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8일 영국 런던 스탠스테드공항에 도착해 대통령 전용기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조문을 못했다고 하면 끝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조문 논란을 지켜본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한 말이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을 두고 정치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조문취소 논란'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외교홀대를 받은 게 아니냐는 지적부터 지나친 정치공세라는 반박까지 다양한 주장들이 엇갈린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모든 논란은 윤 대통령이 웨스트민스터 궁에서 하기로 예정됐던 조문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대통령이라도 다른 나라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논란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말 대통령이 조문을 하지 못할 상황이었는지 의심이 든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전날 윤 대통령의 조문취소에 관해 “18일 이른 오후까지 도착한 정상은 조문할 수 있었고 런던의 복잡한 상황으로 오후 2~3시 이후 도착한 정상은 19일로 조문록 작성이 안내됐다”고 설명했다.
문재인정부에서 의전을 총괄했던 탁현민 전 비서관은 김 수석의 설명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탁 전 비서관은 “민항기가 아닌 대통령 전용기는 원하는 시간에 띄울 수 있고 (대통령 전용기는) 사전에 도착하는 시간도 항공통제관을 보내 영국 정부와 협의를 한다”며 “조문이 가장 중요한 일정이고 한 두 시간 일찍 출발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늦게 도착해서 조문을 못했다는 것은 변명으로 듣기에 좀 거북하다”고 꼬집었다.
영국의 교통 상황을 미리 감안하지 못했다는 점도 대통령을 보좌하는 외교·의전 분야 실무진들이 무능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영국의 교통 통제 상황에 대비해 운동화를 신고 일반 시민 조문객들과 함께 걸어가 조문을 하는 모습을 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처음부터 (영국) 교통이 막힌다는 것은 세계 언론에 다 보도가 됐다”며 “대통령 일정을 다루는 의전팀이 좀 똑똑했으면 좋겠다”고 비판했다.
다른 나라 정상들이 직접 조문을 한 모습들과 비교하면 윤 대통령의 조문취소는 더욱 아쉬운 대목으로 남는다. 미국, 캐나다, 일본, 중국을 비롯해 우크라이나 사절단도 조문을 마쳤다.
특히 왕치산 중국 부주석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 문제로 영국과 외교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조문과 장례식에 참석하는 외교능력을 보여줬다.
이번 윤 대통령의 해외순방에서 외교능력이 부족한 부분은 ‘조문취소’뿐만이 아니다.
한일정상회담 성사 여부를 두고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대통령실은 지난 15일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유엔(UN)총회에 참석하는 20일과 21일 사이에 한일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하고 시간을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산케이 신문 등 복수의 일본 언론은 18일 일본 외무성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일정상회담 개최가 결정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한일정상회담 성사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에 관해 묻자 대통령실은 19일 “노코멘트”라며 “차후 결론이 있을 때 말씀드리겠다”고 해명했다.
게다가 외교부는 20일 오전 미국 뉴욕에서
박진 외교부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만나 논의를 한 뒤에도 정상회담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정상회담 개최 계획은 일반적으로 양국이 모든 사항을 확정한 뒤 동시에 발표하는 것이 외교적 관례다. 대통령실이 성과를 강조하고자 관행을 지키지 않으면서 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물론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문제는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는 거다.
윤 대통령의 첫 해외순방이었던 지난 6월 나토정상회의에서도 핀란드 정상과의 회담이 취소됐고 나토 사무총장과의 면담은 예정된 일정에 이뤄지지 않았다.
홍익표 의원은 당시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늦게라도 정상 간 일정이 확정되면 반드시 만나는데 취소됐다는 것은 확정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대통령과 관련된 실수가 반복되면 국민들의 대통령에 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대통령이 거듭된 실수를 보이는 분야가 외교라면 이는 대통령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격 손상과 국익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욱이 윤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정수행 부정평가가 60%를 넘기며 국민들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 시사인이 15일 발표한 역대 대통령 신뢰도조사에서도 윤 대통령의 신뢰도는 10점 만점에 3.62점으로 탄핵되기 전 박근혜 대통령(3.91)보다도 낮았다.
대통령의 낮은 신뢰도는
윤석열정부의 최대 과제인 경제위기 극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실은 취임 100일을 앞두고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지자 인적쇄신을 단행해 분위기 전환에 나섰다. 인적쇄신에 관한 평가는 각자의 견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통령실은 반응을 보여줬다.
이번 조문취소 논란에도 대통령실의 ‘인적쇄신’이라는 반응을 기대한다. 그리고 탁 전 비서관이 대통령실을 향해 했던 조언도 되새겨보는 것을 추천한다.
“제발 프로페셔널(전문가)를 써라.”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