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22-12-27 15: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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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대형마트가 그동안 볼멘소리를 냈던 온라인 새벽배송 관련 규제가 곧 풀릴 분위기다.
하지만 규제 해제가 대형마트에 꼭 득이 된다고 볼 수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 대형마트의 온라인 새벽배송 관련 규제가 곧 풀릴 분위기다. 하지만 규제 해제가 대형마트에 꼭 득이 된다고 볼 수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사진은 이마트 배송차량. <연합뉴스>
새벽배송에서 이익을 내는 기업이 쿠팡을 제외하고 사실상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시장 진출이 오히려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7일 대형마트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대형마트가 새벽시간과 의무휴업일에도 온라인 배송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을 두고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대형마트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산업 관점에서만 접근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고객의 편익 관점으로 시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의미로 읽힌다”며 “새벽배송 도입 여부를 아직 논의할 단계는 아니지만 우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대형마트 관계자도 “족쇄가 풀린다는 것은 분명히 좋은 징조다”며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기조가 하고 싶다면 할 수 있는 기조로 바뀌는 것은 대형마트로서는 나쁠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대·중소유통 상생협의회는 새벽시간과 의무휴업일에도 대형마트가 온라인 배송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조만간 발표한다.
이 협의회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대·중소 유통기업의 상생 방안과 관련한 의견을 듣고 향후 추진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10월에 출범한 단체다. 전국상인연합회장과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장, 한국체인스토어협회장이 협의회 주요 관계자로 들어가 있으며 산업부에서는 1차관과 중견기업정책관 등이 참여한다.
대형마트에 대한 새벽시간 및 의무휴업일 온라인 배송 허용은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10년 넘게 지속된 규제가 풀린다는 뜻과 같다.
사실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의 온라인 배송과 관련해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마트가 특정 시간과 특정 일에 온라인 배송을 할 수 없었던 것은 법제처의 판단 때문이다.
법제처는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도입 당시 영업 제한 시간(새벽)이나 의무휴업일에 오프라인 점포를 물류·배송기지로 활용해 온라인 영업을 하는 행위는 점포를 개방하는 것과 사실상 같은 효과를 가진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이 해석에 근거해 대형마트는 그동안 온라인 배송 시장이 커지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다.
유통산업발전법이 도입될 때만 하더라도 유통업계의 경쟁 구도는 ‘대형마트 vs 골목상권’이었다. 하지만 쿠팡과 티몬, 위메프, 컬리 등이 속속 등장하면서 유통업계의 경쟁 구도는 ‘온라인 vs 오프라인’으로 바뀌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온라인 유통이 전체 소매업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8.5%에서 2021년 26.5%까지 늘었다.
이런 점에서 대형마트는 새벽배송 금지 규제를 푸는 것이 오랜 숙원이었다. 오프라인 매장의 의무휴업제도는 지킬테니 온라인 배송 분야만 한정해서라도 규제를 풀어달라는 것이 이들의 요구사항이었다.
대·중소유통 상생협의회가 곧 내놓을 방안은 이런 대형마트업계의 볼멘소리를 전격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온라인 배송 시장의 상황을 따져봤을 때 10년 만에 풀리는 온라인 배송 규제가 대형마트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판단하기 힘들어 보인다.
대형마트는 현재도 새벽시간과 의무휴업일(한 달에 두 번)을 제외한 시간에는 모두 온라인 배송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일부 시간을 제외하면 이미 이커머스업체와 대등하게 경쟁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시장에서 이미 판세는 이커머스업계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이 유통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대형마트가 새벽배송과 의무휴업일에 온라인 배송을 더 한다고 해서 이커머스업계에 기운 무게의 추를 되돌리기 힘들다는 얘기다.
쿠팡과 네이버가 전체 온라인 배송 시장에서 차지하는 지배력은 50%가량으로 추정된다.
물론 대형마트가 강점을 보유한 분야에서는 경쟁력을 보일 수 있다. 대형마트는 쿠팡과 네이버 등과 비교해 신선식품 분야에서 오랜 사업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이커머스기업에 대한 고객들의 묶어두기(락인) 효과가 제법 공고해진 상황에서 온라인 배송 규제 해제 조치가 판을 뒤흔들기는 역부족일 수 있다.
대형마트들이 외형을 늘리기보다는 수익성을 챙기는 쪽으로 전략을 바꾼 점도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대형마트들은 이커머스기업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수년 동안 온라인 전환에 힘을 실어 왔다. 하지만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최근에는 온라인 사업에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이런 상황에서 새벽배송 시장이 열린다고 해도 당장 대형마트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새벽배송 시장에서 쿠팡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들은 모두 수천억 원대의 적자를 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시장 진출이 제 살을 깎아먹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쿠팡은 지난 7~8년 동안 6조 원이 넘는 적자를 내다가 올해 3분기에서야 영업이익 1천억 원을 내며 간신히 흑자 가능성을 봤다.
이밖에 다른 비용 부담도 존재한다. 실제로 새벽배송에 나서려면 대규모 인력을 별도로 충원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한 인프라도 재점검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형마트의 지출이 상당히 커질 수 있다.
물론 부정적인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새벽배송 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이 가장 곤란해하는 것은 바로 물류센터 확보와 관련한 문제다. 새벽배송에서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리려면 일정 수준의 물류센터가 필수적인데 이를 확보하느라 천문학적 자본이 투입되는 일이 다반사다.
하지만 대형마트는 이런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의 전국 오프라인 점포 수만 하더라도 400개가량이다.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진출이 가능해지면 이 점포들은 모두 새벽배송을 위한 물류센터 전진기지로 활용될 수 있는데 그만큼 초기부터 외형을 확대하는데 강력한 무기로 쓸 수 있다.
대형마트의 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새벽배송 시장과 관련해 업계의 분위기만 있는 상황이라 실제 시장 진출과 관련해 논의한 바는 없다”며 “새벽배송의 장단점을 면밀하게 검토한 뒤 실행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고 말을 아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