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슬아 컬리 대표이사(사진)의 향후 행보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컬리의 기업공개 철회로 당장 자금 조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로 떠오른 모양새다. |
[비즈니스포스트] 컬리가 코스피 상장 계획을 철회하면서 앞으로의 행보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김슬아 컬리 대표이사가 애초 기업공개를 추진했던 목적이 물류인프라 확대를 위한 자금 조달이었던 만큼 앞으로 다른 경로를 통해 돈을 끌어와야 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컬리의 수익성 개선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데다 투자금융시장의 유동성이 말라버린 상황 등을 감안할 때 김 대표가 다음 스텝을 밟는 일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 상장 철회한 김슬아, 컬리 추가 운영 자금 확보할 수 있나
5일 투자금융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4일 코스피 상장 절차를 중단한다고 밝힌 컬리가 앞으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자금 확보다.
우선 컬리의 입장은 명확하다. 자금을 시급히 조달해야 할 만큼 재무적으로 나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컬리는 4일 배포한 입장자료에서 "계획 중인 신사업을 무리 없이 펼쳐 가기에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투자금융업계의 시각은 정반대다. 컬리가 하반기쯤 운영 자금을 돌리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 대다수 기관투자자의 의견이다.
컬리는 입장자료를 통해 "당사는 지난해 이커머스업계 평균을 크게 뛰어넘는 성장을 이뤘다"고 밝혔다. 이는 총거래액과 매출의 증가 폭을 거론한 것으로 보이는데 투자자들이 가장 예의주시하고 있는 수익성 개선 여부와 관련해서는 말을 아꼈다.
수익성 개선 여부를 함구한 이유를 놓고 매출과 영업손실 규모가 동시에 늘어나는 기존의 수익 구조를 개선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겠냐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커머스업계 일각에서는 컬리가 올해 상반기에 보유 현금을 모두 소진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컬리가 마지막으로 투자를 받은 것은 2022년 1월 홍콩계 사모펀드 앵커에쿼티파트너스로부터 유치한 2500억 원 규모 투자였다.
2021년에만 영업손실 2140억 원을 봤던 컬리로서는 지난해 수익성을 유의미하게 개선하지 못했다면 조만간 투자금이 바닥을 보일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김슬아 대표가 올해 하반기 회사를 운영할 자금을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 투자자들을 만나러 다니고 있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컬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금 확보다. 상장으로 일부 자금이 들어왔다면 숨을 고를 수 있었겠지만 이마저도 중단하면서 당장 운영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급선무가 된 셈이다.
하지만 김 대표가 투자금을 추가로 유치하는 일은 여러모로 어려워 보인다.
우선 김 대표가 보유한 컬리 지분은 5%대다. 김 대표가 추가 자금을 조달하려면 자신이 보유한 지분 일부를 팔아야 하는데 자칫하면 김 대표의 지분이 모두 사라지게 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기존에 컬리에 자금을 댄 투자자 모두 '컬리=
김슬아'라는 상징성을 보고 돈을 넣었는데 김 대표의 지분이 더 희석되면 김 대표가 빠진 회사에 돈을 집어넣는 꼴이 될 수 있다.
현재 컬리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기존 사모펀드로부터 추가 투자를 유치하는 일도 쉽지 않다. 수익성 제고와 관련한 뚜렷한 비전이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칫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두텁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리 상승으로 투자금융업계에도 돈이 말라 있는데 이 상황에서 컬리가 돈을 더 달라고 요청해도 자금을 더 모아줄 수 있는 재무적투자자는 사실상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물론 김 대표가 기존 투자자들과 논의한 뒤 컬리 상장을 철회한 만큼 일부 자금을 조금이나마 수혈받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온다.
재무적투자자들로서는 현재 시장에서 거론되는 컬리의 기업가치대로 상장할 때 자금회수(엑시트)를 할 수 없는 만큼 우선 컬리를 설득해 상장을 멈추고 대신 김 대표가 요구하는 운영 자금 일부를 주기로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컬리가 현재 운영 자금으로 얼마를 확보하고 있는지 공개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금 조달 문제가 얼마나 시급한지는 예단할 수 없다.
컬리는 비상장기업이라 보유 현금과 관련한 공시 의무를 지지 않는다. 다만 매해 3월 말이나 4월 초에 의무적으로 감사보고서를 내놓는데 올해도 이 때가 되어야만 컬리의 자금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 컬리는 어쩌다가 상장 스텝이 꼬였나
컬리가 상장을 철회한 배경을 놓고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는 컬리의 몸값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애초 사모펀드로부터 4조 원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던 컬리는 지난해 투자금융업황이 악화한 탓에 기업가치가 1조 원대 안팎으로 쪼그라들었다.
컬리 입장에서는 계획했던 수준의 자금 조달을 포기해야 하는 데다 기존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도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상장 철회 수순을 밟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컬리가 상장 적기를 놓쳤다는 의견과도 일맥상통한다.
쿠팡이 상장하던 2021년 3월만 하더라도 시장에는 투자금융시장의 유동성이 풍부했다. 당시만 해도 1%대의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컬리가 상장에 뛰어든 지난해는 투자금융업황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적자를 애써 무시하고 미래 성장성만 보고 달려온 컬리와 같은 회사에 투자해야 하느냐의 문제는 투자금융업계 모든 이해당사자의 고민이었다.
컬리만의 성장 스토리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도 상장 실패의 이유로 꼽힌다.
사실 적자로만 따지면 쿠팡이 컬리보다 더 심각했다. 쿠팡이 상장할 때까지 냈던 영업손실은 누적으로 5조 원가량이었는데 이는 컬리의 누적 적자 5천억 원의 10배다.
하지만 쿠팡은 신선식품부터 생필품을 아우르는 종합 이커머스몰로서 계획된 적자를 통해 플라이휠 전략을 가속화하려는 ‘한국판 아마존’이라는 성장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플라이휠은 미국의 대표 이커머스기업인 아마존을 설립한 제프 베이조스 창업자가 제시한 전략으로 사업 확장에 한 번 속도가 붙으면 관성으로 계속 사업이 커지는 효과를 말한다.
하지만 컬리는 식료품(그로서리) 중심의 버티컬 커머스(한 분야에 특화한 상거래), 새벽배송의 창시자라는 수식어 이외에는 성장성을 부각할 만한 매력적 스토리가 따라오지 않았다.
새벽배송을 직접 도맡는 고비용·저효율 구조에 대한 개선이 가능한지 등에 대해서도 투자자들이 많은 우려를 나타냈지만 이를 해소하지 못했다.
김슬아 대표는 상장 추진 이전부터 여러 인터뷰를 통해 "마음만 먹으면 흑자전환은 당장이라도 가능하다"는 뜻을 보였지만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수치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기존 투자자들의 요구대로 서비스를 확장하다가 상장 스텝이 꼬였다는 의견도 있다.
마지막으로 컬리에 투자한 사모펀드가 김 대표에게 요구했던 것은 단순히 수도권에서 그로서리 경쟁력을 강화하라는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다시 말해 좀 더 많은 지역으로 서비스 권역을 넓히고 취급하는 상품 수를 더 늘려 쿠팡과 같이 거래액을 키우면 승부를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데 컬리와 사모펀드의 공감대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길을 걷다가 결국 수익성이 더 낮아지는 악순환 구조에 빠져들었고 결국 몸값 하락에 따른 상장 철회라는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 투자금융업계의 시선이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