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1월4일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사옥에서 열린 2016년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현대차 수익성 악화의 수렁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를 맡은 뒤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현대차 내부에서 공공연하게 나오는 말이다.
이런 말이 나오는 뿌리는 현대차의 수익성 악화다.
친환경차, 자율주행차, 스마트카 등 현대차가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할 곳은 예전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아졌지만 현대차는 수익성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투자할 여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투자가 어려워질수록 현대차의 미래는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정몽구 회장으로서는 한전부지 인수에 10조 원 넘게 쏟아부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는 말도 다시 나돈다.
◆ 2분기에도 수익성 악화 전망
11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가 2분기에도 수익성 악화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가는 현대차가 2분기에 1조6천억 원에서 1조7천억 원대 초반의 영업이익을 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2분기보다 적게는 3%에서 많게는 8%까지 감소하는 것이다.
현대차는 2분기에 지난해 2분보다 5.4% 증가한 128만6300여 대를 판매했다.
현대차는 상반기에 주요시장인 미국에서 역대 상반기 기준으로 최대 판매기록을 세웠다. 중국에서도 지난해부터 이어진 극심한 판매부진을 털어내고 5월부터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현지언론에 따르면 6월 현대차의 중국 판매량은 지난해 6월보다 6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반기 국내에서 판매량 역시 지난해 상반기보다 4.5% 늘었다.
곳곳에서 판매량 회복세가 감지되고 있지만 현대차의 영업이익이 당분간 뒷걸음질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파악한다. 글로벌 자동차시장이 이제 현대차에게 예전과 같은 높은 수익성을 보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을 거두고도 5년 만에 가장 낮은 영업이익을 냈다.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2014년 2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8분기 연속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해 줄었다. 한때 영업이익률이 10%를 넘으며 글로벌 자동차회사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을 자랑했지만 올해 1분기에 6%대까지 떨어지며 거의 반토막났다.
|
|
|
▲ 루크 동커볼케(왼쪽) 현대차 전무와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전무가 6월2일 2016부산국제모터쇼에서 G80 언론 발표행사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 뒷걸음질하는 수익성
현대차가 앞으로도 예전 수준의 수익성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업계는 바라본다.
글로벌 자동차시장에서 경쟁의 양상이 과거와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세단을 비롯해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디젤차, 고급차 등 경쟁의 범위는 넓어졌고 강도는 세졌다.
현대차는 중국에서 가격경쟁력을 내세운 현지 자동차회사들에 바짝 추격당하고 있다.
현대차는 2002년 베이징현대를 만들며 중국시장에 진출했다. 그 뒤 ‘현대속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파른 성장을 해왔다. 13년 동안 베이징현대의 매출은 16.5배나 늘었다.
그러나 지난해 현대차의 중국 판매량은 2014년보다 7%나 감소했다.
올해 들어 중국 판매량이 어느 정도 회복됐지만 중국 자동차시장의 성장둔화와 과잉경쟁으로 예전과 같은 성장세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현대차는 중국에서 현지 자동차회사들의 저가 SUV보다 가격경쟁력을 갖춘 SUV를 내놓지 못하면 밀려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미국에서도 고급차시장에서 다양한 고급브랜드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말 고급브랜드 제네시스를 만들며 본격적으로 고급차시장 공략에 나섰다. 제네시스는 국내에서는 성공적으로 자리잡았지만 글로벌시장에서 아직 첫차도 내놓지 않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네시스가 완전히 독립하는 과정에서 판매망 구축,광고비와 판촉비 등 많은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BMW나 메르세데스-벤츠는 물론 토요타의 렉서스보다도 15년이 늦은 만큼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 튼튼한 수익원 국내판매도 흔들
현대차가 글로벌 시장을 개척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 노릇을 해줬던 내수판매와 수출도 흔들리고 있다. 내수판매와 수출에서 나오는 영업이익은 1분기 기준으로 현대차 전체 영업이익의 78%에 이른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과거 둘이 합쳐 80%에 가까운 내수점유율을 토대로 해외에 진출해 판매량 기준으로 세계 5위의 자동차회사로 발돋움했다. 내수에서 고부가가치 차종을 판매해 거둔 이익을 토대로 해외에 투자하는 전략을 써왔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의 내수 점유율은 2014년부터 60%대로 떨어졌다.
현대기아차의 상반기 점유율은 67.2%로 지난해 연간점유율인 67.8%보다 하락했다. 기아차 점유율이 1.3%포인트 상승했지만 현대차 점유율이 1.6%포인트 떨어졌다.
현대차는 7월 쏘나타나 그랜저, 제네시스(DH) 등 주요차종에 대해 사상 최초로 60개월 무이자할부 판매도 진행한다. 상반기 내수 점유율이 하락하면서 재고물량이 쌓였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의 내수비중이 그리 높지 않은데도 현대차가 내수 점유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내수가 흔들리면 해외시장도 흔들리기 때문”이라며 “환율 등 불확실성이 큰 해외시장에 비해 내수에서 안정적 실적을 냈지만 이제 내수에서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출도 계속 줄고 있다. 현대차 수출물량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9개월 연속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줄었다. 올해 상반기 수출물량 역시 지난해 상반기보다 15% 이상 감소했다.
|
|
|
▲ 정몽구(가운데) 현대차그룹 회장이 8일 현대차그룹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현장을 찾았다. |
◆ 다시 돌아보는 한전부지 인수
현대차가 그 어느 때보다 투자를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투자할 여력이 줄어들면서 현대차의 미래 경쟁력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전문가들은 미래 자동차업계가 친환경차,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분야에서 각각 혁명에 가까운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미래 자동차에 투자를 늘리며 대비하고 있다.
이런 상황인 만큼 정몽구 회장이 2014년 한전부지 인수에 10조5500억 원을 쏟아부은 점이 뼈아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기아차는 다른 자동차회사들이 주춤한 사이에 외형과 실적이 모두 성장해 인수합병 여력이 많았지만 인수합병시장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다른 브랜드를 인수하는 대형 인수합병이나 경쟁사를 압도할 기술개발 등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글로벌에서 경쟁하는 자동차회사들은 인수합병에 적극 나서며 시장점유율을 넓혀왔다.
폴크스바겐은 치열한 지분 경쟁 끝에 포르쉐를 흡수했다. 폴크스바겐은 현재 10개 넘는 브랜드를 보유하고 여러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프랑스 르노와 일본 닛산도 자본 제휴를 통해 글로벌 4위의 자동차회사가 됐다. 이탈리아의 피아트 역시 크라이슬러와 페라리를 통해 활로를 찾았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재규어랜드로버 매각 당시 현대차가 유력 인수후보로 거명됐지만 결국 인수하지 않았다“며 "고급브랜드나 스포츠카 브랜드를 확보할 경우 브랜드 인지도를 한번에 크게 끌어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술력도 키울 수 있는데 이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이러는 사이에 글로벌 자동차시장의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도 나와 현대차를 더욱 옥죄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6일 ‘2016년 하반기 산업별 전망 보고서’에서 “제2의 조선, 철강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자부품과 자동차도 선제적 구조조정과 비중 축소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주완 연구위원은 “글로벌 시장과 수출의 포트폴리오 차이가 클 경우 불황기에 진입하면 필연적으로 리스크가 발생한다”면서 “자동차의 경우 현재는 성장성이 높아 심각한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시장이 둔화되는 순간 급격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자동차산업의 글로벌 포트폴리오 비중은 7.5%인데 우리나라의 자동차 수출 포트폴리오 비중은 13.2%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