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이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성장률과 물가가 크게 떨어지면 금리인상 속도를 재검토하겠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5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는 ‘베이비스텝’을 결정한 뒤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총재는 현재 한국은행이 지금껏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총재는 한국은행 총재에 취임한 뒤 지속해서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다.
처음 참석한 7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 번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고 이날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4회 연속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갔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린 것도, 4회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도 모두 이 총재 때가 처음이다.
시장은 이 총리가 언제쯤 기준금리 인상을 멈추고 가지 않은 길에서 돌아설지 주목하고 있는데 당분간은 쉽지 않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연말 기준금리를 연 2.75~3%로 기대하는 시장의 견해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가 연말 기준금리를 최대 3%대로 예측한 만큼 올해 남아있는 2번의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지속할 가능성이 큰 셈이다.
이 총재가 10월과 11월에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각각 0.2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연말 시장 전망치인 연 3%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다만 내년부터는 이 총재가 기준금리를 동결하거나 인하할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하반기부터 물가 상승흐름이 꺾여 완만한 하락세에 접어든다면 이 총재가 더 이상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릴 필요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총재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당초 물가 정점 시기를 3분기 말이나 4분기 초로 예측했으나 최근 국제유가가 하락하고 있어 물가 정점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고 바라봤다.
게다가 이 총재가 기준금리를 지속해서 인상한다면 가계와 기업이 부담해야할 이자 부담은 한층 가중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연간 이자 부담은 3조3천억 원씩 늘어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 내부에서 경기침체 우려에 금리인상 속도 조절론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도 내년 이 총재의 속도 조절론에 힘을 싣는다.
7월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통화정책이 경제활동과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필요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연말에도 물가 상승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간다면 이 총재가 속도 조절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다.
향후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도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는 2.5%로 다시 같아졌다.
다음 달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다시 한 번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역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 총재가 자칫 속도 조절에 나선다면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이는 더욱 벌어질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이가 커지면 자본유출 압박 강도가 더욱 높아지며 원/달러 환율 상승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원/달러 환율 상승은 국내 물가 상승을 유발할 수 있고 이는 다시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이 총재로서는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이 총재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행이 정부로부터는 독립적이지만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로부터는 그렇지 않다”며 연준의 결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정책 전망과 관련해서는 말을 아꼈다.
이 총재는 “현재는 불확실성이 워낙 큰 상황이라서 3개월 이후의 기조에 대해 지금 언급하는 것은 오히려 시장에 혼선을 줄 수 있다”며 “연말이나 돼야 내년 정책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장 역시 이 총재가 내년에도 가지 않은 길을 지속해서 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원화 약세로 인한 소비자물가 상승 및 자본 유출 대응 그리고 연방준비제도의 매파적 스탠스로 최종 기준금리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2023년 금리인상 가능성도 열어놔야 한다”고 내다봤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