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부와 여당인 민주당이 추진하는 인플레이션 완화 법안을 두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바이든 정부에서 추진하는 최대 7천억 달러(약 915조 원) 규모의 ‘인플레이션 완화 법안’을 두고 실효성과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플레이션 완화를 빌미로 미국 시민들의 세금 부담을 키우는 일은 합리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에 오히려 악영향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일 “인플레이션 완화 법안은 인플레이션을 완화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 정부와 여당인 민주당이 이를 통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백악관 연설에서 민주당을 통해 추진하는 친환경 투자 확대 및 법인세 인상, 의료혜택 강화 등 법안을 의회에서 조속히 통과시킬 수 있도록 힘써달라고 요청했다.
해당 법안은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이라 불리는 패키지 법안에 포함되어 있다. 법안 내용을 시행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은 기본 3천억 달러, 최대 7천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인플레이션 완화라는 목표가 ‘세계 평화’ 또는 ‘글로벌 민주화’와 같이 구체적이지 않고 폭넓을 뿐만 아니라 실현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미국 인플레이션이 최근 9%대로 상승한 원인은 통화정책 실패 등 매우 복합적 원인을 두고 있는데 완화 법안을 통해 이를 낮추려는 것은 물총으로 산불을 끄려는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법안을 시행하기 위해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다른 예산 감축이 아니라 법인세 등 세금 인상으로 조달한다는 목표를 내놓은 점을 두고 가장 날선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현재 인플레이션 심화를 이끌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이 소비자들의 수요 대비 기업들의 제품 및 서비스 공급 능력 한계라는 점을 고려하면 세금 인상은 최악의 선택지라는 것이다.
기업들을 대상으로 거두는 세금을 늘리면 투자와 고용이 그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고 제품과 서비스 가격도 인상할 수밖에 없어 오히려 소비자물가 상승세에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인플레이션 완화 법안에 포함된 친환경 인프라 투자 확대, 법인세 인상 등은 바이든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추진해 오던 공약에 해당한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이 인플레이션 완화를 명분으로 법안의 목적 달성과 크게 연관성이 없는 정책들을 패키지로 묶어 끼워놓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 의회를 통과한 반도체 지원 법안도 당초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에서 추진하던 공약을 대거 포함하고 있었는데 공화당 의원들의 반발을 고려해 법안 내용이 대폭 축소됐다.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은 법안의 구체적 내용보다 인플레이션 완화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워 해당 법안의 의회 통과를 촉구하는 여론전을 당분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주요 언론에서 이미 이런 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정부와 여당이 법안 통과에 당위성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미국 의회전문지 더힐은 “정부와 여당의 멍청함은 끝을 모르는 것 같다”며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가스라이팅’으로 사태를 해결하려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해 세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근거 없이 강조하고 의회에 법안 통과를 압박하는 일은 상대방의 판단력을 잃도록 만드는 가스라이팅 시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에서 추진하는 법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도 일각에서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인플레이션 완화 법안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긍정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의 예상 부족과 가계의 의료비 부담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뉴욕타임스는 정부와 여당을 지지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해당 법안이 실제로 인플레이션 완화를 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을지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기업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 완화 법안이 통과된다면 최근 미국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에도 다방면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미국에 전기차 배터리공장을 신설하는 기업들은 전기차 보조금 확대 등 공약에 수혜를 봐 미국 공장 가동에 따른 외형 성장과 실적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인세 부담이 커진다면 한국 배터리 3사는 물론 미국 공장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기업이 미국 진출 확대로 볼 수 있는 장점은 다소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백악관 연설에서 최저 법인세율 15%를 적용해 조세 부담을 회피하는 기업이 없도록 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법안 통과를 강력하게 촉구했다.
반면 월스트리트저널은 “정부가 지금은 기업들에 규제를 강화하기보다 느슨하게 풀어줘야 할 때”라며 “인플레이션 대응은 연방준비제도(Fed)에 맡기고 경제 성장을 지원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