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재 기자 piekielny@businesspost.co.kr2022-08-18 16:28:40
확대축소
공유하기
▲ 현대모비스의 사업분할 움직임에 따라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들고 있다.
현대모비스가 모듈과 부품사업을 분할해 전문 자회사를 만들겠다는 구체적 계획이 알려지고 현대차와 기아가 4200억 원을 들여 자율주행스타트업 ‘포티투닷’을 인수하면서다.
현대차그룹은 다른 대기업집단과 달리 상장계열사가 순환출자 구조로 묶여 있고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 오너일가 지분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 각 상장계열사는 자체 사업뿐 아니라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한 주요 의사결정에 따라 주가가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 현대모비스 사업분할로 떠오른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
1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현대모비스의 사업분할을 통한 자회사 설립 움직임을 놓고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장기 포석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보통 지배구조 개편은 사업구조 개편을 수반하며 명분과 효과를 극대화한다”며 “이번 현대모비스의 사업분할 역시 앞으로 재개될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포석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다”고 바라봤다.
증권업계에서는 현대모비스의 사업분할을 통한 자회사 설립 소식이 실제 주식시장에서도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과 연결되며 현대모비스 주가에 악재로 작용한 것으로 바라봤다.
현대모비스 주가는 사업분할의 구체적 내용이 흘러나온 뒤 첫 거래일인 16일 3.53% 내렸다. 12개 현대차그룹 상장계열사 가운데 주가가 가장 많이 빠졌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은 각 계열사 사이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정의선 회장의 취약한 지배력을 늘리는 데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기아-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 ‘현대차-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현대차’, ‘현대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로 이어지는 4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지니고 있다. 10대 대기업집단 가운데 순환출자 고리를 보유한 곳은 현대차그룹이 유일하다.
정부는 순환출자를 통한 기업집단의 계열사 지원, 동반 부실 등을 막기 위해 2013년부터 대기업집단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했다. 이후 10대 대기업집단을 포함해 국내 주요 대기업집단은 대부분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냈다.
정의선 회장은 보유 지분 측면에서 현대차그룹을 향한 지배력도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의 핵심계열사 3곳으로 꼽히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기아의 지분율이 각각 2.62%와 0.32%, 1.74%에 그친다.
문제는 정 회장이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핵심계열사의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핵심 순환출자 고리인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의 가장 약한 부분으로 여겨지는 기아와 현대모비스의 지분관계를 끊기 위해서도 3조5천억 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기아는 현대모비스의 최대주주로 지분 17.37%를 들고 있는데 현대모비스의 18일 종가 21만1천 원 기준 지분가치는 3조4661억 원에 이른다.
다른 고리를 끊기 위해 현대차가 보유한 기아 지분 33.88%, 현대모비스가 들고 있는 현대차 지분 21.43%를 매입하기 위해서는 18일 종가 기준 각각 10조5천억 원, 8조5천억 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 정의선 회장이 보유한 상장계열사 지분은 지배구조 개편의 자금줄
시장에서는 정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상장계열사 지분이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자금줄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정 회장이 지분을 많이 들고 있는 계열사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기대감이 일 때마다 주가 상승 기대감을 함께 받는다.
▲ 정의선 회장(오른쪽)이 7월18일 영국에서 열린 판버러에어쇼에서 워렌 이스트 롤스로이스 최고경영자(CEO)와 미래항공모빌리티(AAM) 기체개발과 관련한 업무협약을 맺은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현대차그룹>
현재 현대차그룹 12개 상장계열사 가운데 정의선 회장이 지분을 들고 있는 계열사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기아, 현대글로비스, 현대오토에버, 현대위아, 이노션 등 7곳이다.
이 가운데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오토에버가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중장기적 주가 상승 기대감이 큰 곳으로 꼽힌다.
정 회장이 지분을 상대적으로 많이 들고 있고 핵심계열사가 아니라 정 회장이 반드시 지분을 보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이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오토에버의 기업가치를 최대한 높인 뒤 지배구조 개편에 활용하는 전략을 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12개 상장계열사 가운데 정 회장의 지분가치가 가장 큰 곳이다.
정 회장은 현대글로비스의 최대주주로 지분 20.00%를 들고 있다. 이날 현대글로비스 종가 17만8500원 기준 지분가치는 1조4천억 원에 이른다.
올해 초 공정거래법 기준 변경에 따른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 일부 지분을 매각하면서 기대감이 다소 줄었지만 현대글로비스는 여전히 정 회장의 지분가치가 가장 큰 계열사인 만큼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수혜주 1순위로 꼽힌다.
현대글로비스 주가가 높아진다면 지분 매각, 지분 현물출자, 현대모비스와 합병 등 어떤 방식으로 진행을 하더라도 현대차그룹을 향한 정 회장의 지배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현대오토에버는 비핵심계열사 가운데 현대글로비스에 이어 정 회장이 보유한 지분가치가 2번째로 많은 계열사다.
정 회장은 현대오토에버 지분 7.33%를 들고 있다. 18일 현대오토에버 종가 12만500원 기준 지분가치는 2422억 원에 이른다.
현대오토에버는 정의선체제 출범 뒤 현대오트론, 현대엠엔소프트와 3사 합병 등을 통해 기업가치를 한 단계 높인 뒤에도 여전히 실적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오토에버 주가는 현대모비스의 사업분할 소식이 전해진 뒤 16일 5.00% 오르며 현대차그룹주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이기도 했다.
현대위아와 이노션은 정 회장이 지분을 들고 있지만 지분가치가 적어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받는 곳으로 꼽힌다.
정 회장은 현재 현대위아와 이노션 지분을 각각 1.95%와 2.00% 보유하고 있다. 18일 종가 기준 지분가치는 각각 365억 원과 174억 원에 그친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기아 등 핵심계열사 3곳은 현대차그룹이 향후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주가 방향성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2018년 현대차그룹이 시도했던 현대모비스 분할 뒤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안, 현대차를 지배구조 최정점에 놓는 방안,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각각 분할한 뒤 합병하는 방안, 현대모비스 지분을 직접 매입해 지배력을 높이는 방안, 지주회사체제 전환 방안 등 여러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앞으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기아 가운데 어느 회사가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최정점에 올라가고 자금줄로 쓰이냐에 따라 주가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다만 기아는 지배구조 최상단에 올라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에서 다른 계열사와 마찬가지로 자금줄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기아는 정 회장을 중심으로 한 친족합계 지분율이 1.74%로 핵심계열사 3곳 가운데 가장 낮다. 친족합계 지분율은 현대차가 5.33%, 현대모비스가 7.17%로 기아보다 3배 이상 높다.
정 회장이 최근 10년 동안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지분율을 조금이나마 늘린 반면 기아를 향한 지분율을 그대로 1.74%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기아가 지배구조 최상단 보다는 자금줄 역할을 맡을 가능성을 높인다.
정 회장이 보유한 기아의 지분 가치는 18일 기아 종가 7만6700원 기준 5416억 원이다.
▲ 2018년 현대차그룹이 발표한 지배구조 개편 방안. <현대차그룹>
◆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은 중장기 과제로 추진할 가능성
시장이 현대모비스의 사업분할 계획을 지배구조 개편과 연관 짓는 것은 2018년 기억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현대모비스를 분할한 뒤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추진한 경험이 있다.
현대차그룹은 당시 투자자들의 강한 반대로 현대모비스 분할을 포함하는 지배구조 개편 계획을 철회했는데 투자자들이 이번 현대모비스의 사업분할 계획을 보고 이를 떠올린 셈이다.
현대모비스 사업분할 소식이 전해지기 직전인 12일 현대차그룹이 포티투닷 인수를 발표한 점도 지배구조 개편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그동안 다른 대기업집단과 달리 상대적으로 인수합병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정의선체제 출범 이후 대규모 자금을 들여 지난해 미국 로봇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품었고 이번에는 포티투닷을 인수했다.
시장에서는 포티투닷 인수가 향후 자율주행 등 미래 핵심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자회사의 출범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바라본다.
포티투닷 인수가 현대차, 현대모비스, 현대오토에버 등 각 계열사에 흩어져 있는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관련 사업통합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지배구조 개편 방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 때도 정 회장이 직접 투자로 지분 20%를 확보하면서 향후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자금줄 마련을 위한 움직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단기 과제로 추진되지는 않을 것으로 바라본다.
현대차그룹이 올해 초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으로 공정거래법 상 일감몰아주기 이슈에서 벗어났고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철회로 일정이 조금 꼬였다는 점도 이런 전망에 힘을 보탠다.
정 회장은 올해 초 현대엔지니어링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구주매출을 통해 지분 일부를 현금화하려고 했으나 증시 부진에 따라 상장을 무기한 연기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정 회장은 현대엔지어링 지분 11.72%를 보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현대모비스 사업구조 변경이 지배구조 개편과 무관하다는 시선도 나온다.
송선재 하나증권 연구원은 “현대모비스의 이번 결정은 ‘불법 파견’ 논란을 벗어나기 위해 생산 전문 자회사를 새로 만들고 생산 안정화를 이루려는 일환에서 이뤄졌다”며 “결론적으로 이번 뉴스는 지배구조 이슈도 아니고 알짜자회사 분할을 통한 지분 희석도 아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