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이 8월26일(현지시각)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잭슨홀 미팅) 참석을 위해 걸어가고 있다. 파월 의장은 이번 연설에서 추가 금리인상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하지만 금리인상만으로 지금의 인플레이션이 잡힐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의 지난 26일 잭슨홀 연설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미국 경제는 아직 건강하다(낮은 실업율).
2. 인플레이션률이 높으면 차후에는 더 큰 어려움이 따른다. 인플레이션률을 연준의 목표치인 2%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의 고통이 있더라도 연준은 강력하게 대응해야 하며, 할 수 있다.
파월의 주장을 논박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심지어는 연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연구 논문조차도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수요 측면이 아니라, 공급 측면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대략 인플레이션의 35%가 수요 관련이며, 나머지 65%는 공급 관련이다. 연준의 금리 정책은 스스로 인정한 바 있듯이, '수요'에 관해서는 영향력을 가질 수 있지만, 공급을 좌우할 수는 없다.
따라서 공급에 영향을 미칠 만큼 수요를 억누르기 위해서는 연준은 이른바 'overkill'(추가적인 금리 인상으로 과도하게 수요를 위축시키는 것)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미국은 세계의 소비 시장이기 때문에, 결국은 이같은 연준의 정책은 세계적 경기 하강을 불러오게 된다.
파월 의장의 연설이 나오자마자 금융 시장이 한바탕 철렁한 것도 그 때문이다. 시장은 연준이 경기 상황을 고려해서, 그리고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지나가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금리 인상 속도나 폭을 자제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었는데 파월은 여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연준은 다른 것 고려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명을 분명히 했다. "물가 안정을 이루려는 우리의 책임은 무조건적이다"라는 파월 의장은 발언은 시장 상황이 어떻든, 재정 정책이 어떻든 인플레이션율을 무조건 2% 내로 안착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게다가 노동시장 상황이 악화되더라도, 인플레이션 안정화와 실업률 사이에는 시간차가 있기 때문에, 금리 인상 정책은 계속될 것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따라서 실업률이 상승한다고 해도 연준은 금리 인상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파월의 말에 따르면, "수요가 공급에 일치될 때까지"(이게 바로 물가 안정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공급은 연준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미국 외부에서 발생하는 경제 외적인 사건들은 연준이 통제할 수 없다.
천연가스를 생각해 보자.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하면, 단지 에너지 가격이 상승해서 가계 소비 지출을 줄이는 역할을 하는 것만이 아니다.
천연가스는 광범한 화학산업 재료로 사용된다. 독일의 세계적 화학기업 BASF가 경고했던 것처럼, 만일 천연가스 가격이 지나치게 상승하거나 혹은 공급 부족으로 생산이 불가능해진다면, (독일 내부적으로는) 단지 실업자 숫자가 증가할 뿐만 아니라(관련 산업 분야에서만도 최고 1백 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게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관련 화학제품의 공급 부족으로 다른 상품의 가격까지도 폭등하게 된다.
이미 지난 금요일 노르웨의 유럽 최대 비료회사가 천연가스 가격 상승으로 화학비료 원료 생산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화학비료 부족 현상이 빚어지면 이는 결국 농업제품(곡물)의 생산 감소로 이어지며, 곡물 인플레이션으로 진행된다.
식료품은 생필품이기 때문에 수요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은 먹어야 산다. 가계에서 식료품 관련 지출이 증가하면 대신 다른 상품의 소비는 줄어들겠지만, 만일 다른 상품의 공급도 소비가 줄어드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감소한다면, 소비가 줄어드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격은 상승한다(이른바 1차 오일쇼크였던 1973-73년 경기 침체 때가 이랬다).
최종적으로는 수요는 감소하는데 가격은 오히려 상승한다.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같은 과정은 중앙은행이 개입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발생한다. 중앙은행은 단지 그 과정에서 약간의 '감속/가속'을 가할 뿐이다.
금리를 올려도 물가가 상승하는 것을 막지는 못하며, 금리를 내려도 물가가 하락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후자는 이미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볼 수 있었다).
1970년대~80년대 초의 연준 금리 추이를 보면 흥미로운 관찰을 할 수 있다. 1973~75년 경기 침체기에 연준은 오히려 금리를 인상했다. 그러면 연준은 이 시기에 금리 인상으로 물가를 낮출 수 있었는가? 아니다. 경기 침체 도래기의 인플레이션율보다도 경기 침체가 끝났을 때의 물가 상승율이 더 높았다.
1980년의 이른바 2중 침체(연속된 경기 침체)기는 더 흥미롭다. 당시 연준 의장이던 폴 볼커의 '신화'는 실은 '사후적'인 것인데(그가 연준 의장으로 재직할 때는 아무도 그가 '인플레이션을 잡은' 영웅이라고 생각 안 했다),
이는 마치 '금리'가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인식'을 만들기 위해 생겨난 왜곡이라고 보아야 한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유명한 볼커 의장이 금리를 한꺼번에 가장 높이 올렸던 때는? 1980년 2월이다. 한꺼번에 무려 525bps(5.25%)나 인상했다. 요즘처럼 0.75% 인상 가지고 'giant step'이니 뭐니 하는 건 애들 장난에도 못낀다(물론 기저 금리가 다르기 때문에 비슷한 효과를 낸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런데 1973년 침체기와 마찬가지로 1980년 2월의 금리 인상도 경기 침체기에 이루어졌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졌나? 경기가 곤두박질치자, 볼커는 다시 금리를 인하했다. 불과 3개월 만인 1980년 5월 연준은 무려 850bps(8.5%)나 인하한다. 개발도상국도 그렇게는 안한다. bannana republic도 그렇게는 안 한다.
어쨌든 금리를 8% 이상 인하했으니 효과가 있지 않을까? 금리를 인하한 그 시기에 2차 오일 쇼크가 발생했고 물가가 급등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 다시 부리나케 금리를 인상했다. 그래서 1981년 초에는 거의 20%선까지 올렸다. 그래서? 그러자 경기가 박살났다.
경기를 살린 것은 또 다시 부리나케 금리를 인하해서가 아니라, 그 때를 기점으로 globalization 체제가 본격화되면서 해외에서 공장이 건설되고 상품이 미국으로 쏟아들어 오면서, 그리고 금융 시장 '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금융 시장에 자율권을 보장함으로써 글로벌 자본 순환 체제를 구축하면서부터였다(중국의 개혁개방의 분수령이 된 등소평의 '남순강화'도 이 때 발표된다. 중국은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글로벌 경제 분업 체제에 편입한다).
볼커가 실제로 한 것은, '인플레이션 파이팅'인지 경기 부양인지는 몰라도, 정신 사나운 금리 급등락이었다. 금리가 널을 뛰면, 채권의 '안정성'이 사라진다.
이를 VAR(value at risk) shock라고 하는데, 채권 변동성이 커지면서 이를 보유하고 있는 은행들의 시장 '담보' 가치가 하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채권 가격이 하락하면 '화폐'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다. 그러면 다시 인플레이션이 꿈틀거리게 된다.
부분적으로는 이게 현재 일본 중앙은행(BOJ)이 인플레이션과 미국의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왜 '완화적 금융정책'인 quantitative easing을 계속하고 있는지 설명해 준다.
BOJ는 지나치게 일본 국채를 매입했기 때문에(특히 장기 국채물은 사실상 BOJ=market이다), 시장의 'buffer'가 없다. 따라서 만일 BOJ가 QE를 중단한다면 일본 국채 시장에서 국채 수익률이 급상승(국채 가격 하락)할 위험성이 매우 높으며, 이는 일본 은행들이 보유한 채권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그러면 이 채권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한 은행들은 포지션 정리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되고, 이는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시에 보았던 악순환(급매물-fire sale-로 인한 금융 시스템 붕괴)의 가능성이 커진다.
즉 일본중앙은행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되든 간에, 지금의 QE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BOJ가 '국채 시장'은 막아도 '외환시장'은 못막는다(이게 이른바 triffin's dilemma라고 하는 난제다). 따라서 트레이더들은 맘 놓고 일본 엔화를 '숏'치며, 엔화 가치는 계속 하락한다.
그러면 일본 무역수지가 개선되지 않을까? 일본 역시 주요 생산시설의 상당수가 해외로 이전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인한 효과는 크지 않다.
오히려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인해 기업들의 수익률이 악화되고 이는 결국 무역 수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경상수지는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일본 경상수지는 이미 지난 2021년 말부터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일본 경상수지는 지난 2013년 이후에는 계속 큰 폭의 플러스였다(이것이 BOJ의 QE의 진정한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국내 금융 자산의 가격을 중앙은행이 보장함으로써 해외 자본의 유입을 유도하는 것이다. 미국 연준이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 짓하다가 결국 2008년 위기를 초래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 이미 '뭔가' 빗나가기 시작했고 이는 BOJ의 QE가 드디어 '한계'에 봉착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더불어 yield curve control이라고 불리는 국채 시세 조작에도 그러하다. 나아가 BOJ는 주식 ETF도 매입하고 있기 때문에 증시에도 손대고 있다. 스위스 중앙은행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BOJ는 금융 시스템 붕괴 위험 때문에 하던 대로 계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끝이 좋기는 힘들다.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자. 파월 의장은 미국 경제가 '좋다'고 했다. 근거는 실업률이다. 잠깐 초점을 돌려보자.
▲ 미국 소비자 물가 변동율과 개인소비 지출 추이. |
1980년 경기 침체가 끝난 뒤 1982년의 이중경기 침체(double dip)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볼커는 금리를 계속 인상했다. 그런데 소비자물가는 이미 1980년 초를 고점으로 계속 하락 중이었다. 볼커는 물가가 하락하는 와중에 금리를 인상했던 것이다.
그러자 1982년에는 더 큰 폭의 침체가 찾아왔다. 경기 침체와 금리 인상이 겹치자 물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당시 연준은 인플레이션 가이드 라인이 없었다(지금은 연간 2%). 그러나 의회에서 통과된 개정 연준 법률(험프리 법안)은 그 취지상으로는 '제로 상승률'을 지칭하고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앨런 그린스펀 의장 재임기에 들어서야 연준과 의회는 은근슬쩍 '제로 물가'를 어젠다에서 치워버린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과 개인소비지출 추이를 보면, 경기 침체기에는 1970년 침체기의 단 한 번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개인소비지출 증가율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하회했다. 즉, 개인소비지출이 감소하는 정도가 물가 하락 정도보다 더 크면 경기 침체가 발생한다.
그러면 최근 추이는 어떨까?
▲ 2020년 이후 소비자 물가 변동율과 개인소비 지출. |
소비자 물가 상승률과 개인소비 지출 증가율은 지난 1월 이후에는 거의 동행하고 있다. 이는 가계 지출이 물가 상승분만큼만 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물가상승분을 제외하면 실은 소비 지출은 전혀 증가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즉 가격이 아니라, 가치(value) 기준으로는 미국 가계들은 지난해 동기와 비교해서 전혀 소비를 늘리지 않고 있다. 즉 미국 경기는 현재 '경계선'에 와 있다.
그런데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지난 2020년 코로나19 이후의 각국 정부들의 확장적 재정 정책과 중앙은행의 초완화적 통화정책, 그리고 지난해 중반부터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supply disruption(공급망 교란)의 결과였다.
쓸 돈은 주어지는데 공급은 감소했고 코로나로 떠나간 인력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것이 지금의 인플레이션이다.
여기에는 아직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효과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지난 7월이 인플레이션 정점이었던 것은 2020년 이후의 일련의 이벤트들의 효과가 7월이 최대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대략 경제적 이벤트가 발생한 뒤 약 1년 뒤에 그 효과가 최고점에 달하고 그 이후로는 점차 체감한다).
그러면 연준은 물가가 하락하는데 왜 금리를 굳이 더 인상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지금의 인플레이션에는 아직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인한 효과는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
지난 금요일 독일의 천연 가스 가격은 유가로 환산했을 때는 배럴당 1600달러 수준까지 상승했다(열량 비교 도식이 있다). 설마 배럴당 1천 달러를 넘을까 반신반의했었는데 간단히 넘어버렸다.
몇가지 요인이 불을 지폈는데,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 에너지 업체들에게 국내 에너지 가격 안정을 위해 해외 수출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한 것이 보도되었다.
이제까지는 이른바 '에너지 마샬 플랜'(JP모건의 CEO인 제이미 다이먼이 지난 3월 말 주장한 바이다)으로 미국이 유럽을 구제(유럽의 대러시아 에너지 수입 중단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에너지의 유럽 공급으로 부족 사태 해소)할 것으로 주장되었는데, 웬걸 뚜껑을 열어보니 제 잇속 차리고 있던 것이 드러났다.
게다가 같은 EU 일원이자 나토 회원국인 노르웨이도 자국의 수력 발전량 감소를 이유로 대유럽 전기 수출을 줄이고 자국 기업들에게 천연가스 수출을 억제하도록 공문을 보낸 것도 드러났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with friends like this, who needs enemy?'(적만도 못한 친구)다.
그래서 급기야 유럽의회 순회의장국인 체코의 대통령이 긴급 EU 회동을 요구하고 나섰다. 에너지 문제에 대한 공동 행동안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이는 현재 유럽 각국이 각자도생을 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게다가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은 현재의 유럽 에너지 위기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조차도 아니라고 말했다. 광신적인 재생에너지론자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건 사실이긴 한데, 앞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도 닥칠 것이다.
제만 대통령은 EU가 주장하고 있는 겨울철 실내 온도 제한 규정을 두고도 "노인들은 다 얼어죽으라는 얘기냐"라고 일갈했고 관련 당국자들은 과학자들의 자문을 받은 규정이라고 반박하고 있기는 하지만, 노인 사정은 노인이 안다(제만 대통령은 78세다). 물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로나19로도 아직 충분히 죽지 못했기 때문에, 겨울철에 한 번 더 소탕할 필요가 있는 모양이다.
미국은 몰라도, 적어도 유럽은 겨울철에는 2차 인플레이션 쇼크를 겪게될 것이다. 경기 침체와 더불어. 즉 스태그플레이션.
그러면 파월 의장의 'hawkish'(매파적인) 금융 정책은 지금 조건에서 합리적인 것일까?
볼커의 정책은 글로벌 경제 시스템이 전환되는 과정에서 정당화될 수 있었다. 지금은 볼커 시대가 연 globalization이 오히려 끝나가는(그것도 미국의 주도로) 시대다. 볼커를 모델로 삼는다는 것은 이미 사라진 역사를 향해 북을 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왜 파월은?
파월의 연설 속에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파월은 볼커를 인용하면서 'long-term inflation expectation'(장기적 인플레이션 전망)을 언급한다. 아직은 기업과 노동자들 사이에서 이 전망은 유지되고 있는데 이 전망이 뛰기 시작하면 인플레이션을 막기가 더 힘들어지고 이는 결국 노동자들에게도 손해라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들에게 '장기적 인플레이션 전망'이란 무엇일까? 기업은 원자재 '축장'이 가능하지만, 노동자들은 상품 축장이 불가능하다. 물가가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집 안에도 휴지를 '사재기'해봤자 얼마나 갖다 놓을 수 있을지 상상해 보라.
노동자들의 '장기적 인플레이션 전망'이란 실은 '임금 인상 투쟁'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금융이론가들이 말하는 이 '전망'은 실은 '후행적', '사후적'이다.
앞으로 물가가 오를 것 같아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너무 올라서 감당이 안되서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금융은 세상을 전도된 채 이해한다. 이건 19세기에도 이미 고찰되었던 것이다).
기업의 장기적 인플레이션 전망은 '원가(특히 임금)가 상승해 제품 가격을 인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labor's share(전체 소득 중에 임금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지난 1980년 이후 장기적 하락 추세에 있다.
기업 원가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일부 서비스 업종을 제외하고는 크지 않으며, 갈수록 노동 숙련도를 요하지 않도록 산업이 재편화되고 있기 때문에(degradation of labor), 대체 노동도 어렵지 않다. 따라서 실은 제품 가격 상승은 원가 압박보다는 기업들이 '이윤 욕망'이 더 우선한다(적어도 현재까지의 미국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보면 그렇다).
그리고 연준은 경기를 위축시켜서, 그래서 고용시장을 악화시켜서 노동자들이 그나마 주어지는 임금이라도 감지덕지하고 최대한 허리띠를 졸라매서 물가가 하락하도록 유도하려는 것이다.
연준은 지금 너희들이 굶어야 앞으로 먹고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므로 파월의 인플레이션 투쟁 선언은 동시에 반노동자 계급투쟁 선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프카의 단편 '굶는 거지'는 근대 초기 비엔나에서 '오늘 며칠째 굶는 중'이라는 푯말을 내세우고 구걸을 하던 거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카프카는 먹고 살기 위해서 굶어야 하는 역설을 말했다. 아마도 오늘의 우리들도 거지일 것이다. 이공순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