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펄어비스가 실적 부진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기대작이었던 검은사막M의 중국버전은 흥행에 참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FN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 15곳 가운데 4곳이 펄어비스 주식의 투자의견을 중립(HOLD)으로 놓고 있다.
올해 2분기에는 영업손실 42억 원을 내면서 2021년 2분기와 비교해 적자가 유지됐다.
현재 펄어비스 투자자들, 그리고 게임 이용자들의 눈은 펄어비스의 기대 신작 ‘붉은 사막’에 쏠려있다.
펄어비스는 붉은사막을 온라인게임이 아닌, 싱글 플레이 기반의 오픈월드 어드벤처 게임으로 만들고 있다. 붉은사막이 펄어비스의 실적을 쭉 끌어올리는 데에는 그다지 효과적 아이템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용자들의 과금으로 매출을 올리는 일반적 MMORPG와는 달리, 싱글 플레이 기반 콘솔 게임들은 게임 타이틀 판매 수익과 DLC(다운로드 콘텐츠) 판매수익으로 돈을 법니다.
할인이 없는 AAA급 게임 하나의 가격이 7만 원 정도이기 때문에 유료 내려받기 콘텐츠 몇 개의 가격을 더한다면 붉은사막의 모든 콘텐츠를 즐기는 데에는 10만 원 내외의 금액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붉은사막이 세계적으로 ‘대박’이 나서 세계 누적 판매량 1천만 장 정도를 판매한다고 가정했을 때 매출이 1조 원 정도라는 뜻이다.
엔씨소프트가 리니지M을 통해서 2021년에 국내에서만 올린 매출이 약 8천억 원 정도라는 것을 살피면 세계 흥행을 가정한 매출 치고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붉은사막 역시 처음 기획단계에서는 MMORPG로 개발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펄어비스는 계획을 바꿔 붉은사막을 싱글플레이 기반의 게임으로 만든다고 결정했다.
왜 펄어비스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선택’ 대신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정경인 전 펄어비스 대표의 말에 힌트가 있다. 정 전 대표는 2021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붉은사막’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고 펄어비스가 세계 최고 수준의 개발 역량을 갖춘 개발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모든 직원이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펄어비스가 붉은사막을 만들고 있는 목적은 단순히 높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좀 더 높은 곳을 보고 있다는 뜻이다.
펄어비스는 붉은사막을 펄어비스의 브랜드 가치를 국내 다른 게임 개발사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급격하게 올려줄 게임으로 바라보고 있다. 붉은사막 이후 펄어비스의 경쟁자를 엔씨소프트, 넥슨, 넷마블이 아니라 EA, 액티비전블리자드, 유비소프트로 보고 있는 셈이다.
생각보다 게임업계에서는 정말 잘 만든 게임 하나로 ‘게임 명가’에 드는 일이 절대 드물지 않다.
‘라스트 오브 어스’의 개발사 너티독과, ‘위쳐3’의 CDPR(CD프로젝트)이 대표적 사례다. 너티독과 CDPR 모두 언차티드 시리즈, 위쳐 시리즈로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었던 게임 회사이긴 하지만 라스트오브어스와 위쳐3를 통해 한번에 세계 최고 수준의 게임회사로 떠올랐다.
붉은사막이 정말 세계를 놀라게 할 게임이 된다면 펄어비스도 이들의 뒤를 이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붉은사막의 흥행은 단순히 펄어비스의 레벨업을 넘어, 국내 게임업계 전체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는 ‘게임 강국’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사실 국내 게임회사들은 이런 명성에 비해 세계적으로는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게임 중에 게임계의 골든디스크, 최다 고티(GOTY, Game Of The Year)를 받은 게임이 단 하나도 없다.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쳤다는 배틀그라운드마저도 최다 GOTY의 영예는 안지 못했다.
배틀그라운드가 발매된 2018년 최다 GOTY를 수상한 게임은 산타모니카스튜디오(SONY 산하)가 개발한 ‘갓 오브 워’였다.
애초에 우리나라에서는 AAA급 게임, 그러니까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개발된 초대형 싱글 기반 콘솔 게임 자체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그러니까 만약 붉은사막이 정말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게임이 된다면, 우리나라 게임업계 전체가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게임 개발사들도 AAA급 게임을 만들고, 또 그 게임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점을 세계 게임시장에 각인시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경인 전 대표는 직접 AAA급 게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정 전 대표는 2020년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붉은 사막이 기존 AAA급 대작 게임들과 같은 성과를 내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정리하자면 펄어비스가 바라보는 붉은사막은 펄어비스를 ‘돈 잘 버는 게임회사’가 아니라 ‘게임 잘 만드는 게임회사’로 만들기 위한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붉은사막이 정 전 대표가 이야기했던 ‘세계 최고 수준의 개발 역량을 갖춘 개발사’로 끌어올려줄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이다.
과연 붉은사막은 펄어비스를 정말 세계 최고의 게임회사로 우뚝 세워줄 수 있을까? 정 전 대표의 “붉은사막이 기존 AAA급 대작 게임들과 같은 성과를 내는 것이 목표”라는 말이 공염불이 아니게 될 수 있을까?
최다 GOTY 수상 목록에 일본, 미국, 유럽 개발사의 게임이 아니라 한국 개발사의 게임이 올라가는 날을 기대해본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