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5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Bryan County)에서 전기차 전용 신공장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기공식에 참석해 기념 연설을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
[비즈니스포스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발효 뒤 3번째 미국 출장을 떠났지만 해결방안을 찾기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 회장으로서는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영향력을 잃지 않기 위해 '플랜B'를 검토해야 하는 만큼 현대차와 기아의 미국 내 기존 내연기관차 생산기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할 가능성도 나온다.
26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이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공장을 착공하는 이날 현재까지도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예외 적용 등과 관련해 미국 정부 내에서 별다른 기류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 상무부는 현지시각 25일 공식 홈페이지에 돈 그레이브스 부장관의 현대차그룹 전기차 전용공장 착공식 환영사를 게재했다.
그레이브스 부장관은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공장 투자를 놓고 “미국 정부는 완전한 전기차 공급망 구축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바이든 정부의 공적을 자랑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이 기대하고 있는 전기차 보조금 정책 변화와 관련해선 별다른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장관 역시 인플레이션 감축법 기조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으면서 현대차그룹이 기대한 해외기업 대상 예외 적용 등과 같은 조치를 기대하기가 힘든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24일(현지시각) 기자들과 만나 인플레이션 감축법와 관련해 “우리는 법에 써진 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정 회장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발의된 이후 이번 전기차 공장 착공식까지 3번째 미국 출장길에 오르면서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관련한 대응을 위해 발로 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날 미국 조지아주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전기차 전용공장 착공식에서도 정 회장은 미국 정관계 인사들과 만나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관련한 다양한 논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미국 상원에 현재 발의된 인플레이션 감축법 수정안이 가결되는 것이 최선으로 꼽힌다.
앞서 미국 상원의원인 조지아주의 라파엘 워녹 민주당 상원의원은 ‘미국을 위한 저렴한 전기차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수정안으로 원안에 있던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규정된 ‘북미 내 전기차 최종 조립’과 관련해 시행에 유예 기간을 둔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기존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북미 내에서 조립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제공하도록 규정해 국내에서 생산하는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및 친환경차들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런 상황에서 수정안이 통과되면 이와 관련한 요건이 2025년 12월31일 이후 판매되는 차량의 경우로 규정돼 미국에서 전기차 공장을 짓고 있는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시간을 벌 수 있다.
하지만 11월 중간선거로 인한 미국 정계 개편 추이 등의 상황에 따라 법안이 당분간 계류된 상태로 머물 공산이 커 단시일 안에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관련한 돌파구가 나오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정 회장으로서는 미국 전기차시장 공략을 위해 플랜B를 검토해야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현대차그룹이 꺼내들 수 있는 카드로는 미국 정부의 보조금 만큼 차량 가격을 추가 할인해 주는 방안이 꼽힌다. 하지만 앞으로 판매장려금 등 비용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추가 할인은 현대차그룹에게 재무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당장 내년부터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공장 건설을 시작하게 되면 55억 달러(약 7조8475억 원) 투자를 집행하게 된다.
더구나 정 회장은 앞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방한했을 때 전기차공장과는 별도로 미국에서 50억 달러(약 7조1325억 원)를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 투자하겠다는 내용도 발표했다.
이뿐 아니라 현대차는 울산에도 전기차 전용공장 착공해 전기차 전환에 막대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더구나 내년부터 차량용 반도체 공급 문제가 해소되면서 완성차 브랜드들 사이에 마케팅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 할인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져 현대차그룹의 재무 부담을 가중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공장의 양산 시점이 2025년 상반기라는 점에서 아무리 현대차그룹이라도 2년 6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추가 할인을 지속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현재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르면 미국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탑재하고 현지에서 생산된 전기차와 관련해 저소득층이나 중산층에 신차 기준 최대 7500달러 규모(약 1천만 원), 중고차와 관련해서도 미국에서 생산된 전기차는 4천 달러(약 500만 원) 규모의 보조금(세제혜택)이 제공된다. 대상 차량은 승용차의 경우 5만5천 달러 미만인 전기차다.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대당 1천만 원가량 규모의 혜택을 부여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팔아도 오히려 손해가 날 수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미국에서 전기차를 모두 4만7095대 팔았다. 2021년 같은 기간보다 212%나 급증했다.
내년에 또 현대차 전용전기차 아이오닉6 미국 출시 등을 앞두고 있는 만큼 판매량이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크지만 이를 모두 할인해서 판매하기에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결국 미국에서 현재 판매하고 있는 전기차나 친환경차 라인업을 기존 미국 현지 내연기관차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재무적으로 부담을 덜 수 있는 방안으로 꼽힌다.
현대차 미국생산법인은 올해 4월 싼타페 하이브리드와 제네시스 GV70 전동화 모델 생산을 위해 조립라인을 설치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싼타페 하이브리드는 올해 10월부터, 제네시스 GV70 전동화 모델은 올해 12월부터 생산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립라인 교체에 불과 6개월에서 8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생산공장은 착공을 앞둔 조지아 전기차 전용공장과 멀지 않아 추후 부품 조달이나 공급망 관리 측면에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데도 유리하다.
새 전기차 전용공장이 들어서는 곳은 같은 조지아주 기아 미국생산법인과 약 420㎞, 앨라배마 주 현대차 미국 생산법인과도 약 510㎞ 거리에 있다. 새 전기차 전용공장과는 각각 차로 4시간, 5시간 거리에 있다.
이미 현대차그룹 내부에서도 미국 현지 생산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주우정 기아 재경본부장 부사장은 25일 기아 3분기 경영실적 콘퍼런스콜에서 미국 생산시설 문제와 관련해 “기존 공장 증설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다만 확실한 차종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대차그룹 주력 계열사인 현대차와 기아는 기존에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는 자동차의 생산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노조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
현대차와 기아의 단체협약에는 ‘회사가 해외공장을 신설하거나 증설 및 해외공장에 차종투입 계획을 확정 시 조합에 설명회를 실시하고 해외 공장 신설 및 차종 투입으로 인한 조합원의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은 사전에 고용안정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현재 현대차와 기아가 미국으로 수출하는 전기차는 모두 국내에서 생산된다는 점에 비춰보면 미국 현지 공장에서 전기차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고용안정위원회 심의, 의결을 거쳐야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아직까지 회사와 미국으로 전기차 물량 이전 등과 관련해 논의를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장은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