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백화점이 26일 오전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로 유통업계 최초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기업에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26일 화재사고 현장을 찾아 사과하는 모습.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현대백화점이 유통기업 최초의 중대재해처벌법 처벌 기업이라는 불명예를 안을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사상자 8명을 낸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의 화재사고 때문이다.
아직 사고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라 결과를 예단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현대백화점 경영진의 과실이 입증된다면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책임을 져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경찰은 27일 오전 10시부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방, 한국전기안전공사 등과 함께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의 화재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한 현장 합동감식에 들어갔다.
화재가 발생하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과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대전 프리미엄아울렛 지하 1층 하역장 근처를 중심으로 정밀 감식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 원인뿐 아니라 화재가 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설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도 조사 대상에 올랐다.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은 6월 소방점검을 받았을 때 지하 1층의 화재감지기 전선이 끊어져있거나 상태가 불량하고 화재경보기의 경종과 피난유도등의 교체가 필요하다는 등 총 24건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이미 지적사항에 대해 조치를 완료해 소방당국에도 보고했으며 이와 관련한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합동감식반은 1차 감식을 끝낸 뒤 오후 12시부터 2차 감식도 벌였다. 현재까지 1, 2차 현장감식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현대백화점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가능한지를 놓고 검토에 들어간 상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6일 밤 사고 현장을 방문해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 사고 직후에는 이미 현장에 조사관들을 보내 현대백화점 측의 사고 예방 노력에 대한 조사도 실시했다.
현재까지 드러난 상황을 종합하면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의 화재사고가 현대백화점의 과실 탓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합동감식 결과가 나와야만 단순 실수에 따른 화재인지, 전기적 요인에 따른 화재인지 등 정확한 원인을 특정할 수 있다.
하지만 사망자만 7명을 낸 비극적 사고라는 측면에서 현대백화점의 과실 가능성을 무시하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업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올해 초 현대백화점 지하 1층 주차장에서 촬영된 영상을 보면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이 지하 주차장 하역장에 박스더미를 쌓아둔 사실이 확인된다.
화재가 삽시간에 퍼져나간 배경에 이 박스더미가 한 몫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박스더미가 불길이 번지는 데 불쏘시개 역할을 했을 수 있다.
만약 지하 주차장에 방치해 놓은 박스더미가 화재를 키우는 주요 역할을 했다고 결론이 난다면 현대백화점 측이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워질 수 있다.
이승한 대전 유성소방서 현장대응2단장은 26일 사고 현장 브리핑에서 “하역장이다 보니 물건을 싣고 내리는 그 물건들이 상당히 많았다”며 “그러다보니 급격하게 연소가 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의 과실 가능성을 추측할 수 있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현대백화점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으면 유통업계의 첫 번째 처벌 기업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의 최고경영진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이라는 점에서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등의 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이 27일 대전 현대아울렛 화재현장을 찾아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있다. |
다만 현대백화점의 최고경영진 가운데 누가 법 적용 대상에 오를지는 미지수다.
현대백화점은 현재
정지선 회장과 장호진 사장,
김형종 사장 등 3인의 각자 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대표가 어러 명인 만큼 책임소재를 가리는 일이 향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에 중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둔 2021년 11월 홈페이지에 올린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서’를 보면 경영책임자가 여러 명 존재하는 경우 “개별 사안마다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 불이행에 관련한 최종적 의사결정권의 행사나 그 결정에 관여한 정도를 구체적으로 고려해 형사책임이 부과되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현대백화점이 공시한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보면
정지선 회장과 장호진 사장은 현대백화점 조직과 기업경영 일반을 담당한다.
김형종 사장은 조직 및 영업이 담당 업무다.
안전관리와 관련해서는 어떤 대표이사가 정확한 책임을 지고 있는지 드러나 있지 않다.
다만 현대백화점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경영과 관련한 안전보건 정책으로 대표이사 산하에 안전보건담당 조직을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정지선 회장과 장 사장, 김 사장 등 3명의 대표 가운데 특정 대표가 안전관리 업무를 전담하는 형태가 아닌 만큼 향후 법 적용에 있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의 화재사고와 관련해 정확한 원인 규명이 우선이다”라며 “원인이 규명된 다음에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가능성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사고 당일 현장을 재빠르게 찾아 고개를 숙이며 “향후 관계당국의 조사에 성실히 임할 것이며 어떠한 책임도 회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