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3N'은 국내 게임개발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3곳인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을 묶어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이미지 측면에서 본다면 3N은 그다지 긍정적 별칭이 아니다.
국내 게임 이용자들에게 3N은 게임성은 뒷전이고 사행성만을 강조해 유저들의 주머니를 털어가려고 혈안이 된 게임회사의 상징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이사(사진)가 '돈슨'이라는 이미지 탈피를 위한 노력의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
그중에서도 넥슨은 ‘돈슨’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게임 이용자들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가 박혀 있다.
넥슨은 2001년 캐주얼 게임 ‘퀴즈퀴즈’에 세계 최초로 부분유료화 사업모델(BM)을 도입한 바 있다.
이런 부정적 평가와 달리 게임업계 일각에서는 넥슨이 다른 경쟁사들과 비교해 창의적 시도를 많이 하는 기업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넥슨은 국내 대형 게임회사 가운데 가장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기업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며 “옛날 ‘택티컬 커맨더스’부터 시작해 ‘마비노기’, ‘마비노기 영웅전’ 등 여러 신선한 게임들을 만들어냈고 국내 게임업계에서는 쉽게 나오기 힘든 게임인 ‘야생의 땅:듀랑고’(이하 듀랑고)까지 출시했던 기업이다”고 말했다.
◆ '돈슨' 탈피 위한 몸부림, 듀랑고로 시작해 정상원의 퇴임으로 끝나다
2018년 출시된 듀랑고는 넥슨의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임으로 꼽힌다. 독특하지만 치밀하게 설계된 세계관, 참신한 아이템 제작 시스템, 과하지 않은 과금 구조 등 게임성 측면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게임 출시 당시 넥슨의 변화를 책임졌던 이는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의 오랜 친구이자 ‘넥슨의 큰형님’으로 불리는 정상원 진큐어 대표이사다.
정 대표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넥슨코리아의 개발총괄 부사장으로 일하며 넥슨의 변화를 주도했다.
정 대표가 개발총괄로 일하던 시절 넥슨코리아는 듀랑고와 함께 ‘D.O.S.’, ‘마스터 오브 이터니티’, ‘이블 팩토리’ 등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들을 선보였다.
정 대표는 당시 한 언론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사업이 개발을 흔들게 되면 쏠림 현상이 강해진다”며 “돈 되는 쪽으로 사업이 추진되는데 회사에선 그러지 말자,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 위주로 만들자고 이야기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사업성이었다. 정 대표의 통솔 아래 출시된 여러 가지 실험작들은 게임 이용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긴 했지만 상업적 성과는 내지 못했고 대부분 오래가지 못하고 서비스를 종료했다.
결국 정 대표는 2019년 8월 자신이 개발을 주도하던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페리아 연대기’의 개발 중단과 함께 넥슨코리아를 떠났다. 정 대표가 떠난 지 4개월 후인 2019년 12월 듀랑고 서비스도 종료되면서 넥슨의 변신은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 2010년대 넥슨의 변화를 이끌었던 정상원 당시 넥슨코리아 개발총괄 부사장이 '야생의 땅:듀랑고' 프리뷰 행사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민트로켓의 ‘데이브 더 다이버’로 변화의 신호탄 다시 쏘다
넥슨의 변화가 다시 감지된 것은 2022년 5월이었다. 넥슨코리아는 2022년 5월13일 새로운 게임 서브 브랜드 ‘민트로켓’을 공개했다.
넥슨코리아는 민트로켓을 론칭한 이유를 두고 “기존 개발 관습을 과감하게 버리고 게임의 가장 중요한 본질인 ‘재미’에 집중해 게임을 만들기 위함이다”고 설명했다.
민트로켓의 론칭을 주도한 것은 김대훤 넥슨 신규개발본부 부사장으로 알려졌다. 김 부사장은 철저하게 ‘게임 이용자’의 입장에서 게임을 만들기 위해 민트로켓을 만들었다.
김 부사장은 민트로켓 론칭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민트로켓은 게임 이용자들이 돈을 쓰게끔 만드는 ‘메타플레이’를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며 “민트로켓 개발자들에게도 메타플레이에 대한 생각은 아예 하지 마라, 정말 재미있게만 만들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11월8일 넥슨코리아 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14년 지스타의 슬로건이었던 ‘돈슨의 역습’ 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달라지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하다”며 “그 이후로 내부에서도 달라지려고 많이 노력했으며 일관되게 열심히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넥슨의 변화를 위한 몸부림은 결국 ‘신화’를 만들어냈다. 2022년 10월27일 출시된 민트로켓의 첫 작품인 ‘데이브 더 다이버’는 11월13일 기준 글로벌 게임 플랫폼 스팀에서 ‘압도적으로 긍정적(overwhelmingly positive)’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는 500개 이상의 평가를 받고, 그 평가의 95% 이상이 ‘긍정적’일 때 붙는다.
평가의 개수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단순하게 긍정적 평가의 비율로만 보자면 ‘문명5’, ‘위쳐3:와일드 헌트’ 등 세계적인 게임들과 비슷한 평가를 받게 된 셈이다. ‘레드 데드 리뎀션2’ 등의 명작 게임들도 '압도적으로 긍정적'보다 한 단계 아래인 ‘매우 긍정적’ 평가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스팀의 사용자 평가 내용을 보면 데이브 더 다이버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잘 드러난다.
한 이용자는 데이브 더 다이버에 대해 “내가 알던 넥슨이 맞나 싶을 정도로 수려한 게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이용자는 “하면 할수록 행복해지는 게임”이라고 극찬했다.
데이브 더 다이버의 평가 가운데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글은 바로 “엔씨보다 너네(넥슨)가 훨 낫다”였다.
▲ 민트로켓의 첫 작품 '데이브 더 다이버'. 13일 기준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스팀 상점 페이지 갈무리>
◆ 'GOTY(올해의 게임)' 도전, 글로벌 게임 개발사 도약 꿈꾼다
이정헌 대표는 넥슨코리아의 변화가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넥슨의 ‘리틀’(작은 규모의 게임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민트로켓뿐 아니라 대형 프로젝트에서도 변화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넥슨코리아는 현재 가칭 ‘프로젝트DX’, ‘프로젝트 AK’라고 알려진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프로젝트 DX는 넥슨 변화의 상징이자 넥슨의 '아픈 손가락'인 듀랑고의 지식재산(IP)을 기반으로 한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신작이다.
프로젝트AK는 던전앤파이터의 지식재산(IP)을 활용해 네오플에서 개발하고 있는 콘솔(가정용 게임기) 게임으로 소울라이크 장르로 개발되고 있다. 소울라이크란 액션성을 극도로 강조한 액션RPG 장르의 하위 분류로 일본의 게임개발사 프롬소프트웨어가 개발한 ‘다크 소울’이 장르의 시초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었다.
현재 클로즈베타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워헤이븐’ 역시 국내 게임 이용자들에게는 생소한 백병전 장르의 게임으로 넥슨의 변화를 보여주는 게임으로 꼽힌다.
백병전 게임이란 검, 랜스(창), 활, 해머 등 다양한 무기를 활용해 전장에서 싸우는 병사가 되는 장르의 게임을 말한다. ‘마운트 앤 블레이드’, ‘컨커러스 블레이드’ 등 서양권에서는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이용자가 많지 않다.
다만 게임업계 일각에서는 이미 한 차례 ‘사업성’의 벽을 넘지 못해 실패했던 넥슨이 과연 이번엔 제대로 변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넥슨코리아는 진정한 글로벌 게임 개발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현재의 개발 철학으로는 국내 시장에서 많은 돈을 벌 수는 있겠지만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게임 회사가 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넥슨코리아의 진심은 이 대표의 말에서 엿볼 수 있다.
이 대표는 11월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해외에서 더 존재감을 보여야 앞으로 회사가 생존할 수 있다”며 “프로젝트AK와 같은 게임은 네오플에서 ‘GOTY(올해의 게임) 한 번 받아보자’라는 목표로 개발하고 있는 게임이다”고 말했다.
GOTY는 글로벌 게임 전문 매체들이 각각 선정한다. 가장 많은 매체로부터 선정된 게임은 '최다 GOTY'의 주인공이 된다. 지금까지 최다 GOTY를 받은 게임을 살펴보면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엘더스크롤 5:스카이림’, ‘갓 오브 워’, ‘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 등 세계적인 명작 게임들이 포진해 있다. 윤휘종 기자
▲ 네오플이 개발하고 있는 소울라이크 액션RPG '프로젝트AK' 트레일러의 한 장면.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는 프로젝트 AK를 두고 "GOTY(올해의 게임)를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AK 트레일러 영상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