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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200일] (2) 재계 법 개정 요구, 법 모호성과 처벌 과도 우려

임민규 기자 mklim@businesspost.co.kr 2022-09-21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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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200일] (2) 재계 법 개정 요구, 법 모호성과 처벌 과도 우려
▲ 경영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모호성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며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 쪽에서도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을 손보려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충실히’.

표준국어대사전에 ‘충실히’는 ‘충직하고 성실하게’라고 풀이돼 있다. 주관적인 판단이 주요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는 이 낱말이 세 번 등장한다. 이를테면 '사업주 등은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경영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모호성을 큰 문제라 지적하고 있다. 법에서 제시하는 기준이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게임 규칙보다 덜 명확하다는 말까지 내놓는다.

2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말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개정하기 위해 9월 안에 개정안을 입법예고 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7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는 방침을 이미 밝혔다.

정부의 이러한 시행령 개정 움직임은 사실상 경영계의 요구로 시작됐다.

앞서 5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에 대한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한 데 이어 6월에는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이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

이들이 추구하는 개정 방향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가혹하니 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하자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박대출 의원은 법 개정 제안 이유를 두고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 및 보건 확보를 위한 충분한 조치를 했음에도 재해가 발생한 경우 법률 적용의 다툼이 있을 수 있고 과도한 처벌로 선량한 자의 억울한 피해도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개정법률안은 법무부 장관이 중대재해예방에 관한 기준을 고시하고 이를 준수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는 처벌 형량을 감경해주자는 것을 뼈대로 한다. 

경총은 건의서를 통해 다섯 대목을 구체적으로 지목해 시행령 개정을 제안했다. 여기도 핵심은 경영책임자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것이다.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기업의 ‘경영책임자 등’을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경총은 여기서 ‘또는’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고 있다. A와 B가 ‘또는’으로 연결이 되면 A와 B 둘 다 해당되는 건지, A와 B 둘 중 하나만인지, 하나만 해당된다면 어느 쪽이 더 우선순위를 갖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경총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나눈 통화에서 “경영책임자 등의 정의를 ‘또는’으로 묶어놓으면 이사람 저사람 다 처벌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결국 아무도 책임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며 “명확하게 특정해야 기업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분명한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경총은 시행령에 새로운 조문을 신설해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이에 준하는 자’가 선임된 경우 사업대표자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의무이행 책임에서 면제되는 규정도 새로 마련해 달라고 건의했다.

이 밖에 경총은 시행령에 나오는 ‘필요한 권한과 예산’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충실히’는 정확히 어느 정도를 의미하는 것인지 불명확하다면서 관련 문구를 삭제할 것도 촉구했다.

현행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5항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등이 안전보건관리책임자등에게 해당 업무 수행에 필요한 권한과 예산을 제공할 것과 해당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지 기준을 마련하고 이에 따라 반기 1회 이상 평가·관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총 관계자는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잔인하지만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는지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최소한 규칙만큼은 명확하다”며 “잘못하면 대표이사만 잡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규모가 작은 기업의 경우에는 망할 수도 있는 법인데 어떻게 해야 기업이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인지 구체적이고 분명하지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안전수칙을 안 지키거나 안전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아서 사고가 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데 기업에 대한 나쁜 고정관념을 갖고 사고는 일단 기업의 잘못이라는 전제에서 법과 정책이 제정되는 상황이 많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처벌 수준을 두고는 과도하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이미 산업안전보건법에도 처벌조항이 있는데 추가로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든 것은 보복성 접근이라는 것이다.

최수영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2021년 발표한 논문 ‘해외사례를 통한 중대재해처벌법 향후 정책방향’에서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조항을 두고 “합리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논문에서 “형법에서도 징역 하한형은 고의범에게 주로 적용되며, 1년 이상의 징역은 형법 제252조 제1항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그를 살해한 자’에게 적용되는 매우 높은 강도의 처벌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국과 호주의 사례와 비교했다.

영국은 2007년 세계 최초로 기업의 형사책임을 인정하는 ‘기업과실치사법’을 제정해 사망사고를 낸 기업에 거액의 벌금을 부과했다. 다만 법인만 처벌할 뿐 개인을 벌하지는 않는다. 

반면 호주는 주별로 약간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기업과 고위경영진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게 법을 시행하고 있다. 다만 징역형은 하한이 아닌 상한이 명시돼 있고 처벌하기 위해서는 기업 또는 경영진이 심각한 부주의로, 노동자 사망사고에 중요한 원인을 제공했을 때만 가능하도록 조건을 구체적으로 제한했다.

최 연구위원은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기업은 막대한 손실이 발생해 경영책임자가 이를 고의로 계획할 리 없는데 고의범에게 적용되는 징역 하한형은 강도가 매우 높다”며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만큼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총 관계자 역시 “기소여부를 떠나 조사 및 대응과정에서부터 기업은 많은 피해와 손실을 입는데 누가 고의로 안전을 외면하겠느냐”며 “어떻게든 처벌하려는 형태의 감정적 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도 경영계의 목소리에 주목하며 시행령 개정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7월 처음으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방침을 밝히며 ‘충실히’ 등의 해석이 모호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는 경총의 입장과 동일하다.

다만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은 7월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노동부 새 정부 업무계획 보고’ 사전 브리핑에서 경영책임자의 대상과 범위를 구체화하자는 요구를 두고 “시행령으로 경영책임자를 명확히 하는 것은 법이 위임한 한계를 넘어선다. 이는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일단 선을 그었다.

이를 두고 경영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난관에 부닥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최근 기획재정부가 고용노동부에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가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관해 최종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면 경영책임자로 본다‘, ’사업주가 사업장 안전·보건에 관한 인증을 받으면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본다‘와 같은 내용의 시행령 개정 방안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계의 가장 가려운 부분을 찾아 긁어준 것이다. 하지만 기재부의 공식 입장은 여전히 법 개정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에 대해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9월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러 곳에서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된 문제가 많이 제기돼 정책을 총괄하는 경제부총리 입장에서 전문가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어 올해 1~2월 연구용역을 의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진행한 연구용역의 결과를 정책결정에 참고하도록 공유하는 차원이었다는 것이다.

추 부총리는 시행령 개정 방안에 경영책임자 정의 관련 내용이 들어있다는 언론 보도를 두고 “시행령 개정은 법의 위임 범위를 벗어나서 할 수 없지 않느냐”며 “시행령 개정 사항이 당연히 아니다”고 말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같은날 국회 예결특위에서 “기획재정부에서도 경영책임자 정의 부분은 법 개정 사항이라는 의견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시행령 개정 사항이란 의견을 줬다면 우리는 아니라고 정리할 것이다”고 밝혔다.

이후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상 위임이 없는 규정을 시행령에 반영할 수 있는지 법제처에 질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식 장관은 9월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를 두고 “최고안전책임자(CSO) 정의 규정과 관련해 전문가 사이 이견이 있다고 해 마지막으로 의견을 구해본 것”이라며 “고용노동부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령 개정을 통해 많이 수정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국회 의석수를 고려하면 법 개정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검수완박’ 법을 시행령을 통해 거의 무력화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앞서 정부는 검찰 수사권을 축소하는 법안의 시행령 개정을 통해 검찰 수사권을 대폭 확대했다.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범죄’에서 ‘등’을 폭넓게 해석하며 법률에 명시되지 않은 범죄들도 검찰이 수사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서의 내용도 개정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1월 중대재해처벌법 내용의 이해를 돕고자 해설서를 발간했는데 경영책임자등을 특정할 때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선임됐다는 것만으로 사업 대표의 의무가 면제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여러 차례 시행령을 개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지난해 12월 충남북부상공회의소 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해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인들의 경영의지를 위축시키는 강한 메시지를 주는 법이다”며 “예방 장치여야지 사고가 났을 때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운영돼선 안 된다”고 개정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올해 1월에도 경남 창원시 봉암공단회관에서 열린 ‘봉암공안 기업협의회 간담회’에 참석해 “기업을 경영하는 분들이 의욕을 잃지 않도록 관련 시행령 등을 잘 다듬겠다”고 말했다. 임민규 기자
 
[편집자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200일이 지났다. 과연 우리 일터는 더 안전해졌을까.

이 법을 둘러싼 기업과 노동 쪽 불만은 외려 커지고 있었다. 견해차가 워낙 컸고 민감한 현안이라 취재도 쉽지 않았다. 두 달에 걸쳐 최대한 접근해 봤다.

우리 사회 전체가 지혜를 모아야 할 문제임을 다시금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더 이상 일터에서 사람이 죽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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