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은 23일 주주총회를 끝으로 회장 자리에서 내려온다. |
[비즈니스포스트] “이제는 가정으로 돌아가서 평범한 남편으로, 아버지로, 할아버지로 살려고 한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이 지난해 12월 회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용퇴 의사를 밝힌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조 회장은 40년 가까운 시간을 ‘신한맨’으로 살았고 그룹 수장으로는 6년을 일했다. 이제 그는 신한금융그룹에서의 긴 레이스를 마칠 준비를 하고 있다.
22일 신한금융지주에 따르면 조 회장은 23일 마지막으로 주주총회 의사봉을 잡는다.
조 회장은 주총에서 진옥동 회장 내정자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 등을 직접 의사봉을 두드려 선포한 뒤 회장으로 모든 책임감을 내려놓을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이 마라톤을 좋아한다는 것을 업계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다. 조 회장이 2015년 신한은행장에 올랐을 때 직원들 사이 ‘마라톤 붐’이 일었던 일화도 유명하다.
조 회장은 6년 임기 동안에는 오직 신한금융그룹의 성장을 위해 달렸다. 조 회장의 숨 가쁜 레이스는 비은행, 글로벌, 디지털 부문 성과로 이어졌다.
신한금융지주는 조 회장 체제에서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조 회장은 은행의 성장성이 한계에 직면한 상황에서 KB금융지주와 ‘리딩금융’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면 비은행 부문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보고 비은행 부문 인수합병을 적극적으로 단행했다.
그는 생명보험사 오렌지라이프와 손해보험사 BNP파리바카디프손해보험, 신탁업체 아시아신탁, 벤처캐피털사 네오플럭스, 베트남 여신금융회사 PVFC 등 굵직한 인수합병을 주도하면서 신한금융그룹의 비은행 부문 외형을 빠르게 키웠다.
신한금융그룹의 글로벌 영역 확장도 조 회장의 주도로 이뤄졌다.
조 회장은 2017년 3월 회장에 취임할 때 국내 1등 금융그룹 자리를 지키는 것뿐 아니라 신한금융그룹을 글로벌 금융그룹으로 한 단계 도약시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는데 이를 이루기 위해 글로벌 시장 공략에도 적극 힘썼다.
신한금융그룹의 글로벌 손익 규모는 2017년 2178억 원에서 2022년 5646억 원으로 159.2% 증가했고 전체 실적에서 글로벌 손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7.5%에서 12.2%로 확대됐다.
조 회장은 본래도 ‘국제전문가’로 여겨졌다. 그는 신한은행 뉴욕지점장과 글로벌사업그룹장으로 일한 경험이 있고 신한은행장으로 있을 때는 해외 각국에 현지법인을 세우는 데 힘을 보탰다.
조 회장의 업적에서 신한금융그룹의 디지털 혁신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신한금융그룹은 4대 금융지주 가운데서도 앞선 디지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라’는 조 회장의 지침을 따라 해마다 수조 원을 디지털 분야에 투자했고 그룹 차원의 디지털 전략 펀드도 4대 금융지주 가운데 가장 먼저 조성했다.
신한금융그룹은 지난해 11월에는 국내 금융그룹 처음으로 디지털 성과만을 공유하기 위한 행사 ‘신한 디지털데이’를 열기도 했다.
조 회장의 빛나는 경영성과 반대쪽에는 아쉬운 오점도 있다.
결국 무죄 판결을 받긴 했지만 조 회장의 채용 관련 재판으로 신한금융그룹 안팎에 잡음이 일 때도 있었고 라임자산운용 펀드 사태는 조 회장 스스로도 말했듯이 많은 직원과 고객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신한금융지주 주총을 하루 앞두고 조 회장의 가슴 속에서는 여러 감정이 오갈 것으로 보인다.
행원으로 시작해 은행장, 회장까지 올라 걸어온 시간을 곱씹을 수도 있고 신한금융그룹의 앞날을 응원하는 마음도 가질 수 있다.
조 회장은 회장에서 물러난 뒤 신한금융그룹 고문으로 활동을 이어가지만 그룹에 크게 영향력을 끼치기보다는 격려하는 정도로 역할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조 회장은 한동우 전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고문으로 활동할 때 서울 중구 광교 사옥에 머물렀던 것과 달리 서울 여의도 신한투자증권 사옥에 따로 집무실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에서는 이를 두고 조 회장이 자신의 영향력을 오히려 최소화하기 위해 신한금융그룹 본사가 있는 서울 중구와 일부러 거리를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차화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