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복인 KT&G 대표이사 사장이 궐련형전자담배 해외사업확대를 위해 필립모리스인터내셔날(PMI)와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했다. 30일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 호텔에서 백 사장과 야첵 올자크 PMI 최고경영자가 장기계약 체결식을 열고 있다. |
[비즈니스포스트] "3년 전 안드레 칼란초폴루스 의장이 협력의 첫발 내디뎠는데 그의 뜻을 이어 오늘 새로운 협력의 역사를 쓰게 됐다. 더 많은 KT&G의 혁신 제품을 세상에 소개할 수 있게 돼 기쁘다."
30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KT&G와 15년 장기 계약을 맺은 야첵 올자크 필립모리스인터내셔날(PMI) 최고경영자가 한 말이다.
연기가 덜나고 몸에 덜 해로워 '차세대 담배'로 꼽히는 궐련형전자담배(HNB).
백복인 KT&G 대표이사 사장은 글로벌 궐련형전자담배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라이벌인 PMI와의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길을 택했다.
KT&G와 PMI는 15년 동안 제품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PMI의 궐련형전자담배 '아이코스'가 이미 진출한 70여 개 국가를 대상으로 KT&G의 궐련형전자담배 '릴'을 순차적으로 내놓기로 했다. PMI는 향후 중저소득 국가로도 릴의 판매망을 확장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날 계약 체결식에서는 KT&G에게 유리한 것으로 해석될 계약상의 변경점이 공개됐다. PMI와 KT&G의 협력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선 이번 장기공급 계약에 PMI가 3년 단위로 최소 판매수량을 보장하기로 했다. 첫 3년 동안은 160억 개비의 판매를 PMI가 보장하고 이후 수량을 협의한다.
또한 기기(플랫폼)의 경우 기존에는 모든 기기가 일괄적으로 공급 계약에 묶였지만 새 계약에서는 기기 종류별로 각각 5년마다 공급 계약을 갱신하기로 했다.
생산공장의 공유 가능성도 제시됐다. 상대방이 대체 생산한 상품에 대한 로열티 계약 조항이 들어간 것이다. KT&G는 PMI와 협력해 효율적인 생산이 가능하다면 로열티를 지불하고 PMI의 해외 생산공장에서 전용스틱을 생산할 수도 있게 됐다.
KT&G와 PMI의 이런 협력관계는 서서히 성과로 나타날 전망이다.
임왕섭 KT&G NGP(차세대제품·전자담배) 사업본부장은 PMI와 장기계약 체결식에서 "지난해 전자담배 해외 매출은 이전 연도보다 약 2배, 영업이익은 4.6배 성장했다"며 "전자담배 산업의 특성상 디바이스가 먼저 판매된 후 스틱 판매량이 올라오는 구조이므로 실적은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백 사장은 2015년 10월 KT&G 대표이사에 발탁돼 현재까지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국내 흡연율 감소에 대응해 해외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일반궐련 제품에 이어 궐련형전자담배의 해외사업을 키우고 있다.
특히 백 사장은 차세대 담배로 꼽히는 궐련형전자담배에 주목하고 2016년 마케팅본부 산하에 소규모 조직인 제품혁신실을 만들어 차세대 제품 개발을 맡겼다.
백 사장은 기술경쟁력 확보에도 공을 들였다. KT&G의 담배 관련 연구개발 비용은 2016년 122억 원에서 해마다 꾸준히 늘어 2021년 392억 원까지 증가했다. 전자담배 관련 특허 출원 건수도 2019년 380건에서 2020년 1천 건을 돌파하고 2021년에는 1096건에 이르렀다.
KT&G는 2017년 자사의 첫 궐련형전자담배 '릴'을 시장에 내놨다. 릴은 2022년 출시 5년만에 국내 궐련형전자담배 시장에서 점유율 48.5%로 1위에 올라섰다.
국내에서 제품 경쟁력을 입증한 백 사장은 해외로 눈을 돌리면서 2020년 궐련형전자담배 시장의 경쟁자인 PMI와 손을 잡는 승부수를 띄웠고 이번에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한 것이다.
KT&G는 이번 계약을 통해 해외 궐련형전자담배 사업에서 평균 매출 성장률 20.6%, 평균 스틱 매출 수량 증가율 24.0%를 거둘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KT&G는 릴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위험 저감 담배 제품(MRTP)'으로 승인받기 위한 유해성 저감 연구에도 PMI와 협력하기로 해 향후 미국시장 진출 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이런 KT&G의 전략에 반대 입장을 보이는 곳도 있다. 3월 예정된 KT&G의 정기주주총에서 주주제안을 접수한 사모펀드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다.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주주제안에서 "글로벌 유통을 PMI에 의존함으로써 IQOS의 하위 브랜드로 인식된다면 장기적으로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KT&G는 빠르게 성장하는 글로벌 HNB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자체 글로벌 유통 및 마케팅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반대에 불구하고 백 사장은 KT&G와 PMI의 협업 2년 만에 릴의 진출국가 수가 31개 국으로 급성장한 만큼 협력 관계의 확대가 얻는 게 더 많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국내 궐련형전자담배 시장은 KT&G를 선두로 PMI와 BAT(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의 추격이 뜨거워 지고 있다.
국내 궐련형전자담배 시장에서 점유율 약 10%로 3위인 BAT는 다음달 14일 '글로'의 신제품 출시를 예고했다. 점유율 약 40%로 추정되는 PMI도 릴에게 뺏긴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탈환하기 위해 '아이코스 일루마'를 지난해 10월 출시했다. 점유율 약 49%인 KT&G는 1위 수성을 위해 '릴 에이블'을 출시했다. 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