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사장은 애초 올해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지난해 말부터 연임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이사회에서 연임 적격 후보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국민연금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다시 절차를 밟았고 이후에도 차기 대표 후보로 선정됐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또다시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면서 결국 차기 대표이사 후보군을 뽑는 절차는 다시 진행됐고 이 과정에서 구 사장은 결국 스스로 연임의 뜻을 접는 결정을 내렸다.
여권의 지속적 압박이 구 사장 스스로 물러나게 한 배경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우세하다. 구 사장은 주위에 '지배구조 불확실성이 오래 이어지면 회사 경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결단을 내렸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상 정부에서 계속 문제를 제기한 탓에 사퇴를 결심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현재 공개 모집 절차를 밟고 있는 KT의 차기 대표이사 후보군에는 집권 여당 출신 국회의원뿐 아니라 과거 윤석열 대통령의 선거캠프에서 일한 사람도 여럿 포함돼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보면 KT&G의 최장수 CEO로 재직하고 있는 백복인 대표이사 사장도 내년 임기 만료를 앞두고 속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백 사장은 그동안 KT&G를 무난히 잘 이끌어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가 수장에 오른 뒤 첫해인 2016년 KT&G는 연결기준으로 매출 4조4689억 원, 영업이익 1조4688억 원을 냈다. 2022년에는 매출 5조8565억 원, 영업이익 1조2678억 원을 거뒀다.
영업이익만 놓고 보면 실적이 뒷걸음질했지만 그가 KT&G를 맡기 시작한 이후 단 한 번도 매출이 후퇴한 적이 없다는 점은 의미 있는 지표다. 실제로 KT&G가 지난해 낸 매출은 창사 이래 역대 최고 매출이기도 하다.
특히 해외사업 강화는 백 사장의 대표적인 성과다.
KT&G는 지난해 글로벌 궐련부문(해외법인+수출)에서 연간 494억 개비의 담배를 팔았다. 2021년보다 27.1% 증가했다.
글로벌 궐련부문의 매출도 덩달아 늘었다. KT&G는 지난해 글로벌 권련부문에서 매출 1조98억 원을 냈는데 이는 1년 전보다 47.2%가 늘어난 것이다.
최근 KT&G가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사모펀드로부터 KGC인삼공사 인적분할, 비핵심사업 구조조정, 보유 현금 활용방안 마련 등 여러 압박을 받고 있지만 대외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백 사장이 일궈낸 성과 덕분이다.
하지만 이런 공로도 정부의 입김 앞에서는 무용지물일 수 있다. 구현모 사장 역시 3년 동안 KT를 잘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결국 연임 문턱을 넘는 데는 실패했다.
정치권에서 외풍이 불기 시작하면 백 사장이 실적과 성장성 등을 앞세운다고 하더라도 연임 의지가 쉽게 꺾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백 사장은 1993년 KT&G의 전신인 한국담배인삼공사에 입사해 30년가량 한 회사에서만 일한 'KT&G맨'이다. 외부 출신 인사가 대표이사에 오르던 관행을 끊고 2015년 10월 KT&G 대표이사 사장에 올라 공채 출신 첫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2018년 2월 첫 연임에 도전했을 때 당시 KT&G의 2대주주인 기업은행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국민연금이 중립 의결권 행사를 결정하면서 연임에 성공했다.
2021년에도 연임돼 KT&G 역사상 처음으로 3연임에 성공했다. 백 사장의 임기는 2024년 3월까지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