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자동차 전장부품 등 신사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시스템반도체 전문기업 인수를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
[비즈니스포스트] “돈이 너무 많다는 것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보유하고 있는 현금을 서둘러 소비하지 않으면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로이터는 최근 삼성전자가 100조 원 이상의 현금성 자산을 쌓아두고 있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논평을 내놓았다.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원화가 미국 달러화 등 다른 화폐에 비해 약세를 보이고 인플레이션 심화로 돈의 가치도 낮아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그동안 축적해 둔 막대한 현금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가장 우선적으로 거론되는 것은 대규모 인수합병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전문기업 인수를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게 나오고 있다.
정작 삼성전자는 중장기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런 관측을 두고 말을 아끼고 있지만 증권가나 주요 외신은 이미 특정 기업을 삼성전자의 유력한 인수 대상으로 거명할 만큼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기업 인수설이 꾸준히 나오는 배경은 이재용 회장이 2030년까지 세계 시스템반도체 1위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데 있다. 냉정한 시각으로 보면 삼성전자가 지금의 기술 역량과 사업 규모로 이를 달성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스템반도체시장 특성상 미국 인텔과 퀄컴, 엔비디아와 AMD는 물론 TSMC와 미디어텍 등 대만 기업이 높은 진입장벽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우수한 기술력과 사업 노하우를 갖추고 있는 반도체기업을 인수한 뒤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연구개발 역량을 더욱 강화한다면 충분히 도약 기회를 노릴 수 있다.
삼성전자의 인수 후보로 종종 거론되는 ARM과 NXP, 인피니언,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온세미컨덕터 등 업체의 공통점은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자동차용 반도체 등 신산업 분야 시스템반도체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라는 것이다.
이는 삼성전자가 주로 육성하고 있는 새 성장동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해당 기업을 인수해 반도체 기술 라이선스를 대거 확보하게 된다면 인공지능 플랫폼과 사물인터넷 기기, 자동차용 전장부품 등 시장에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인수 추진 가능성이 언급된 반도체기업들의 사업 영역은 인텔이 최근 수 년 동안 거액을 들여 사들인 여러 반도체기업과 대부분 일치한다. 인텔은 이미 신사업 분야에서 시스템반도체 분야의 새 성장 기회를 창출해야 한다는 점을 실감하고 인수합병에 집중해 왔다.
인텔의 인수가 성사된 주요 반도체기업은 알테라와 모빌아이, 타워세미컨덕터를 포함한다. 인텔은 PC와 서버용 CPU를 넘어 인공지능 기반 슈퍼컴퓨터와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등 영역에서 사업 기회를 넓히기 위해 해당 기업을 사들이는 데 모두 374억 달러에 이르는 자금을 투자했다.
이러한 인수합병의 성과는 대부분 차세대 산업 분야에서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확인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를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을 선점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인텔의 공격적 인수합병 전략은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첨단 반도체시장이 발전할수록 경쟁력을 높이려면 여러 기업이 힘을 합쳐야만 한다”며 인수합병을 통해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인텔은 2022년 경쟁사인 AMD에서 근무하던 기업 인수 전문가도 영입했다.
결국 머지 않은 시일에 삼성전자와 인텔이 시스템반도체 전문기업 인수 과정에서 경쟁자로 맞붙게 될 수 있다는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기업 인수합병이 성사되면 미세공정 반도체 제조 기술과 메모리반도체, 전장부품과 사물인터넷 기기 등 완제품과 수직계열화 구조를 앞세워 성장 잠재력을 더욱 키울 수 있다.
인텔과 같은 최대 시스템반도체 경쟁사도 인공지능 및 자동차용 반도체와 같은 신사업 분야에서는 아직 시장 개막을 노리고 기술력을 키워가는 초기 단계에 있는 만큼 삼성전자가 맞대결에서 충분히 승산을 노릴 수도 있다.
삼성전자의 대규모 인수합병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 능력을 다시금 증명할 수 있는 계기로도 중요하게 꼽힌다. 이 회장은 오래 전부터 삼성전자와 여러 글로벌 기업의 협력을 주도해 온 ‘삼성의 외교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2016년 삼성전자가 미국 전장부품업체 하만을 인수하는 과정에도 이 회장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인수합병 절차가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앞으로 시스템반도체 전문기업 인수가 추진되는 과정에도 그의 역할이 더욱 돋보이게 될 수 있다.
다만 세계 독점금지 규제당국이 최근 대형 IT기업의 인수합병 시도를 더욱 엄격하게 제한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미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갖추고 있어 여러 국가에서 합병 승인을 받기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삼성전자의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여러 반도체기업이 이미 높은 성장성을 인정받고 있는 만큼 지분 매각을 추진할 이유가 크지 않다는 것도 걸림돌로 꼽힌다. 시장에 매물이 등장한다고 해도 인텔뿐 아니라 AMD와 엔비디아, 퀄컴 등 다른 반도체기업이 인수전에 뛰어들어 경쟁이 치열해질 수도 있다.
결국 삼성전자가 인텔의 인수합병 선례를 참고해 다양한 시스템반도체 영역에서 인수 대상을 물색하는 동시에 자체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는 연구개발 투자도 확대하며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용원 기자
[편집자주] 2023년, 글로벌 경기침체 리스크가 현실로 다가오며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 및 국가 경쟁력에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때다. 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가 현재 전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파악하는 일은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글로벌경제팀에서 연재하는 [삼성의 라이벌] 기획은 삼성전자와 주요 라이벌 기업 사이의 경쟁 판도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예측해 삼성의 현 위치를 짚어보고 이러한 경쟁이 어떠한 방식으로 삼성의 위기 극복 능력을 키우는 데 기여하고 있는지 진단한다.
3부 - 삼성 vs INTEL
(4) '무어의 법칙' 내세운 인텔,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선전포고
(5)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인수 가능성, 인텔의 선례 주목
(6) 미국 반도체 지원법 수혜 인텔에 집중, 삼성전자 ‘불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