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윤석열정부의 노동정책에 공동투쟁을 선언하면서 노정갈등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사진 왼쪽)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2월15일 간담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손을 잡았다.
정부가 노동조합(노조)을 향한 압박 수위를 높이자 힘을 합쳐 대응하기로 한 것이다. 양대 노총이
윤석열정부의 노동정책을 ‘노동개악’으로 규정하고 정면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밝힘에 따라 앞으로 노정(노조·정부) 사이 갈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17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노조 회계 투명성이 노조 개혁의 출발점”이라며
이정식 고용노동부(고용부) 장관에게 관련 대책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올해 핵심 국정과제인 노동개혁의 고삐를 당기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고용부는 이날 정부가 요구한 회계 장부 비치 여부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노조들에게 시정기간을 부여한다고 밝혔다. 고용부는 14일 동안 시정기간을 거쳐 미시정 노조들을 대상으로 과태료 부과 절차를 밟는다.
고용부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이 노조회계 개혁을 언급한 뒤 ‘조합원 1천 명 이상’ 노조와 연합단체 등 334 곳에 회계서류 비치 여부를 자율 점검한 뒤 결과 보고서와 증빙 자료를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하지만 해당기구의 36.7%만 제출을 완료했고 나머지는 제출을 하지 않거나 미비한 자료를 냈다.
고용부가 노조회계에 관한 압박을 강화하자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14일 국회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노동부는 회계투명성을 빌미로 노조의 운영에 대한 개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더해 두 위원장은 15일 간담회를 진행해 고용부가 자료 제출 의무위반을 이유로 과태료를 부과한다면 양대 노총 명의로
이정식 고용부 장관을 고발하는 것은 물론 정부를 국제노동기구(ILO)에 제소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두 위원장은 간담회에서 노조회계 문제 뿐만 아니라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허용, 최저임금 인상, 중대재해처벌법 및 연금개악 반대 등에도 공동 투쟁하기로 합의하고 ‘연대’를 공식화했다.
양 위원장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윤석열 정권의 폭주를 막겠다는 공동의 결심을 했다”며 “양대 노총은 함께 싸울 것을 결의한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온건노선으로 평가받는 한국노총이 강경노선인 민주노총과 손을 잡은 것은 그만큼 노동계를 향한
윤석열정부의 압박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양 위원장은 간담회를 마친 뒤 브리핑에서 “서로가 고민하는 내용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며 “
윤석열정부의 노동에 대한 노골적 공격에 함께 힘을 모아 싸워야 한다는 인식에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도 “그동안 양대 노총이 긴밀하게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함께 싸우는 것을 못했는데
윤석열정부의 노골적 탄압이 양대 노총 관계를 더 긴밀하게 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최근 대통령 직속 노사정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독자 행보도 양대 노총의 연대를 가속화시킨 원인으로 분석된다.
김 위원장은 1월 한국노총 위원장으로 선출된 뒤 경사노위 대화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내놨다. 그러나 경사노위는 8일 한국노총이 참여하지 않은 채 전문가들로만 구성된 ‘노사관계 제도·관행개선 자문단’을 발족하고 첫 회의를 진행해 노동계를 배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15일 민주노총과 간담회 뒤 언론과 가진 질의응답에서 경사노위 자문단에 관해 “당사자인 노동계와 사전에 전혀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선정한 학자들 가지고 자기들 입장을 내면 대화가 힘들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행태를 지속적으로 보인다면 재미없다”고 경고했다.
김 위원장과 양 위원장은 경사노위의 자문단 구성을 비판하며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진정한 노동개혁이 무엇인지 공개 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공개토론에 선을 그었다.
양대노총 위원장이 힘을 합치기로 결정한 가운데 지역 노조들도 투쟁활동에 시동을 걸고 있다.
민주노총 인천본부는 이날 오후 퇴근 시간대에 맞춰 인천 시내에서 대규모 행진을 펼친다. 또 울산 현대중공업 노조는 16일 사내 소식지를 통해 “총공세 투쟁에 나설 것”이라며 오는 3월과 5월 '춘계투쟁'을 예고했다.
양대 노총의 투쟁은 노동절이 있는 5월과 최저임금위원회 논의가 본격화되는 7월 절정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올해 양대 노총의 투쟁 강도는 예년보다 더욱 강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노총은 2006년부터 노동절에 마라톤 대회를 열었던 행사 대신 올해는 노동자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마라톤대회 대신 노동자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2016년 이후 7년만이다.
민주노총은 7일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5월 20만 총궐기와 7월 최대 규모의 총파업 투쟁 방침을 재확인했다. 한국노총은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함께하지는 않지만 같은 시기에 투쟁을 펼침으로써 민주노총 총파업에 시너지를 내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김 위원장은 민주노총과 간담회에서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동참하지 않더라도 그 시기에 한국노총 역량에 맞는 투쟁을 같이하겠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고용부 업무보고에서 “노동개혁은 3대 개혁으로 올해 주요 국정과제”라며 노사 법치주의 확립, 노조 회계공시 시스템 구축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양대 노총은 고용부의 업무보고 뒤 정부 노동정책을 비판하며 강도높은 투쟁을 예고했다.
한국노총은 성명을 통해 “법치주의를 내세워 노조를 부패 세력으로 몰아세우고 노동조합과는 사회적 대화조차 불필요하다는 선전포고”라며 "한국노총은 윤 대통령의 선전포고에 당당하게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도 “노동개악에 맞서 불평등 양극화를 해소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흔들림 없는 전진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