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리정보 공시제도 개선방안에 따라 은행들의 서열이 매겨지고 있지만 1등이 멋쩍고 꼴찌가 억울할 수도 있다. |
[비즈니스포스트] ‘신한은행 1등’, ‘BC카드 꼴찌’.
실적발표 시즌이 아닌데도 이처럼 은행 이름에 '등수' 꼬리표를 붙인 기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7월 초 마련한 ‘금융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한 금리정보 공시제도 개선방안’에 따라 최근 은행연합회가 은행별 예대금리차와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을 비교공시 했기 때문입니다.
우선 등수를 매기면 어떤 은행이 예대금리차가 가장 큰지, 어떤 카드사가 금리인하요구권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는지 등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정부가 의도했던 대로 금융사 사이 금리인하 경쟁을 촉발하는 유인제가 되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예대금리차나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로 알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산출된 수치만 가지고 등수가 정해지고 정작 그 산출과정에 담긴 중요한 정보들이 '몇 등이냐'는 타이틀에 가려질 수 있어 금융사들은 이런 줄세우기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이번 비교공시에서 ‘등수 폭탄’을 맞은 신한은행은 해명하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신한은행은 첫 예대마진 공시와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 공시에서 5대 시중은행 가운데 각각 ‘1등(가계예대금리차 기준으로 금리차이를 가장 많이 챙김)’과 ‘5등(수용률이 가장 낮음)’을 차지하면서 얼굴이 뜨거운 상황에 놓이게 됐죠.
신한은행의 해명은 이렇습니다.
우선 최근의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 공시와 관련해서는 신한은행이 수용률은 가장 낮지만 수용건수는 가장 많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이 가장 높은 NH농협은행의 금리인하요구권 전체 신청건수와 수용건수는 각각 8534건, 5079건으로 신한은행에 크게 못 미칩니다. 신한은행은 전체 신청건수가 13만1935건이었고 이 가운데 4만70건을 받아들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두 회사의 희비를 가른 것은 신청방식이었습니다. NH농협은행은 대면으로만 금리인하요구권 신청을 받았고 신한은행은 모바일로도 신청접수를 했습니다.
금리인하요구권은 신용도가 크게 개선되지 않아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고객들이 신청을 했고 모바일로 간편하게 신청할 수 있으니 더 많이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신청이 쉬울수록 신청도 더 많이 들어올 텐데 이러면 전체 신청건수가 많은 회사가 ‘수용률’ 대결에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죠.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바일을 켜고 신청해 본 사람이 많으면 수용률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할 수 있습니다.
반면 신한금융그룹 안에서는 이와 유사한 요인 때문에 신한은행과 반대로 혜택을 본 회사도 있습니다. 바로 같은 계열사인 신한카드입니다.
신한카드는 7곳 카드사 가운데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이 가장 높아 1등을 차지했는데 이것만으로 ‘신한카드가 금융소비자에 가장 많은 이자를 감면해줬다’고 할 수 있냐 하면 그건 또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카드업계 1위인 신한카드는 수용률은 높지만 수용건수나 이자감면액 규모는 오히려 다른 카드사와 비교해 적은 축에 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카드사 가운데 이자감면액 규모가 가장 큰 곳은 가계대출을 기준으로 봤을 때 삼성카드로 14억2700만 원을 감면해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삼성카드는 전체 신청건수 13만9878건 가운데 5만6444건을 수용한 것으로 파악됐죠.
반면 신한카드는 전체 신청건수 6173건 가운데 4570건을 받아들여 2억1300만 원의 이자를 깎아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신한카드와 삼성카드는 각각 카드업계에서 시장점유율 기준으로 1위와 2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금융권 일각에서는 두 회사의 전체 신청건수가 이처럼 크게 차이나는 것을 두고 의구심을 품는 시선도 나옵니다.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 비교공시가 시행되기 전에 금융사가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만을 높이려고 일부러 신청 안내를 소극적으로 하는 등 ‘꼼수’를 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죠.
또 수용률이 낮은 회사들은 이미 충분히 낮은 금리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금리인하 여력이 적어 상대적으로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이 낮게 나올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단순히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이 높다고 해서 금융소비자 권익 향상에 더 신경을 쓰는 회사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얘깁니다.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과 마찬가지로 예대마진 공시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습니다.
신한은행은 첫 예대마진 공시에서 1등을 차지해 금리차익을 많이 챙겼다고 인식되는 것과 관련해서 "이는 서민금융상품 판매 비중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신한은행측은 “햇살론, 새희망홀씨 등 서민지원 대출상품 판매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가계대출 안정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고정금리대출 활성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서민금융 고객들은 고신용자보다는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아 전체 대출금리 상승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의 주장대로 예대금리차 공시에는 은행별 상품구성의 특성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정부 정책에 적극 동참하며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늘렸다고 하면 대출금리 자체도 상승할 수밖에 없는데 예대금리차 순위를 매길 때 이 점까지는 반영하지 않죠.
물론 이와 같은 ‘줄세우기’는 금융소비자들에게 분명 장점으로 다가오고는 있습니다. 예대금리차가 공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속속 내렸습니다.
하지만 ‘등수’로 하나로만 알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예대금리차 공시만 해도 등급별 대출한도처럼 은행마다 다른 점이 분명한데 예대금리차가 가장 적은 은행이 꼭 소비자인 자신에게 가장 좋은 은행이다고 볼 수 없으니 말이죠. 차화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