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DB하이텍이 팹리스 사업을 담당하는 브랜드사업본부의 분사를 추진한다. 분할 회사 대표이사로 내정된 황규철 브랜드사업본부장 사장으로서는 팹리스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기회를 갖게 되는 셈이다.
다만 DB하이텍 대주주의 지분율이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만큼 팹리스 분사를 확정하려면 주주총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 DB하이텍이 팹리스 사업을 담당하는 브랜드사업본부의 분사를 추진한다. 황규철 브랜드사업본부장 사장(사진)이 본격적으로 팹리스 사업의 날개를 펼 기회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DB하이텍이 주주총회 안건에 물적분할과 더불어 이를 주주들이 찬성할 만한 우호적인 조건들을 함께 달아뒀기 때문에 소액주주들의 반대 목소리는 이전보다 덜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8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DB하이텍이 물적분할 방식으로 브랜드사업본부의 분사를 결정하며 파운드리사업과 비교해 비중이 낮았던 팹리스사업의 전문화와 외형 성장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DB하이텍의 사업은 파운드리사업(반도체 위탁생산)과 반도체 설계·판매를 하는 팹리스사업으로 나뉜다. 현재로서는 파운드리사업이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부분이다.
팹리스사업은 브랜드사업본부가 담당하며 주로 디스플레이구동칩(DDI) 설계를 주력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저부가가치 범용 품목인 LCD용 디스플레이구동칩 위주로 사업을 하는 탓에 다른 팹리스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DB하이텍의 주력사업이 파운드리라는 점은 브랜드사업본부가 고부가가치 품목으로 제품군을 넓히는 데 작지 않은 제약 요소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파운드리사업의 고객사인 팹리스기업은 브랜드사업본부와는 경쟁 관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DB하이텍의 고객사들로서는 DB하이텍이 자신들의 설계도를 브랜드사업본부로 넘겨 기술을 도용할 가능성을 걱정할 수도 있는 셈이다. 이는 브랜드사업본부가 적극적으로 기술개발과 마케팅을 진행하기 어려웠던 원인이기도 하다.
이런 점 때문에 브랜드사업본부의 분사는 DB하이텍이 팹리스사업을 전문화하기 위한 첫 단계라고 볼 수 있다.
DB하이텍이 지난해 외부 인재인 황규철 사장을 영입한 것도 팹리스사업을 육성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DB하이텍은 황 사장 영입과 함께 브랜드사업본부장 직급을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한 단계 높이기도 했다.
황 사장은 1990년 삼성전자에 들어가 30년 넘게 시스템LSI사업부에서 일하며 디스플레이구동칩 제품개발팀장, 상품기획그룹장, 영업팀장, 전략마케팅팀장 등을 거치며 다방면에서 경험을 축적한 팹리스 분야 실력자로 꼽힌다.
황 사장은 기존에 LCD용에 치중된 디스플레이구동칩 제품군을 올레드(OLED)용으로 다변화하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전자업계와 디스플레이업계에서 고부가가치 올레드 적용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올레드용 디스플레이구동칩 수요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구동칩 외에 전력관리반도체(PMIC) 등으로 범위를 더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
황 사장은 7일 브랜드사업본부 분사를 결정한 이사회 결의 사실을 알리는 언론배포 자료를 통해 “새로 출범하는 DB팹리스(가칭)는 모회사 DB하이텍과 시너지를 높여 ‘제2의 미디어텍’으로 키워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미디어텍은 대만의 선두 팹리스기업으로 미국 퀄컴의 뒤를 잇는 글로벌 2위 모바일프로세서(AP) 설계 기업으로 평가된다. 미디어텍은 대만 반도체기업 UMC에서 분사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 UMC는 세계3위 파운드리 회사로 평가된다.
하지만 DB하이텍이 물적분할을 매듭지을 수 있을지는 현재로서는 다소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난해 8월에도 팹리스 분사를 추진하다 소액주주 반발에 부닥치며 무산된 일이 있다. 당시 소액주주들은 물적분할 반대를 위해 연대해 단체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DB그룹 지배구조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DB가 쥔 DB하이텍 지분은 김준기 DB 창업회장(3.61%)을 포함한 특수관계인까지 합쳐도 17.84%에 불과하다. 그런 만큼 다수의 소액주주들이 연대해 세력화하면 표대결에서 이기는 일이 만만치 않다.
다만 DB하이텍이 이번에 물적분할을 추진하면서 주주보호 방안과 주주친화 정책을 함께 제시한 만큼 소액주주들의 반발은 지난해보다 상대적으로 덜 할 수도 있다.
DB하이텍은 이사회를 통해 물적분할 안건을 의결하며 분할 신설법인의 상장을 추진하기 않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불가피하게 상장하더라도 모회사 DB하이텍의 주주총회를 통해 주주의 동의를 반드시 거치도록 정관 개정도 추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1주당 배당금을 지난해보다 3배 수준인 1300원으로 늘리고 1천억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추진하는 주주친화 방안도 내놓았다
소액주주들 사이에서 여론은 다소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DB하이텍 소액주주들이 모인 온라인카페 등에서 일부 소액주주들은 상장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물적분할을 부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온라인 종목토론방 등에서는 회사 측의 주주보호·주주친화 방안에 비교적 만족한다는 의견도 보인다.
DB하이텍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당사의 물적분할 추진은 주주권익을 훼손 논란을 일으킨 다른 회사와는 성격이 다르다”며 “소액주주 권익 보호를 위해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