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여당인 민주당이 반도체 등 첨단 산업 인력 확보를 목적으로 트럼프 정부에서 자리잡은 엄격한 이민 정책을 완화하는 데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 및 인플레이션 완화법 통과에 힘입어 핵심 산업 분야에 지원을 확대하며 이민법 개정을 통해 해외에서 전문 인력을 활발히 끌어들인다는 계획도 두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의 지원 강화로 글로벌 시장 진출을 확대하며 경쟁력과 영향력을 키울 수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미국으로 인재 유출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점은 불안요소로 꼽힌다.
14일 외국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바이든 정부와 여당인 미국 민주당이 이민법 개정을 통해 미국의 인력 부족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의회전문지 더힐은 “트럼프 정부에서 도입한 적대적 이민정책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인력난을 더욱 악화시켰다”며 “미국은 20년 만에 가장 심각한 노동인구 부족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구 증가율이 경제 성장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운 미국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이 이전부터 추진해 오던 이민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특히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등 그동안 미국에서 비중이 크지 않던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성장세가 더욱 빨라지면서 미국 정부 차원의 대응이 더욱 다급한 시점에 놓이고 있다.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목표로 하는 최소 520억 달러(약 68조 원) 규모 반도체 지원법이 최근 미국 의회를 통과해 조 바이든 대통령 승인을 받으면서 정식으로 법제화 단계에 들어갔다.
전기차와 배터리 등 친환경 산업에 4300억 달러(약 562조 원) 예산을 들리는 인플레이션 완화법도 최근 미국 상원에 이어 하원을 통과하며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 절차만을 남겨두고 있다.
잇따라 의회를 통과한 두 법안은 기본적으로 첨단 산업 중심의 제조업 활성화를 이끌어 경제 성장을 주도한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해당 산업 분야와 관련된 기업들이 지원 대상이다.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는 모두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강점을 갖추고 있는 첨단 산업 분야에 꼽히는 만큼 자연히 한국 기업들이 미국의 우호적 법안에 수혜를 볼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다.
삼성전자와 삼성SDI, SK그룹의 SK하이닉스 및 SK온,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자동차, 기아 등이 미국의 법안 통과를 기대하고 이미 대규모 투자 계획을 추진하거나 진행하고 있는 단계다.
이번에 미국 정부가 막대한 금전적 지원을 정식으로 약속하게 된 만큼 반도체와 전기차 공급망에 포함되는 한국 주요 기업들의 북미 지역 투자가 더 활발하게 늘어날 공산이 크다.
삼성과 SK, 현대차와 LG 등 한국 4대 그룹은 윤석열 정부 출범 뒤 일제히 국내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강조했다. 해외 투자 확대와 관련한 부정적 여론을 인식한 행보로 분석된다.
바이든 정부의 정책에 맞춰 한국 기업들이 국내가 아닌 미국 등 해외에 투자를 상대적으로 더 늘린다면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 성장이 위축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에서 새 법안을 통해 막대한 지원금과 세제혜택을 제공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주요 기업들의 해외 진출 확대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찾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이민법 개정까지 급물살을 탄다면 한국의 우수한 전문 인력들이 미국으로 대거 이직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어 중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 미국 수도 워싱턴D.C.에 위치한 의회 의사당. |
USA투데이는 바이든 정부가 이민정책을 대대적으로 개편해 기술 역량을 갖춘 인력을 수혈하지 않는다면 반도체 지원법은 실패에 크치고 말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취업비자를 받기 어려운 현실을 무시한다면 미국은 결국 핵심 산업에서 우수한 인재를 보유한 다른 국가들에 뒤처지고 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도 최근 논평을 내고 미국이 국가별로 이민자 수를 제한하는 등 정책을 폐지하지 않는다면 미국에서 자체적으로 기술 인력을 조달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비판을 제기했다.
더힐에 따르면 인텔과 글로벌파운드리, 삼성전자 등 주요 반도체기업은 7월 말 미국 의회에 과학기술 분야 인력의 이민을 장려하는 정책을 추진해 달라는 성명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 지원이 집중되는 반도체와 배터리산업에서 한국 기업들이 큰 영향력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자연히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취업을 하려는 인구도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민자의 미국 취업 장벽을 낮추는 법안은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 미국 하원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당초 하원에서 추진하던 반도체 지원법은 이민 정책과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상원에서 해당 법안에 반대하며 결국 이런 내용이 제외됐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이 공화당의 반대를 극복하고 반도체 지원법과 인플레이션 완화법 통과를 이뤄낸 데 힘입어 ‘마지막 퍼즐’로 꼽히는 이민법 개정에 다시 속도를 낼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으로 글로벌 반도체 및 전기차, 배터리 산업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것은 글로벌 경쟁력과 경제 성장 측면에서 단기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결국 자국의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두고 있는 만큼 한국 등 국가의 우수한 인재를 흡수해 빼앗아가는 데 속도를 낸다면 중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 기업에 악영향이 예상된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의회가 제조업 활성화에 실제로 성과를 이끌어내려면 트럼프 정부 시절부터 얼어붙은 이민법 개정과 관련한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며 “그러나 공화당의 반대를 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