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3-02-12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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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농가소득과 농업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여야 정치대립의 최전선에 놓였다.
더불어민주당은 단독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올렸고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법안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 2월 임시국회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두고 여야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1월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부의의 건이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무기명으로 표결 처리되는 모습. <연합뉴스>
양곡관리법 개정안 처리 과정은 현재 여야의 노선갈등과 국회 역학관계 등 정치권의 문제를 그대로 담고 있기에 2월 국회에서 어떻게 마무리지어질지 관심이 모인다.
12일 정치권에 따르면 2월 임시국회 주요쟁점 가운데 하나로 양곡관리법 개정안 처리 여부가 꼽히고 있다. 2월 임시국회에선 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24일로 잡혀있는데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처리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양곡관리법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를 넘거나 수확기 쌀값이 전년 대비 5% 넘게 떨어지면 정부가 의무적으로 쌀을 매입해 시장에서 격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양곡관리법 개정이 대두된 이유는 쌀값 하락으로 농가소득의 불안정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9일 기준 산지 쌀값(20kg)의 도매가격은 4만6880원으로 1년 전(5만2280원)보다 5400원(9.7%) 하락했다. 올해 1월 물가상승률이 5.2%인 점을 감안할 때 체감 농가소득 감소는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이 감소하고 있어 쌀값 하락은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1970년 136.5kg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1년 56.9kg으로 급감했다.
문제는 거대 양당이 쌀 가격 하락에 따른 대응방안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커 합의점을 도출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민주당은 정부의 지원을 통해 쌀 생산 농가의 소득을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부여당은 시장논리에 따라 농업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대립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지낸 이개호 민주당 의원은 8일 열린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식량안보의 중추인 쌀 생산 농가의 안정감 유지 측면에서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며 “국가와 정부는 국민이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양곡관리법 개정으로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면) 쌀 공급과잉이 심화하고 재정이 한 품목에 집중돼 미래 농업 투자에 악영향이 우려된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두고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최근 화제가 된 인공지능(AI) 채팅 프로그램 챗GPT를 주장의 근거로 드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7일 챗GPT에 양곡관리법을 물은 결과 △정부부채 증가 △과잉 생산 문제 △시장 비효율성 초래 △공공 부패 유발 △농업 경쟁력 저하 등 부작용이 제시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편에선 챗GPT에게 양곡관리법의 ‘긍정적 영향’을 물어보면 농민보호, 쌀값 안정화, 쌀 생산 장려, 빈곤 감소, 식량 안보 기여 등을 언급한다는 반론도 나왔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부의된 과정은 여소야대 구조 속 쟁점법안 처리의 난맥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관련 상임위인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하다가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2022년 10월19일 의결이 이뤄졌다. 찬성 10인, 반대 6일으로 상임위를 통과했다.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로 넘어가자 국민의힘 소속인 김도읍 법사위원장은 법사위에 안건 상정을 하지 않고 버티기에 돌입했다. 여야가 양곡관리법 개정안 문제로 충돌하면서 국회 법사위 소위원회 논의가 중단돼 다른 법안들의 논의도 불투명해졌다.
민주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60일 넘게 법사위에서 논의되지 않은 점을 근거로 국회법 제84조를 들어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1월30일 열린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부의안건이 야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이에 따라 본회의에서 개정안 표결 절차를 밟을 수 있게 됐다.
최종 표결 절차만 남겨두자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본회의 부의를 막지 못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요청을 공식화했다. 169석을 가진 민주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단독 상정해 처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 처리를 두고 지난 대선 경쟁자가 맞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내놓은 1호 민생법안인데 이에 맞서 윤 대통령의 1호 거부권행사 법안이라는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이 대표는 최근 최고위원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당연히 처리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한 반면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언급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타협점을 찾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으나 합의를 이룰지는 미지수다. 앞서 국민의힘과 정부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농수산위에서 의결되기 전 쌀 생산 면적을 구조적으로 줄일 수 있도록 전략 작물로의 전환을 지원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내놨지만 민주당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월31일 기자들과 만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우리가 바라는 수준으로 협상이 되면 타협될 것이고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두 가지 전략”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정부여당의 합당한 대안이나 수정안 제시가 없다면 부득이 현재 올라와 있는 안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