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3조원 클럽'에 입성한 식품기업들이 대거 늘어났다. 식품업계에서는 지속적인 가격인상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식품기업들이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을 외면한 가격정책을 내놓았다는 불만이 나온다. 지난달 27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의 모습.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지난해 '앓는 소리'를 냈던 식품기업들이 실적이 공개되자 미소를 짓는 반면 소비자들의 불만은 날이 갈수록 쌓이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국제 원자재 및 곡물 가격이 급등하자 지난해 식품업계는 잇따라 제품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들면서 다수의 식품기업들이 사상 최대실적을 거뒀다.
20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연매출 3조 원을 넘긴 국내 식품기업은 모두 8곳으로 늘어났다. 2021년에는 CJ제일제당, 동원F&B, 대상, 현대그림푸드 등 4곳이었는데 2022년 농심(3조1291억 원), 롯데제과(4조745억 원), SPC삼립(3조3145억 원), 오뚜기(3조1833억 원) 등이 대열에 합류했다.
식품업계에서는 매출 '3조 클럽'의 확대를 두고 2020년 코로나19 확산 이후 기업들이 해마다 실시한 제품 가격 인상이 주효했던 것으로 바라본다.
국내 라면 및 스낵업계 1위인 농심은 2021년 8월에 평균 6.8%, 2022년 9월에는 평균 11.3%(라면류)의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2번의 가격 인상으로 대표제품인 신라면 가격은 기존 676원에서 820원으로, 안성탕면은 기존 460원에서 649원으로 높아졌다.
주영훈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11월 펴낸 보고서에서 "농심의 가격 인상에도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라면 품목의 가격 경쟁력은 여전히 높다"며 "수요 감소 우려는 크지 않으며 가격 인상 효과를 온전히 누릴 것이다"고 내다봤다.
오뚜기는 2021년 8월(11.9%)과 2022년 10월(11.0%)에 걸쳐 2차례 가격 인상을 실시했다. 2차례 가격 인상으로 주력 제품 진라면의 가격은 548원에서 716원이 됐다.
이경신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오뚜기는 지난해 4분기 높은 시장지배력을 가진 메인 제품의 가격조정효과가 유효했다"며 "지난해 10월의 라면 제품가격 인상은 2023년에 유의미한 효과가 반영될 것으로 매출 증가폭은 연 200억 원 수준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롯데제과 역시 가격 인상 효과를 봤다. 롯데제과는 지난해 4월 빙과류와 초콜릿류 등의 가격을 올렸다. 대표제품인 빼빼로는 기존 1500원에서 1700원으로, 바(bar)형 빙과류는 기존 800원에서 1천 원으로 각각 가격이 올랐다.
식품기업들이 가격 인상의 근거로 내세웠던 식품 원·부재료 가격은 지난해 상반기 말 고점을 찍은 뒤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수익성은 차츰 개선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음식료 업종은 원가 상승 부담을 판매가 인상으로 전가할 수 있고 소비 경기 둔화 국면에서도 안정적인 판매량 성장이 가능하다"며 "중장기적으로 곡물 가격 등 원재료 단가 안정화 국면에서 수익성 개선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유엔식량농업기구가 발표한 세계식량가격지수는 2022년 3월 159.7에서 지난달 132.2로 27.5포인트 하락했다. 다만 통상 식품 원재료 가격의 변동이 실제 제품에 반영되기까지는 6개월의 시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그동안 식품업계의 가격 전가를 별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소비자들의 불만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경기침체와 물가 상승으로 가뜩이나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진 소비자들은 식품기업들이 잇따른 가격 인상을 통해 원가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한다.
소비자 체감경기 지표인 한국은행의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달 90.7로 지난해 6월(96.4) 이후 8개월 연속 100 이하를 나타내고 있다. 소비자심리지수가 100 이하로 나타나면 소비자들이 이전보다 현재 시점의 경기를 더 어렵다고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3조 클럽에 가입한 기업들의 2022년 영업이익률(일부 추정치 포함)을 살펴보면 농심 3.6%, 오뚜기 5.8%, 롯데제과 3.3% 등으로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2021년도보다 대부분 영업이익률이 낮아졌다.
하지만 지난해 가격이 오른 일부 품목의 경우 원재료·부자재 가격과 물류비, 세금 등으로 올해 다시 인상을 앞두고 있어 소비자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주류업계에 따르면 4월부터 맥주에 붙는 세금이 지난해보다 리터(ℓ)당 30.5원 올라 885.7원이 된다. 지난해 ℓ당 20.8원 오른 것보다 인상 폭이 더 크다.
맥주에 매겨지는 세금이 오르면 통상 주류회사는 출고가를 인상한다. 여기에 원·부자재 가격과 물류비, 전기료 등이 계속 오르고 있는 것도 맥주 출고가 인상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소주는 맥주처럼 주세가 인상된 것은 아니지만 원료인 주정을 생산하는 대한주정이 지난해 2월 주정 가격을 7.8% 올린 데 이어 유리병제조업체의 병 공급 가격도 병당 180원에서 220원으로 오르는 등 가격 인상이 예상된다.
일부 소비자들은 "기업들의 앓는 소리는 전부 엄살이었나"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가격 인상, 원자재 가격이 내리면 요지부동" "많이 남겨먹어라. 이제는 나도 안 먹을란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