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희 기자 JaeheeShin@businesspost.co.kr2022-12-27 16: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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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이 한 고비를 또 넘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겸 대한항공 대표이사가 두 항공사의 기업결합 승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꾸린 국가별 전문가그룹의 '맞춤형 전략'이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겸 대한항공 대표이사(사진)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 승인을 위해 국가별 맞춤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승인을 위해 5개 팀, 모두 100여 명의 국가별 전담 전문가로 구성된 태스크포스를 운영해왔다. 또한 350억 원을 들여 16곳의 자문사를 선정했다.
대한항공은 필수 신고국가인 중국으로부터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된 기업결합을 승인받고 임의 신고국가인 영국의 승인이 유력함에 따라 이제 사실상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필수 신고국가 3개국의 승인만 남겨두게 됐다.
27일 항공업계에서는 난관이 예상되던 중국 경쟁당국의 승인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9부 능선을 넘어서면서 이른바 '항공 빅딜'에 점차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항공업계는 특히 조원태 회장의 통합 의지가 강한 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한항공이 해외 경쟁당국의 승인을 끌어낼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승인을 위해 5개 팀, 모두 100여 명의 국가별 전담 전문가로 구성된 태스크포스를 운영해왔다. 또한 350억 원을 들여 16곳의 자문사를 선정했다.
남은 필수 신고국가 가운데 '큰 산'으로 꼽히는 곳은 유럽연합이다. 유럽연합 경쟁당국은 현재 기업결합 사전심사에만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한항공은 경쟁제한성 관련 증빙자료 제출과 시정조치안 관련 협의를 유럽연합 경쟁당국과 마친 뒤에 정식으로 신고서를 제출해 전체 심사기간을 단축한다는 전략을 세워뒀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경쟁제한성을 유럽연합 경쟁당국이 납득할만한 수준으로 완화하는 게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항공업계 일각에서는 유럽연합이 독점 발생 가능성을 들어 기업결합에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댄다는 점을 들어 승인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
실제로 지난해 4월 에어캐나다와 트랜젯AT(Transat AT)의 합병철회 결정, 같은해 12월 IAG와 에어유로파 합병철회 결정은 유럽연합의 시정조치 요구에 항공사들이 결합을 포기한 사례다.
다만 에어캐나다와 트랜젯AT은 캐나다~유럽 사이 중복 노선이 30개 였던 것에 반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경우는 중복 노선이 6개에 그친다.
미국에서는 법무부가 독과점 우려에 대한 추가검토를 이유로 지난달 심사 기간을 연장했다.
대한항공은 태스크포스를 통해 미국 당국이 요구하는 합병자료를 제출하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대한항공은 국내 항공사인 에어프레미아, 미국 항공사인 델타항공, 유나이티드항공 등의 서울~미주 노선 운항을 확대하면 경쟁제한성을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미국 법무부는 올해 3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경쟁제한성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심의수준을 '간편'에서 '심화'로 격상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추가로 요구한 자료를 제출하고 10월에 임원 인터뷰도 진행했다.
이밖에 대한항공은 올해 9월 국토교통부의 지원을 받아 미국에서 기업결합 승인을 받기 위해 인천~로스앤젤레스(LA) 노선을 운항할 동남아시아 저비용항공사를 물색한 바 있다.
조 회장은 장외에서 여론전을 펼치기도 했다.
조 회장은 올해 4월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국내 기업환경 세미나 2022'에 참석해 "대한항공이 심각한 재무적 어려움에 빠진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함으로써 미국 경제에 대한 기여도를 높일 수 있다"며 "아시아나항공이 운항을 중단할 경우 발생할 손실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서는 최근 들어 경쟁당국이 기업결합 심사 준비에 들어갔다. 일본은 지난달 자국의 저비용항공사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결합 관련 의견서를 수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항공업계에서는 일본이 다른 나라 경쟁당국의 심사결과를 참고하기 위해 뒤늦게 심사 준비에 나선 것으로 바라본다.
영국의 경우 사실상 승인이 난 것으로 판단된다. 다우존스뉴스와이어 등 외신에 따르면 영국 경쟁당국은 내년 1월26일 혹은 늦어도 3월23일까지 검토를 거쳐 해당 안건의 승인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항공업계 일각에서는 각 국가의 경쟁당국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심사를 지연하면서 슬롯 이전을 통한 자국 항공사의 이득을 챙기고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당초 중국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결합 시 중복 노선이 18개로 가장 많은 나라인 데다 중국 정부의 자국 항공사 '밀어주기 기조'로 합병승인이 가장 까다로운 국가로 여겨졌다.
때문에 이번 중국의 합병 승인을 두고 대한항공이 '살을 내주고 뼈를 취했다'는 말이 나온다. 전체 중복 노선의 절반에서 슬롯 이전이 결정돼 합병 시너지가 줄어들 수는 있지만 기업결합이 무산될 위기는 넘겼다는 것이다.
영국 경쟁당국도 대한항공이 합병 이후 갖게 될 인천~런던 노선의 17개 슬롯 가운데 기존 아시아나항공의 보유분인 슬롯 7개를 영국 항공사 버진애틀랜틱에 넘기는 조건을 받아들이자 사실상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