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목소리를 내기 위해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올해 1월11일 신축공사 중 붕괴사고가 발생한 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입주예정자협의회와 비상대책위원회는 서울시에 2번째로 제출한 청원서에 이렇게 썼다.

입주예정자협의회는 “HDC현대산업개발이 진정성 있게 입주예정자들의 피해회복조치에 임했다면 우리는 오히려 회사를 응원하고 지지했을 것이다”며 “아직 HDC현대산업개발의 변화된 태도를 기다리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회사는 기만과 묵묵부답으로 답했다”고 말했다.

22일 정오가 조금 지나자 서울시 중구 태평로 1가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 주위로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도착했다.

버스에서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부부부터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쏟아져 내렸다. 이들은 모두 ‘000동 누구’라는 이름표를 목에 걸고 있었다.
  광주에서 화정아이파크 계약자들을 태운 관광버스는 최근 한 달 사이에만 모두 3차례 서울로 올라왔다.

8월26일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본사 앞에서 약 300명이 넘는 입주예정자들이 HDC현대산업개발이 제시한 입주지연 배상금 등 주거지원대책을 비판하는 상경집회를 열었고 9월2일에는 100여 명이 올라와 서울시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이날 다시 한 번 400여 명의 입주예정자들이 상경집회를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번에는 HDC현대산업개발에 강력한 처분을 내려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를 일으킨 데 따른 책임을 다하도록 해달라는 2차 청원서를 서울시에 전달했다.

집회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은 현재 광주에 살고 있다. 이들은 어린 아이들과 함께 서울행 버스에 올라타 300km가 넘는 도속도로를 달려왔고 서울시청에서 용산까지 5km 거리를 직접 걸어가 대통령실에 서한을 전달했다.

현장에서 만난 입주예정자인 직장인 A씨(41세)는 이날 초등학생 아들의 손을 잡고 집회에 나왔다. 8월26일에 이어 이날 2번째로 집회에 참석한 그는 직장에 연차를 냈고 아이는 학교에 체험학습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A씨는 HDC현대산업개발의 주거지원대책과 관련해 “회사가 중도금을 대위변제 해준다는 명목으로 지체 보상금을 없앤 꼴이다”며 “계약자들에게 지체 보상금을 줄 필요가 없으면 입주가 지체될 게 뻔하다. 이게 가장 염려된다”고 말했다.

A씨는 아들만 셋인데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화정아이파크를 계약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계획도 붕괴사고와 함께 다 틀어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결혼해 달콤한 신혼생활을 즐겨야 할 B씨(34세) 부부도 이날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 부부는 광주에 살고 있지만 이날까지 3번의 집회에 모두 참석했다.

B씨는 “HDC현대산업개발이 주거지원비로 1억 원을 빌려준다고 하는데 이 돈으로 광주에서 갈 곳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신혼집으로 화정아이파크를 마련한 B씨는 현재 부모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

다른 화정아이파크 계약자인 C씨(56세)도 이날 아내와 함께 집회 현장에서 피켓을 들었다.

C씨는 “아이들도 다 크고 이제 조금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하려고 몇 년 동안 준비를 하고 아이파크를 계약했는데 입주를 못하게 됐다”며 “HDC현대산업개발이 61개월이면 다시 재건축해 입주하도록 해주겠다고 했지만 확실하게 약속을 한 게 아니어서 걱정이다”고 말했다.

이날 ‘중대재해 반복하는 현대산업개발 서울시는 등록말소하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린 단상에 오른 비상대책위원회 한 위원은 “우리가 욕심을 내는 게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알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상금을 더 받기 위한 집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HDC현대산업개발은 또 이렇게 입주예정자들이 서울로 올라오게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비상대책위 위원은 “HDC현대산업개발의 주거지원대책은 은행에 중도금 40%를 대신 납부해주니 지체 보상금도 없다는 것이다”며 “입주예정자들이 이에 동의하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되면 시공사는 재건축에 10년이 걸리든 20년, 30년이 걸리든 늦어지는 데 책임을 지는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각 입주예정자가 가지고 있는 계약서 한 장이 그들의 유일한 무기"라며 "그 계약서에는 입주가 지연되면 지연 배상금으로 계약자들이 납부한 금액의 6.48%를 준다고 명시돼 있다"고 덧붙였다.

당초 광주 화정아이파크는 입주 예정일은 올해 11월이었다.

계약자들의 은행 중도금 만기일은 2023년 2월이다. 입주예정자들은 이미 계약금 10%에 중도금 6회차 가운데 4회차까지 약 3억 원가량을 중도금 대출 등으로 납부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붕괴사고 7개월 만인 8월 화정아이파크 계약자들을 대상으로 한 종합주거지원대책을 발표하고 이미 서류접수를 시작하는 등 보상안 실행에 들어갔다.
  HDC현대산업개발은 화정아이파크 주거지원대책에서 이자후불제로 이미 대출된 중도금 대출(분양금의 40%)을 대위변제하고 남은 계약금 10%에 관해 계약서상의 입주지연 배상금 비율인 연 6.48%를 적용해 배상금을 주기로 했다. 

중도금을 대출 없이 납부한 계약자에게는 자납금액에 기간이자를 더해 납부한 중도금을 모두 돌려준다는 방침도 밝혔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이 밖에도 각 입주예정자들에 전세자금 등을 위한 주거지원비 1억1천만 원을 지원해준다.

광주 화정아이파크는 올해 1월11일 공사 중이던 201동 외벽 일부가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8개 동 전체를 전면 철거하고 재시공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광주 화정아이파크 입주일은 현재 2027년 12월로 미뤄졌다. 

다만 철거작업이 까다롭고 행정적 절차도 만만찮아 전면 철거 뒤 재건축까지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