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애플카를 놓고 소문은 무성하지만 그 실체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애플카를 향한 관심이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자동차는 달리는 전자제품이 된지 오래다. 애플은 여기서 더 나아가 애플카를 달리는 스마트 디바이스로 규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 시점에서 애플의 모바일 성공전략을 복기해 본다면 애플카에 관한 힌트를 얻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애플의 독특한 점 가운데 하나는 시장 진입 타이밍을 결정하는 전략이다. PC, MP3, 스마트폰 할 것 없이 애플은 선도적 지위를 누렸던 터라 많은 사람이 애플을 ‘퍼스트 무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패스트 팔로워’로서 진입해 시장을 장악한 사례가 많다.
제프리 무어의 마케팅 이론에서 ‘캐즘’이라는 용어가 있다. 초기 시장에서 주류 시장으로 넘어가기 직전 수요가 급감하는 구간이란 의미다. 많은 제품이 캐즘을 넘지 못하고 도태되기도 하는데 이 단계를 넘으면 기술 범용화로 소비가 크게 늘어난다.
애플은 캐즘이 끝날 무렵 시장에 진입함으로써 출혈을 최소화하면서도 수요 급증의 과실을 누리는 전략을 선택해 왔다.
이때 기존 경쟁자들보다 더 높은 완성도를 선보이며 시장을 선도하게 됐다. 아이폰은 애플 특유의 디자인과 감성, 탁월한 사용자 경험 등의 매력으로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제품 확장 전략을 펼치며 충성고객들을 기반으로 한 애플 생태계를 구축했다.
애플의 충성고객들은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PC, 웨어러블, 하다 못해 이어폰까지 애플 제품을 구매하곤 한다. 이는 하드웨어에 그치지 않고 각종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구매로도 이어진다.
이른바 ‘애플 생태계’가 점점 강화되며 애플의 사업 경쟁력도 더 높아지고 있다.
전기차는 이제 캐즘을 지나 이제 초기 다수 수용자들 위주의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볼 여지가 많다.
애플카 출시시점으로 일각에서 예측하는 2025년, 혹은 그보다 좀 더 뒤가 될 수도 있겠지만 만약 애플카가 나온다면 지금껏 봐왔던 전기차와는 사뭇 다른 디자인과 사용자 경험을 선보이며 소비자들을 매료시킬 거란 기대가 나오고 있다.
글로벌 마케팅회사 스트래티지비전이 미국에서 신차를 구매한 20만 명을 대상으로 자동차 브랜드 선호도를 조사했는데 애플이 3위에 올랐다.
1,2위는 토요타와 혼다. 4위는 포드, 5위는 테슬라였다. 출시도 안 된 애플카가 테슬라보다 높은 득표를 한 셈이디. 애플의 브랜드파워와 대중적 호감도를 여실히 드러낸 결과이기도 하다.
애플카의 지향점은 단순한 전기차가 아니라 자율주행차일 것으로 보인다.
운전자가 필요하지 않은 자동차는 이동 수단이라기보다는 여가 수단에 가까워진다.
이렇게 자동차의 개념이 변화했을 때 이에 가장 부합하는 곳은 기존 완성차업체나 전기차기업이 아닌 애플일 수 있다.
애플의 공급망도 주목할 부분이다. 애플이 세계 곳곳에 걸쳐 있는 협력사들로부터 빠르게 부품을 확보할 능력이 있다는 점은 애플카가 조기에 양산 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거란 분석이 많다. 스마트폰에서 그랬던 것처럼 위탁생산을 통해 애플카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러면 애플카의 등장으로 기존 전기차 강자인 테슬라의 지위는 위협받게 될까?
애플이 테슬라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가능성은 높지만 그렇다고 쉽게 테슬라의 지위를 넘보지 못할 거란 시각이 많다.
결국 애플과 테슬라의 대결 지점은 자율주행 분야가 될 텐데 여기서 경쟁력을 좌우할 요소가 바로 주행 데이터다.
이미 테슬라는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며 주행 데이터 확보에서도 여느 경쟁자들보다 앞서 있다. 주행 데이터는 계속해서 누적되는 성격이 있는 만큼 애플이 후발주자로 뒤늦게 경쟁 대열에 뛰어들었을 때는 테슬라가 저만치 앞서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테슬라는 단순한 전기차 제조사가 아닌 인공지능 테크기업으로서 경쟁력이 월등한 곳이기도 하다.
테슬라는 수퍼컴퓨터 ‘도조’를 개발하고 있는데 도조는 테슬라 차량에서 수집된 동영상 데이터를 처리·분석해 인공지능을 구동하는 신경망을 훈련시키는 기능을 한다.
슈퍼컴퓨터로서 도조의 기능은 그래픽처리장치 GPU 기준으로 세계 7위 수준이라고 한다. 테슬라가 단순히 차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세계적 빅테크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인공지능 기업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축적되는 테슬라의 주행 데이터, 그리고 인공지능 역량. 이 두 가지가 결합되면 엄청난 파급력이 생긴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스스로 학습하며 점점 더 똑똑해지고 테슬라의 자율주행 시스템은 점점 더 정교해 지는 것이다.
테슬라가 전기차 양산체제를 구축해 경제성을 확보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흔히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에 비해 제조가 쉽다는 얘기를 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반만 맞는 얘기다.
전기차 하나를 만들어내는 것은 쉬울 수 있지만 양산체제를 구축해 경제성을 확보하는 일은 어렵다. 여태 전기차를 만들어 영업이익 흑자를 낸 곳이 테슬라 외에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테슬라는 배터리셀부터 완성차까지 핵심부품을 한 곳에 내재화해 일괄생산하며 원가 경쟁력을 높였다. 각 공정별로 무인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고 비효율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생산성을 극대화했다.
이런 생산혁신은 가격 경쟁력을 대폭 높인 중요한 요인이다.
애플이 모바일에서처럼 애플카 생산에서도 위탁생산 방식을 채택했을 때 테슬라보다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비록 타깃 시장이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어쨌든 원가를 낮추고 품질을 높이는 게 제조업의 기본이다.
최근 애플카와 관련해 예상 출시 시점이 늦춰질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당초 예상보다 낮은 수준의 기술이 도입된 애플카가 출시될 거란 추측도 나온다. 이런 얘기들은 그만큼 자동차 시장이 녹록치 않다는 걸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한국의 대표 완성차기업 현대차는 미래차 시장에서 어떤 길을 가게 될까?
현대차를 비롯한 기존 완성차 업체들이 미래차 주도권 경쟁에서 다소 뒤처진 것은 사실이다. 아무래도 기존 내연기관차 시장이 여전히 큰 만큼 섣불리 전기차로 전환할 수 없었던 사정도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테슬라가 시장을 선점하게 됐고 기존 완성차업체들은 전기차에서 후발주자 신세가 됐다.
더구나 앞으로 다가올 자율주행 시대에는 테슬라의 경쟁력이 더 두드러질 수 있다. 테슬라가 단순히 차만 잘 만드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 등 자율주행 기술의 필수 요소들에서 높은 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대차는 빠른 속도로 전기차 전환과 자율주행차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필요하면 인수합병이나 빅테크들과의 협력을 통해 부족한 부분도 보완하고 있다.
현대차는 2022년 10월 ‘소프트웨어 중심의 차’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18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2023년 신차부터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기능을 적용하기로 했고 2025년부터는 모든 차종에 이 기술을 적용하기로 했다. 고객이 찾아가지 않아도 차량 성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자체 운영체제(OS)를 신차에 도입하는 일도 추진하고 있다. 종국적으로는 자체 운영체제를 현대차그룹의 모빌리티 사업영역 전체로 확장하고 여기에 무선업데이트도 적용하려 하고 있다.
현대차뿐 아니라 기존 완성차업체들은 운영체제 내재화를 꾀하면서 운영체제의 강자인 구글과도 협력해 구글의 차량용 운영체제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드 OS’ 활용을 병행하기도 한다.
모바일 시장에서 애플처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갖춘 곳이 있는가 하면 하드웨어는 삼성전자, 운영체제는 안드로이드 식으로 분업 체제로 형성된 것처럼 미래차 시장에서는 협업이 이뤄질 여지도 많아 보인다.
미래차 시장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 애플이 늘 그랬던 것처럼 판을 뒤집을지, 테슬라가 왕좌를 유지할지, 현대차와 같은 완성차기업들이 저력을 발휘할지, 아직은 결론 내리기 이른 시점이다.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