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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지향점은 미래차 시장의 퍼스트 무버다.
내연기관차 시대에는 패스트 팔로워에 머물렀지만 미래차 시대에는 다른 경쟁자들과 같은 선상에서 경쟁하게 되는 만큼 퍼스트 무버로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자동차 시장 판도를 살펴보면 전기차에서 압도적 위상을 과시하는 테슬라에 현대차가 다소 뒤처져 있는 듯 보인다. 물론 현대차도 최근 선전하고는 있지만 시장 점유율에서 제법 차이가 있다.
테슬라가 무서운 이유는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며 어마어마한 주행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테슬라 차량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적용해 각 차량에 업데이트하면서 차가 더 똑똑해지고 있다. 완전 자율주행차로 가는 데도 테슬라가 가장 빠를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 현대차그룹은 여전히 패스트 팔로워 위치에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아직 미래차 시장이 초기 단계인 만큼 상황을 속단할 필요는 없다. 주목할 부분은 테슬라에겐 없는 현대차그룹의 강점과 역량이다. 현대차그룹만이 지닌 강점과 역량을 보면 퍼스트 무버의 자격이 있는지 판단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 가운데 하나로 수소연료전지를 꼽을 수 있다. 그렇기에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담당하는 핵심 계열사 현대모비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전기차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일본의 소니, 중국의 샤오미 등 다른 업종들에서도 전기차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을 정도다.
심지어 영국의 전기 청소기 회사 다이슨도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려고 하고 있다. 진입장벽이 그리 높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수소차는 전기차보다 훨씬 기술적으로 까다롭다. 그리고 그 수소차의 핵심이 바로 연료전지다.
현대차그룹은 수소차에서만큼은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다. 일본 토요타와 함께 시장을 양분하다시피 하고 있는데 시장 점유율에서는 줄곧 토요타를 앞서 있다. 수소차에서는 퍼스트 무버인 셈이다.
수소차에서 연료전지가 차지하는 원가 비중은 50%가 넘는다. 현대차의 수소차 경쟁력이 최고라는 것은 현대모비스의 수소연료전지가 최고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서 “수소차와 전기차의 경쟁은 이미 끝나지 않았나”라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수소차를 놓고 “바보 짓”이라고 혹평한 바 있다. 친환경차의 대세가 전기차로 굳어지는 듯한 모습을 보면 수소차 경쟁력 무슨 의미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런데 승용차 시장을 주시했던 시야를 미래 모빌리티 시장으로 넓혀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지점에서 정 회장의 미래 모빌리티 구상은 무엇이며 또 거기에 왜 수소연료전지가 필요할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 회장이 그리는 현대차그룹의 미래 모빌리티 비전은 단순히 완성차 제조에서 으뜸이 되는 게 아니다. 육해공을 총망라해 인간과 사물의 운행 과정을 모두 담당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보인다.
땅 위를 운행하는 자동차뿐 아니라 도심환경모빌리티처럼 공중 운행을 하는 비행체, 강이나 바다를 운행하는 수상교통 등을 폭넓게 아우를 뿐만 아니라 이런 교통수단을 통해 택배와 배달, 해운 등 운수·물류서비스를 수행하는 데까지 광범위한 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자동차 제조와 직접적 관련이 없어 보이는 도심항공모빌리티, 인공지능, 로보틱스 등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배경에는 미래 모빌리티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테슬라가 선점했다는 전기차는 이 미래 모빌리티 시스템에서 한 부분일 뿐이다.
승용차에서는 2차전지를 기반으로 한 전기차가 연료전지 기반의 수소차보다 많이 앞서 있지만 버스, 트럭 등 상용차, 도심항공교통 등의 비행체, 선박과 기차, 창고와 공장에서 쓰이는 지게차 등 생각보다 많은 모빌리티 구성 요소들에서 연료전지가 유리하다는 의견이 많다.
그럼 왜 연료전지 방식이 2차전지보다 유리하다는 걸까?
전기차 대비 수소차의 장점은 충전시간이 짧다는 점과 2차전지보다 연료전지가 무게와 부피 면에서 가볍고 작아 연비가 좋고 적재 효율이 좋다는 점이다.
이는 수소 연료전지의 무게당 에너지 밀도가 2차전지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2차전지는 에너지 저장부와 전기 생성부가 분리돼 있지 않다. 많은 에너지를 저장하려면 그만큼 양극과 음극을 같은 비율로 늘려야 한다. 저장하는 에너지 양에 비례해 크기와 무게가 커져야 한다는 뜻이다.
반면 수소연료전지는 저장부와 전기 생성부가 분리돼 있어서 에너지 용량을 키우려면 수소탱크만 늘리면 된다. 연료전지 스택을 늘릴 필요는 없다.
그래서 승용차처럼 에너지 충전량이 크지 않은 비교적 작은 차체에서는 2차전지로 구동되는 전기차가 유리할 수 있지만 트럭처럼 차체가 커질수록 연료전지로 구동되는 수소차가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트럭과 같은 상용차의 차주로서는 넓은 공간이 확보돼 있어서 가급적 많은 화물을 적재할 수 있는 방식의 차량이 사업의 수익성을 높이는 데 훨씬 유리하다. 시간이 돈인 만큼 충전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도 곤란하다. 또 차량 무게가 최대한 가벼워 연비가 좋을수록 남는 돈이 많아진다.
전기차보다 수소차가 유리한 이유들이다.
같은 맥락에서 트럭이나 버스보다 더 크고 무거운 기차, 선박, 비행기도 수소연료전지 방식이 유리하다.
미래 모빌리티에서 가장 주목되는 분야 중 하나인 항공모빌리티에서도 수소연료전지가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항공모빌리티는 비행체의 비행시간이 충분히 길어야 경제성이 있고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다. 조금 날다 착륙해서 충전해야 하는 비행체는 유용성이 떨어진다.
2차전지에 비해 가볍고 에너지 밀도가 높은 수소연료전지가 항속거리(이륙순간부터 탑재된 연료를 전부 사용할 때까지 비행거리) 측면에서 유리하다.
다만 수소 모빌리티의 단점으로 주행 비용이 비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금 당장 연료인 수소가 비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소 가격은 기술 발전에 따라 점차 낮아지는 추세를 보인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에너지 수입국에서는 수소 가격이 전기 단가보다는 싸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처럼 수소를 수입하게 되는 국가에서는 수소로 전기를 생산하게 된다. 투입하는 수소 가격이 산출되는 전기 가격보다 저렴한 게 당연한 이치다.
국제에너지기구에서는 2050년의 수소차 비중이 승용차 10%, 상용차 35%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차량 외 분야까지 더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시장이다.
이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고 수소 모빌리티의 핵심인 수소연료전지를 만드는 현대모비스는 현대차그룹뿐 아니라 다른 모빌리티 기업에도 공급을 확대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벌써 탄소중립에 가장 열심인 유럽시장에서 점차 성과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최근 현대차그룹은 스위스에 이어 독일에도 대형 수소트럭 ‘엑시언트’를 수출하기 시작하며 유럽 상용차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그룹 내 부품 공급에 그치지 않고 수송형 수소 연료전지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광범위하게 시장을 넓히고 있다. 얼마 전 유럽 상용차 회사 이베코그룹이 차세대 수소버스에 현대차그룹의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탑재하기로 했다.
차량 외 분야에서도 수소연료전지 활용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영국 롤스로이스, 프랑스 사프란 등 항공·엔진 분야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과 손을 잡고 미래항공모빌리티(AMM·도심항공모빌리티, 지역항공모빌리티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 개발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물론 수소연료전지 사업이 궤도에 오를 만큼 모빌리티 시장이 성숙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이 제일 잘 하는 분야라는 점. 미래 모빌리티 시스템의 핵심 요소라는 점에서 수소연료전지는 현대차그룹을 퍼스트무버로 만들어 줄 든든한 기술 자산임에 틀림없다.
수소연료전지의 핵심 계열사 현대모비스의 행보를 주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