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현지시각으로 11월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AP > |
[비즈니스포스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 개선 필요성을 언급하며 두 국가 사이 ‘신냉전’ 기조에 해빙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무역 분쟁에 핵심인 중국 반도체산업 규제를 두고 바이든 정부가 단호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어 관계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5일 백악관 브리핑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시진핑 주석을 만나 세계 정세 불안과 경제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두 국가 사이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두 국가 정상의 만남은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뒤 처음이다. 이들은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G20 참석차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뒤 약 3시간에 걸쳐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 신장과 티벳, 홍콩 등 지역의 인권 문제와 대만의 자치권 보장, 북핵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주제로 대화를 이어갔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가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안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미국과 중국의 관계 개선을 위해 해당 사안에 두 국가의 입장 차이가 좁혀져야 한다는 주장을 적극 펼친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이 경쟁 관계에 놓였지만 이를 갈등으로 이끌어가서는 안 된다며 양국이 세계 거시경제 안정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CNN은 “미국과 중국 정상의 대화는 수 년 동안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던 상황에서 이뤄졌다”며 “이날 대화는 앞으로 두 국가 사이 관계 개선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도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과 관련해 긍정적 시각을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두 국가 정상이 악수하는 장면을 두고 “전 세계가 오래도록 기다려 왔던 그림을 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아 신냉전 국면에 접어들 위기에 놓여 있었지만 이날 양국 정상 사이에 오간 진솔한 대화가 관계 개선에 긍정적 신호라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대만 문제에 미국 정부 차원의 개입이 없을 것이라는 점, 동맹국과 연합해 중국을 위협하지 않겠다는 점, 중국과 공급망 단절을 시도하거나 경제 발전을 저해하지 않겠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는 백악관에서 밝힌 내용에 포함되지 않거나 일부 상반된 내용을 담고 있다. 두 국가 정상의 대화 내용을 두고 미국과 중국이 여전히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글로벌타임스는 미국과 중국이 진정성 있는 관계 개선을 추진하기 위해 미국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바이든 정부가 과거 트럼프 정권에서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한 관세를 완전히 폐지하고 과거의 실패를 인정해야만 중국 정부도 미국과 대화를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타임스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 관세 철회 없이 대화를 시도하는 일은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며 “중국 기술기업을 무너뜨리려는 시도 역시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바이든 정부가 최근 중국 반도체산업을 견제하기 위해 주요 반도체 및 장비기업이 중국에 제품을 수출할 수 없도록 하는 조치를 시행한 일을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타임스는 미국 정부의 이런 행보를 강하게 비판하는 대신 중국을 향한 규제가 미국 기업과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설득에 가까운 보도를 내놓았다.
중국 관영매체가 과거 미국 정부의 반도체 규제를 두고 경고성 비판을 이어갔던 것과 비교하면 분명히 중국 정부의 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셈이다.
결국 미국과 중국이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완전한 해빙 구간에 들어설 수 있을지는 미국 정부가 중국을 겨냥한 반도체 규제를 완화할 지 여부에 달려 있다.
미국의 반도체 제재는 한국 경제와 기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기업이 미중 갈등에 취약한 상태에 놓여 상황 변화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중국 반도체공장에 장비를 반입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조치를 적용한 뒤 1년에 이르는 유예기간을 부여했다.
미국이 중국을 향한 공세를 이어가면서 유예기간을 연장하지 않는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 및 중국 수출에 모두 차질이 빚어져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바이든 정부는 한국을 향해 중국 견제를 주요 목적으로 하는 반도체 국가 연합 ‘칩4 동맹’ 가입도 요구하고 있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중국의 무역 보복을 피하기 어려워질 가능성도 크다.
다만 바이든 정부가 지금까지 중국 반도체산업을 향해 강경한 대응 기조를 유지해 온 점을 생각하면 정상회담을 계기로 상황이 완전히 뒤바뀔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결국 한국 정부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미중 무역갈등의 영향을 직격으로 받을 수 있는 대상은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대화 지속 여부에 촉각을 기울이게 될 수밖에 없다.
CNN은 “일반적으로 정상회담의 성과는 국가별 지도자의 성향과 이해관계를 고려한 후속 대응에 가려지는 경우가 많다”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관계 개선 논의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