운데 중국 비중은 40.3%에 달했다.
삼성그룹 전기전자 계열사들의 2022년 중국 매출도 약 46조 원(삼성전자 약 35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삼성전기는 전체 매출의 33.7%를 중국에서 거뒀다.
▲ YMTC 등 중국 메모리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정부의 반도체 제재로 기술개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재용 회장은 결국 미·중 갈등 속에서도 중국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삼성그룹의 중국사업 방향은 애플과 비슷한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기존 중국 공장을 유지하면서 국내, 베트남, 인도, 미국 등으로 생산기지를 다각화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전체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38%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는데 반도체장비 반입과 생산량 제한 내에서 최대한 공장을 효율적으로 가동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재용 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대표적인 측근인 천민얼 톈진시 서기와 면담을 했고 27일에는 리창 총리 또는 허리펑 경제 담당 부총리를 만나 이와 관련한 논의를 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이 앞으로 중국사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는 일도 필수적이다.
애플이 미국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공생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인들에게 아이폰 등 애플 제품이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 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국 기업들이 줄 수 없는 가치를 삼성이 지속해서 제공할 수 있어야 공생도 가능해진다.
최근 YMTC 등 중국 메모리반도체 기업들은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고 삼성전자 등 국내기업과 기술격차를 좁히고 있었다. 하지만 YMTC가 미국의 반도체장비 수출 제재로 큰 타격을 입고 있어 삼성전자에게는 유리한 환경이 일부 조성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의 낸드 기술 격차는 현재 약 2년 정도인 것으로 파악된다.
대만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YMTC는 미국의 제재로 2024년까지 3D 낸드플래시 시장에 진출할 수 없을 것”이라며 “YMTC는 구형 2D 낸드플래시를 다시 생산하거나 구형공정을 도입한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사업에 주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