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HMM과 관련해서 지금 가장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있는 것을 꼽아보라면 매각을 제외하고는 단연 ‘피크아웃’ 이야기일 것이다.
피크아웃이라는 단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 2021년은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었을 정도의 해운업 호황기였기 때문이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2021년은 해상 운임이 ‘비정상적으로’ 높았던 시절”이라며 “아마 이런 시절이 다시 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비정상적’이라는 단어다.
일반적으로 해운업계의 호황과 불황은 세계 경기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간다. 세계 경기가 호황일 땐 자연스럽게 세계 물동량이 급증하니 해운업계의 업황도 활짝 웃게 되고불황일 땐 물동량이 떨어지다보니 자연스럽게 해운업계도 조금 어려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호황’은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실제로 HMM 관계자에 따르면 2020년과 2021년 전체 물동량을 보면 오히려 평년과 비교해서 조금 낮은 수준이었다. 재밌는 것은 이 ‘조금 낮은 수준’이었던 물동량이 한쪽으로 몰렸다는 것이다.
즉 코로나 초기였던 2020년 상반기에는 역대급으로 물동량이 없었다가 그 때 숨죽이고 있던 물동량들이 2020년 하반기부터 갑자기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컨테이너선들이 부족해지고, 심지어 항구 적체현상이 일어나면서 컨테이너선들이 전부 입항하지 못하고 바다에 떠있다보니까 컨테이너선 부족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해상 운임이 하늘을 뚫게 된 셈이다.
우리가 해상 운임을 이야기할 때 주로 보는 지표는 상하이컨테이너지수(SCFI)다, SCFI는 코로나19 이전, 그러니까 HMM이 한참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700~800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던 SCFI는 올해 초에 5천을 넘겼다. 6배가 넘게 오른 것이다.
더구나 HMM에게는 너무나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해상 운임이 하늘을 뚫고 있는 그 상황에서 HMM이 미리 주문해놓았던 20척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HMM에게 넘어오기 시작했다.
운임이 비정상적으로 올라온 상황에서 운용 선복량이 갑자기 두 배가 넘게 올랐다. 그것도 전부 운송 효율이 굉장히 높은 초대형 선박으로만 오른 것이다.
실제로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상황을 두고 “그야말로 하늘이 HMM이 잘 되라고 등을 떠미는 것 같은 그런 상황이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정리하자면 2020년~2021년 HMM의 초특급 실적은 모든 경우의 수가 HMM에 유리한 쪽으로 전부 맞아떨어져 들어갔던 ‘비정상적’인 호황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결국 HMM의 미래 이야기는 HMM이 이런 미쳐 날뛰는 호황이 아니라 해운업의 정상적 사이클로 돌아왔을 때 HMM이 계속해서 잘 나갈 수 있느냐를 살펴봐야 한다.
현재 상황을 살펴보자면 세계 경기의 미래가 그렇게 밝아보이지는 않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러 가지 정치적, 지리적 문제들이 계속 불거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긴축재정으로 경기 침체기가 시작될 수 있다는 전망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HMM의 미래는 앞으로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걸까? 그렇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HMM은 더이상 옛날의 ‘현대상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운 전문 조사업체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2022년 9월 기준 HMM의 총 선복량은 81만8075TEU로 세계 8위다. 세계 8위가 높아보이는 순위는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HMM의 초대형선 비율이 세계 1위 라는 점이다.
역시 알파라이너를 월간리포트를 살펴보면, 9월 기준으로 1만8천TEU급 이상 초대형 선박이 HMM의 전체 선복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5%로 세계 1위다. HMM 다음으로 이 비율이 높은게 에버그린(26%)인데 이 에버그린과도 9%포인트나 차이가 난다.
초대형 선박의 기준으로 1만5천TEU급까지로 넓혀 잡는다면 HMM의 초대형선 비율은 무려 50%를 초과하게 된다. 그 다음으로 높은 수치가 프랑스 CMA-CGM의 25%라는 것을 살피면 HMM의 초대형 선박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컨테이너 사업에서 초대형선의 비율은 그대로 수익성과 직결된다. 컨테이너 20만 개를 수송한다고 했을 때 5천 TEU급 컨테이너선 40개를 보내는 것보다 2만 TEU급 컨테이너선 10개를 보내는 비용이 훨씬 싸기 때문이다.
심지어 HMM이 보유하고있는 초대형 컨테이너선들은 전부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새 선박들이다.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연비가 우월한 최신형 자동차로만 선단을 꾸리고 있는 셈이다.
HMM의 초대형 선박들에 설치돼있는 스크러버 역시 HMM의 경쟁력 가운데 하나다.
지금 세계 각국의 환경규제가 나날이 매서워지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선사들의 배들은 환경오염물질을 조금 배출하는, 값비싼 ‘저유황유’를 연료로 써야한다.
그런데 HMM이 새로 받은 초대형 선박들에 달려있는 이 스크러버는 선박이 배출하는 오염물질을 획기적으로 감소시켜주는 장치이기 때문에 비싼 저유황유 대신 벙커C유 등 값싼 고유황유를 사용하더라도 세계 여러 나라의 해역들을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다.
불황기를 버티는 가장 중요한 힘은 당연히 효율성이다. 실제로 머스크와 MSC같은 초대형 선사들이 해상 운임을 낮춰 불황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치킨게임’을 통해 중소형 선사들을 다 말려죽일 수 있었던 이유도 그들이 최신식 초대형선을 많이 갖고 있어서 비용 효율이 굉장히 높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해상 운임이 2018년 이전으로 복귀한다 하더라도 HMM의 상황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라는 뜻이다.
해상운임이 하향안정화 되더라도 2018년 수준으로 복귀하지는 않을 거라는 예상도 많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상운임과 관련해 의견이 분분하기는 한데 이제 치킨게임 시절처럼 저운임이 유지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2M 등 대형 선사들이 굳이 그렇게 할 이유도 많이 사라졌고, 아마 상하이운임지수는 1000 중후반에서 2000 초반 정도 수준을 왔다갔다하며 하향안정화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