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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입은행 '자본위기', 이덕훈 왜 저항하지 않았나

이규연 기자 nuevacarta@businesspost.co.kr 2016-06-09 07: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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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출입은행 '자본위기', 이덕훈 왜 저항하지 않았나  
▲ 이덕훈 한국수출입은행장. <뉴시스>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은 수출입은행의 자본이 말라가는 위기에 직면하는 과정에서 왜 저항을 하지 못했을까?

이 행장은 조선업 구조조정에서 잘못된 판단을 내려 수출입은행의 자본건전성을 악화시켰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이 행장이 모든 책임을 짊어지기에는 억울한 측면도 있다는 동정론도 자리잡고 있다.

◆ 자본확충 받아도 안심할 수 없는 수출입은행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수출입은행은 같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비교해도 더욱 심각한 자본건전성 위기에 처한 것으로 진단된다.

기획재정부는 8일 국책은행을 위한 자본확충펀드와 별도로 1조 원을 9월 말까지 수출입은행에 현물출자하기로 했다.

이는 수출입은행의 자본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10.5%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다.

수출입은행은 1분기 기준으로 자기자본비율 9.8%를 기록했다. 국내 은행 가운데 가장 낮으며 금융감독원에서 제시한 감독기준 10%도 밑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국책은행 자본확충방안에 ‘시장 불안이 금융리스크로 전이될 경우 정부와 한국은행이 수출입은행 출자를 포함해 금융안정을 위한 다양한 정책수단을 강구한다’는 문구를 포함했는데 이 대목에서도 수출입은행의 자본건전성 악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읽힌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출입은행은 조선업에 대한 위험노출액(익스포저)만 17조6천억 원으로 자기자본 11조 원을 가볍게 뛰어넘는 수준”이라며 “중대형 조선사 가운데 한 곳의 여신이라도 등급이 하락하면 충당금 부담이 수조 원대로 불어나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 수출입은행은 어쩌다 이렇게 됐나

선수금환급보증(RG)은 수출입은행의 자본건전성을 악화시킨 요인으로 꼽힌다. 수출입은행은 조선사 전체의 선수금환급보증 11조 원 가운데 절반 이상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선수금환급보증은 조선사에서 배를 제때 만들지 못하게 될 경우 선주에게 받았던 선수금을 금융회사에서 대신 돌려주는 보증계약을 가리킨다. 조선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선수금이 고스란히 손실로 변하기 때문에 기업 구조조정을 쉽게 진행하기 어려워진다.

수출입은행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영상태 악화를 겪고 있는 조선사들을 대상으로 선수금환급보증을 크게 늘렸다. 2010년의 경우 대출 증가폭이 13조 원에 이르는데 당시 성동조선해양과 대선조선이 채권단 자율협약을 신청하면서 자금수요도 늘어났다.

수출입은행이 2009년부터 시작된 정책금융기관의 재편 시기에 실적을 늘리기 위해 선수금환급보증을 공격적으로 늘린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역대 수출입은행장들은 취임할 때마다 여신 규모를 늘리겠다는 목표를 언제나 밝혀왔다”며 “대출과 보증은 정책금융기관에서 정량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지표인 만큼 수출입은행도 선수금환급보증을 실적 성장의 수단으로 삼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수출입은행 측은 국책은행으로서 선수금환급보증을 어쩔 수 없이 늘려야 했다고 해명한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해양플랜트사업을 지원하고 조선사들도 수주량을 늘렸는데 시중은행은 리스크관리 문제로 선수금환급보증 발급에 소극적이었다”며 “누군가 보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출입은행이 총대를 멘 반동을 지금 맞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옛 지식경제부)는 2010년부터 해양플랜트사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지목하고 대규모 지원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국내 조선사들은 해양플랜트사업에서 기술력의 한계를 노출하면서 지난해 영업손실 8조5471억 원 가운데 약 7조 원이 이 분야에서 봤다.

  수출입은행 '자본위기', 이덕훈 왜 저항하지 않았나  
▲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이 1월26일 서울 영등포구 63스퀘어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한국수출입은행 주최 2016년도 주요기업 CEO 초청 간담회에 참석해 첫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이덕훈은 왜 저항하지 못했나


수출입은행이 자본건전성 위기에 직면한 데는 이덕훈 행장의 오판도 크게 작용한다.

이 행장은 올해 초 “성동조선해양은 삼성중공업과의 경영협력으로 구조조정 방향이 결정됐다”며 “곧 성과가 눈에 보이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성동조선해양은 최근 STX조선해양에 이어 법정관리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성동조선해양은 지난해 11월 이후 단 한척의 배도 수주하지 못했으며 구원투수로 보였던 삼성중공업도 수주절벽과 마주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성동조선해양에 약 3조 원을 신용공여했는데 충당금을 약 30%만 쌓아둔 것으로 알려졌다. 성동조선해양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수출입은행은 자본건전성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그러나 수출입은행 내부에서는 이 행장의 오판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자리잡고 있다는 반발 기류도 폭넓게 존재한다.

성동조선해양의 경우 2015년 5월에 채권단에서 법정관리 신청 여부를 논의한 적 있었다. 그러자 경남 통영이 지역구인 이군현 새누리당 의원이 이 행장을 비롯한 채권금융기관 CEO들을 국회의원회관으로 불러 자금 지원을 요청했고 수출입은행은 성동조선해양에 3천억 원을 긴급하게 지원했다.

이 행장은 지난해 말 한 인터뷰에서 “성동조선해양을 정리하면 통영 남부지역의 경제가 다 무너진다”며 “부실이 있는 조선사도 최대한 되살아나도록 지원하는 ‘연착륙’이 낫다”고 말했는데 정치권의 입김을 내비친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수출입은행의 자본건전성을 악화한 또다른 원인으로 지목되는 대우조선해양 지원도 마찬가지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은 최근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당시 최경환 경제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등으로부터 대우조선해양 지원에 대한 정부의 결정을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수출입은행은 산업은행과 함께 대우조선해양에 4조2천억 원 지원을 결정했다. 수출입은행은 1조6천억 원을 안았는데 결국 산업은행으로부터 최근 한국항공우주(KAI) 지분을 수혈받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 행장은 우리금융지주 회장 시절 대우건설과 대우인터내셔널 등의 구조조정 성공을 이끌어낸 적이 있다”며 “수출입은행장이 된 뒤 구조조정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데는 외부의 입김에 저항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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