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은행 대출 등 각종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에 나서면서 공포 속에 기회를 잡으려는 내집마련 수요자들이 시장 전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아파트 단지 모습.
서울 송파구 등 강남3구에서도 몇 억씩 내린 이른바 급급매 아파트가 매물로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은행 대출 등 각종 부동산 관련 규제룰 풀고 있다.
매물은 널렸고 부동산 구매 자금 확보에도 숨통이 트인 상황이다. 남은 건 하나. 시점이다. 내집마련의 기회를 잡으려는 수요자들은 부동산 시장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일 한국부동산원 자료 등을 살펴보면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규제완화 정책 등의 영향으로 그동안 얼어붙었던 2030세대 주택 실수요자들의 매수세가 '잠깐'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주택매매동향 관련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 서울 아파트 매입 건수에서 20대와 30대 매수자의 비중이 전체 거래량의 34.7%를 차지했다.
지난해 2030세대는 ‘영끌족’이라는 말을 유행시키면서 아파트값 급등세에 한 몫을 했지만 고금리 기조가 시작되면서 한 동안 주택거래시장에서 크게 위축됐었다.
서울 아파트 거래에서 2030세대의 매수 비중은 2021년 1분기 전체의 43.3%까지 올라갔었고 올해 4월에도 42.3%를 보였다. 하지만 금리인상과 집값 하락추세가 가팔라지면서 바로 두 달 뒤인 6월에는 매수 비중이 24.8%대로 급감했다.
8월에도 서울 아파트 전체 거래 매수자에서 2030세대 비중은 28.6%로 20%대에 머물렀다.
하지만 생애최초 주택구입자 대상 금융규제 등이 풀리면서 내집마련 수요자들이 관망세를 거두고 다시 시장을 기웃거리며 매수 시점을 살피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정부는 여기에 무주택자와 1주택자를 대상으로 투기지역이라도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비율을 50%로 완화하고 15억 원이 넘는 아파트에 대해서도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하는 등 규제완화에 힘을 싣고 있다.
중도금 대출 상한을 기존 9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상향하는 방안,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등 부동산 규제지역 추가 해제도 예고했다.
다만 부동산 전문가 다수는 규제완화 정책에 앞서 아파트값 추세의 방향은 결국 금리가 결정할 것으로 바라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주택시장 동향 보고서를 통해 2022년 주택가격 하락은 금리인상이 주된 촉발요인이라고 바라봤다. 현재 부동산시장은 2008년 하반기부터 2009년 금융위기 당시 주택가격 하락 흐름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지윤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2008~2009년 금융위기 때 주택가격 하락은 소득충격, 공급확대로 촉발돼 전격적 금리인하에도 전세, 매매 비율이 낮았던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 하락이 장기화됐다”며 “반면 2022년 주택가격은 금리인상 기조로 경기 하방 위험이 확대되고 있지만 아직 실질소득 여건이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고 바라봤다.
오 연구원은 이어 “현재 주택시장은 금리변동에 더욱 민감한 시장이지만 금융위기 때처럼 수도권 위주의 장기침체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앞으로 주택가격은 2023년 상반기까지 하방압력이 우세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그 뒤부터는 금리 등 경제여건에 좌우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2일 서울 강남구 건설회관에서 진행한 ‘2023년 건설부동산 경기전망 세미나’에서 내년에도 주택가격이 전국적으로 2.5%가량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면서 고금리 상황을 이유로 제시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도 2023년 하반기 금리인하 기대 등이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주택가격이 ‘상저하고’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KB부동산도 최근 무주택자와 1주택자를 대상으로 한 부동산시장 전망 관련 글에서 “집값이 하락한 것은 금리인상과 연관이 깊다”며 “다만 그 누구도 집값의 최저점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무리한 대출을 통해 집을 매수하는 것이 아니라면 부동산 하락기, 급매가 활성화된 지금이 매력적 상황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시장은 한국 금리인상 기조를 가늠할 수 있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김경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지난 10월26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미국이 앞으로 2개월 동안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이든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이든 최소한 1.25~1.5%포인트는 올릴 것”이라며 “우리도 그 기간까지는 굉장히 힘들 것이다”고 바라봤다.
김 교수는 이에 합리적 부동산 매수 시점도 “미국의 금리인상이 멈추고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시점이 중요하다”고 꼽았다.
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도 ‘2023년 경제금융시장 전망 보고서’에서 금리인상으로 경기가 꺾이고 가계대출이 높은 것도 부담이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주요국이 고강도 긴축을 계속하면 한국도 보폭을 맞출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하나금융연구소는 "한국은행이 2023년 1분기까지 기준금리를 최종 3.75%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며 "금리급등에 따른 부담으로 부동산 가격 하락이 장기화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물론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 금리가 혹시 안정세를 되찾는다고 해도 부동산 시장에 쉽게 반등하지 못할 것이라는 반론을 펼치고 있다. 예전과 같은 '제로 시대'로 돌아가기는 어렵고 경기둔화 또는 경기침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어떤 분석이든 금리인상이 부동산시장에 직격탄이 됐다는 점에는 모두 동의하고 있다. 거래절벽 상황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한국은행의 금리인상이 계속되면서 1월부터 8월까지 주택금융공사가 공급하는 디딤돌대출, 보금자리론, 적격대출 등 정책모기지 공급액은 11조2075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7.2%,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한국시각으로 3일 오전 열리는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올해 들어 네 번째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연준이 이번에도 자이언트스텝을 밟으면 미국의 기준금리는 3.75~4% 수준으로 오른다.
다만 연준이 이번 금리인상 뒤 12월에는 금리인상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시선들도 나온다.
한국은 한국은행이 앞서 10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면서 현재 2012년 10월 이후 10년 만에 기준금리 3%대 시대에 들어서 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