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지난해 국민연금 수익률이 곤두박질 치면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의 서울 이전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기금운용본부의 인력 이탈을 막고 국민연금 운영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든다.
▲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서울 이전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기금운용 인력 이탈을 막고 국민연금 운용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2일 금융투자업계 안팎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란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 이후 국민연금공단 전체가 아닌 기금운용본부의 일부 만이라도 서울로 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 국민연금법 27조는 국민연금공단의 소재지를 전라북도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필요할 때 정관에 따라 분사무소를 둘 수 있다고 돼 있다. 국민연금공단 이전은 법 개정 사안인 만큼 기금운용본부 인력이 일할 수 있는 분사무소라도 서울에 둬 인력 이탈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국민연금 소진을 막기 위해 25년째 동결 상태인 보험료율(9%) 인상 등을 뼈대로 하는 연금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연금개혁에 반발하는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기금운용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공단은 전주로 이전한 이후 우수한 운용 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및 기금운용본부가 전주로 이전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동안 국민연금을 떠난 운용역은 164명에 이른다. 해마다 평균 27.3명이 국민연금을 떠난 셈이다.
인력을 충원하려 해도 실력있는 운용역은 자녀교육 등을 이유로 전주까지 내려오길 꺼리는 편이다. 기금운용본부가 자본시장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다 보니 투자 동향과 정보 수집이 쉽지 않다는 의견도 많다.
그러다 보니 기금운용본부는 매년 기금운용직 정원(380명)을 좀처럼 채우지 못하고 있다.
실적에 따라 막대한 성과급을 받는 민간 자산운용사에 비해 낮은 처우도 문제다. 금융업계에서는 기금운용본부의 임금 수준이 민간의 50~75% 정도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수준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 벌어진다.
세계 최고의 연기금으로 꼽히는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의 최고투자책임자(CIO) 2022년 연봉은 약 39억 원이다. 국민연금 CIO인 기금운용본부장의 기본급은 3억 원대다.
인력 이탈 사태가 계속되면 장기 투자 수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수익률 -8.22%, 평가손실 79조6천억 원으로 1999년 기금운용본부 출범 이후 최악의 성적표를 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등 대외 불확실성 확대로 주식 및 채권 시장이 이례적으로 동반 폭락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위축된 영향도 있지만 지난 10년 연평균 수익률을 봐도 국민연금은 4.7%로 세계 주요 연기금 가운데 낮은 수준이다. 캐나다(CPPI)는 10%, 노르웨이(GPFG) 6.7%, 네덜란드(ABP) 5.1% 등이며 채권 위주로 보수적 운용을 하고 있는 일본(GPIF)도 5.7%의 수익률를 냈다.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전문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기금운영위원회는 위원장을 맡는 보건복지부 장관과 기획재정부 차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 정부 인사 6명과 지역가입자 단체 6명, 사용자-노동계 대표 각 3명 등 20명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자산운용 전문가는 2명뿐이고 대부분이 금융투자 비전문가들이다.
최근에는 보건복지부가 검사 출신인 한석훈 변호사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상근 전문위원으로 선임해 야권을 중심으로 전문성 독립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반면 캐나다연금은 비전문가인 정치인, 관료 등이 연금 운용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고 최고 투자 전문가들로 구성했다. 정치적 입김과 외부개입을 철저히 차단해 공격적 투자를 가능도록 하고 단기 수익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중장기 수익을 추구하고 있어 우리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시선이 떠오른다.
정부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힘쓰고 있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에 주주권 행사를 자문하는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에 전문가 단체가 추천한 전문위원을 넣기로 했다.
수탁자책임 전문위원 9명 가운데 가입자단체(사용자·근로자·지역가입자)의 추천을 각각 받아 위촉하는 비상근 위원을 6명에서 3명을 줄이고 대신 3명을 전문가단체 등으로부터 추천받도록 변경했다. 전문가 단체로는 한국금융연구원, 한국증권학회, 한국경영학회, 금융투자협회, 한국연금학회 등이 꼽힌다.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는 국민연금기금이 보유한 주식 의결권을 행사할 때 방향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우리 기업의 불투명한 지배구조가 꼽히는 만큼 국민연금공단은 스튜어드십코드를 적극적 행사하려는 기조를 보이고 있다.
스튜어드십코드 행사로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면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여 국민연금공단의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1월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신년 업무보고에서 "정부 투자 기업 내지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은 이른바 '스튜어드십'이라는 것이 작동돼야 한다"며 "지배구조 구성 절차와 방식에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다만 일각에선 정부가 스튜어드십코드를 정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경제개혁연대는 최근 논평을 통해 KT의 CEO 후보 선임 관련 발언을 비판하며 "스튜어드십코드 이행에 소극적이던 국민연금이 이제는 정권의 인사 개입에 동조하는 명분으로 스튜어드십코드를 부당하게 왜곡하려 한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운용 독립성의 원칙’은 국민연금의 기본적 기금운용 원칙이자 수탁자책임 원칙의 중요한 전제"라며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코드 왜곡 우려를 지우고 이제라도 세부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에 따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스튜어드십코드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