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이 1941년 9월26일 코번트리를 방문해 군인들을 격려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영국 국민은 전쟁 승리의 영웅 대신 클레멘트 애틀리를 선택했다. 상황이 바뀌면 리더는 교체된다. |
1945년 7월 영국의 총선. 윈스턴 처칠의 보수당과 클레멘트 애틀리의 노동당이 맞붙었다. 둘은 2차 세계대전 중 전시 거국내각을 구성했던 두 주요 세력을 대표했지만, 지루했던 전쟁은 끝나가고 있었다. 무려 10여 년 만에 총선이 시작됐고, 두 당은 어제의 협력자에서 오늘의 경쟁자로 마주섰다.
보수당의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압승이 예상됐다.
처칠의 영도 아래 영국은 8세기 바이킹족의 영국 침략 이후 최대 위기를 넘겼다. 독일 공군에게 버킹검궁까지 폭격 당했지만 국왕 조지6세와 수상 처칠은 명연설로 영국 국민을 하나로 묶어 내며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독일은 이미 두 달 전인 5월에 항복했고, 태평양 전선의 일본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유럽에 다시 평화를 되돌려 준 처칠과 그의 내각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는 80%를 넘고 있었다.
하지만 승부는 끝까지 가 봐야 한다고 했던가. 선거를 한 달쯤 앞둔 처칠의 유세 연설이 화근이 됐다.
당시 선거전에서 노동당은 전후 복구와 복지사회 건설을 화두로 제시하고 나왔다. 맞는 얘기였고 1941년 전쟁 중이었음에도 오늘날 복지국가의 원형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 받는 '베버리지 보고서'가 나온 상황이었으므로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다만,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단독집권을 꿈꾸던 처칠의 과민반응이 문제였다.
선거 유세에서 처칠은 '만약 노동당이 집권하면 복지니 공공이니 하는 아젠다를 들이 밀고 게슈타포처럼 우리를 감시할 것'이라고 맹렬히 비난하고 나섰다.
처칠의 이 때 발언은 후일 '철의 장막론'으로 이어지는 좌파세력 확대에 대한 경계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전쟁이 끝났으니 새로운 미래를 건설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직전의 동반자에게 '집권하면 독일 게슈타포처럼 굴 것'이라는 말은 누가 들어도 그냥 독설에 가까웠다.
영국 국민은 그런 처칠을 보면서 뜨악했다.
저 사람이 지난 몇 년간 우리를 지켜줬던 지도자였다는 것인가?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상대를 공격해 대는 비열함, 누구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오만불손. 전쟁 중에는 그런 모습이 강력해 보여서 좋았다.
히틀러의 입 괴벨스가 어떤 선전문구로 마음을 흔들어도, 나치독일 공군 루프트바페 폭격기가 영국에 새까맣게 몰려 와도, 브리스틀과 포트워스의 유서 깊은 바로크 건물들이 다 무너져도 처칠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이길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의 위대한 시대를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그 강력한 지도력의 상징이었던 그의 '막무가내'가 이제 큰 결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처칠 덕분에 2차 세계대전을 견뎌 내고 승리를 얻어냈다. 그러나 앞으로는? 앞으로도 저 사람은 우리의 리더일 수 있을까? 전쟁 시에나 맞는 사람을 아닐까?
노동당이 대중의 의구심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애틀리가 말했다. "처칠은 전쟁 중에나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고집불통 처칠, 그는 갈리폴리 작전 실패의 최대 책임자였다. 막무가내. 처칠의 가장 장점은 막무가내였다. 한번 옳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밀어 붙이는 뚝심. 그 뚝심이 괴물 히틀러를 넘어선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애틀리 말대로 새 시대에는 안 맞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장점이란 것이 게 치명적인 단점이었던 것이 불과 30년 전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명문 귀족 가문 출신으로 37세에 불과한 나이에 영국 해군성 장관에 오른 처칠은 기고만장했다(영국은 해군이 국가 전투력을 대변하는 나라다. 육군은 보조역할이다).
"다르다넬스해협을 통과해서 마르마라해를 건너 오스만투르크의 이스탄불을 점령한다!"
연합국의 일원인 러시아로 가는 보급선을 만들기 위한 작전이었다. 명분은 충분했다. 프랑스와 함께 독일과 맞붙은 서부전선은 교착상태였다.
병력만 소모할 뿐 해법이 없었다. 상황을 타개하려면 독일 동쪽 러시아가 나서줘야 했는데, 그러자면 지중해와 러시아의 흑해로 연결되는 루트를 뚫어야 했다.
하지만 중간 병목을 장악하고 연합국을 막고 나선 오스만투르크가 문제였다. 애초 중립을 지키던 투르크는 영국에게 건조를 의뢰했던 자국 군함을 처칠이 인도를 거부하자 독일 편으로 돌아섰다.
해협 양안 위에 거대한 독일제 해안포를 설치하고 해협을 봉쇄해 버렸다. 유럽 쪽 갈리폴리반도와 소아시아 사이 61km 길이로 뻗은 다르다넬스 해협은 넓은 구간이라 해도 폭이 6km에 불과했다. 이런 곳에 해군 함정을 밀어 넣었다가는 투르크군 해안포의 먹잇감이 될 게 뻔했다.
육군이 반대하고 나섰고 해군마저 승산이 없다고 난색이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그만둘 처칠이 아니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해군 단독 작전으로 밀어 붙였다. 아니나 다를까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영국 전함 16척 중 5척이 투르크의 해안포 사격과 부설된 기뢰에 부딪쳐 가라 앉아 버렸다. 치욕스런 참패였다.
그렇다고 그만둘까? 이번엔 육군 주도 상륙작전으로 작전이 변경됐다. 병력을 3개로 나눠 지중해 쪽에서 갈리폴리반도로 상륙하기로 했다. 해변에 상륙한 후, 해안 언덕을 올라 오스만군의 해안포 기지를 점령하여 해협을 장악한다는 계획.
하지만 계획은 지나친 가정에 근거한 무모함이 지배했고, 그나마 정확히 수행되지도 않았다. 해변은 상륙군이 몸을 숨기기에는 너무 좁았고, 언덕은 거의 산 수준이었고, 오르는 육군을 지원하는 해군의 함포 사격은 작전 20분 전에 끝나 버렸다.
주공을 맡아 4월25일 갈리폴리반도 해변에 상륙했던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연합군(ANZAC. 앤작)은 거의 전멸했다. 연합군은 해군의 지원 사격도 없는 절벽을 맨 몸으로 기어 오르다 투르크군의 기관총 화망에 갇혀 하루 밤 사이에 8천 명이 죽고 1만8천 명이 부상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지금도 이날 4월25일을 '앤작데이'로 기념한다. 결국 8개월여 계속된 갈리폴리 작전에서 이들을 포함해 연합군 25만 명이 죽거나 다쳤다. 갈리폴리 상륙작전은 전쟁 잘하는 영국의 역사상 최대의 패배로 기록됐다.
결국 영국 국민은 과거의 영웅을 버렸다.
영국 총선의 개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나라를 구한 보수당이 무너져 버린 것이었다. 그것도 참패였다.
무려 189석을 잃고 2당으로 주저앉았다. 반면 노동당은 선거 전 154석에 불과했으나 대거 239석으로 늘어나며 1당에 올랐다. 이 날의 패배는 영국 보수당 역사상 가장 큰 패배 중 하나로, 최고의 아이러니로 기록됐다.
영국은 의원 내각제여서 선거에 진 총리는 자동으로 해임됐다. 독일 포츠담에서 스탈린, 루스벨트와 함께 전후 세계에 대해 '빅 픽처'를 그리고 있던 처칠은 신임 수상 애틀리가 타고 온 비행기로 회담 도중 영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세계대전을 정리하는 역사적 회담의 후반 사진에서 처칠은 사라졌다.
영국 국민은 생각했다. 감사는 감사고, 미래는 미래다. 과거에 대한 감사가 미래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과거의 성공이 그 사람에게 미래를 맡기는 것의 정당함을 설명하는 도구로 활용돼서는 안된다. 미래의 지도자 선택이 감사의 방법으로 활용돼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감사 표시는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마땅하다. 영국 국민은 결국 지도자 교체를 선택했다.
지도자, 리더는 황제나 왕과 같은 지배자가 아니다.
군주는 나라를 통치하면서 재임기간 내내 지배하지만 리더는 다만 상황을 지휘할 뿐이다. 리더는 앞선 상황이 끝나고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면 새로운 사람으로 바뀐다. 군주는 생명이 있는 한 영속하지만, 리더는 상황 아래에서만 존재하며 상황이 지나가면 소멸하여 지나간 이야기로 남는다.
작은 나라, 기업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마음으로, 하나의 목표를 추구해 가는 사회적 단위가 회사다. 회사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이끄는 임원들이 있다.
임원은 사람들의 마음과 역량을 모아 목표 달성으로 이끈다. 당연히 임원은 영속적인 사람들이 아니다. 임원은 리더이지 군주가 아니다.
임원은 상황을 지휘하는 지도자이며, 팔로워인 직원들을 이끄는 리더일 뿐이다. 임원에 임명되었다는 것은 그 상황에 최적의 사람으로 선택되었다는 뜻이다. 상황을 잘 이끌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끌지 못하면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한다.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상황에 맞는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한다.
이끌 사람, 대상이 바뀌어도 마찬가지다. 역시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한다. 리더의 교체는 당연하며, 지속은 불합리하고 의미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교체를 받아들이는 것은 리더의 의무이며, 거부하는 것은 부당하다.
결과론적 얘기지만 영국은 갈리폴리 상륙작전의 실패를 겪은 처칠에서 2차 세계대전을 견뎌내야 할 전시내각 리더의 이미지를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지나칠 정도로 강한 자부심, 물러서지 않는 의지, 영국은 그것이 필요했고 그 판단은 들어 맞았다.
처칠은 전쟁에 참여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하던 루즈벨트를 집요하게 설득해 미국을 최대의 우군으로 끌어 들였고, 영국 본토 항공전을 버텨냄으로써 승리할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그러나 그 역할이 끝났을 때, 영국은 절대 부정할 수도, 뒤집을 수도 없는 확실한 패배를 보수당에 안김으로써, 전쟁 영웅 윈스턴 처칠과 그의 시대가 끝났음을 선언했다. 알고 보면 독일과 한 핏줄이라는 영국다운 냉철한 선택이었다. 진국영 커리어케어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