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부가 EU 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됨에 따라 한국형 택소노미에도 원전 포함을 추진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화진 환경부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대통령실> |
[비즈니스포스트] 유럽연합 녹색분류체계(EU 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되면서 한국 정부도 원전을 친환경에너지에 포함시키려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한국의 원전 수출에 녹색불이 켜졌다는 희망적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EU 택소노미의 실제 내용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환경부는 오는 9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 택소노미)’를 확정해 발표하기 위해 작업 중인 것으로 22일 전해졌다. 7월 말에는 초안이 먼저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지난 18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한국형 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업무계획을 보고했다.
환경부의 업무계획은 새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에 맞춘 것으로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원전 최강국’, ‘원전 10기 수출’ 등을 공약했다.
윤석열 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지난 6일(현지시각)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원전을 EU 택소노미에 포함하기로 사실상 결론을 내면서 더욱 힘을 받고 있다.
정부는 탄소중립 등 국제사회의 기후대응을 주도하는 유럽연합이 원전을 친환경에너지로 분류한 만큼 국내에서도 원전을 친환경에너지로 분류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에 따른 것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 장관은 유럽연합에서 원전을 택소노미에 포함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던 때인 지난 6월부터 기자간담회 등를 통해 “원전이 친환경 녹색에너지로 분류되는 것은 국제적 추세”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하지만 유럽연합이 EU 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한 것이 원전 자체를 친환경에너지로 인정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EU 택소노미는 모든 원전이 아닌 특정한 조건을 만족하는 원전만 친환경에너지로 분류했다. 현실화 가능성이 거의 없는 조건을 달고 있어 사실상 원전을 불허한 것이라는 해석까지 일각에서 나온다.
EU 택소노미가 원전에 요구하는 조건은 △2045년 이전에 건설 허가를 받을 것 △2025년까지 사고저항성(ATF) 핵연료를 사용할 것 △2050년까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계획을 제시할 것 등이다.
모두가 기술적으로 무척 까다로운 조건들이다. 이에 유럽원자력산업협회는 EU 택소노미의 조건을 놓고 “택소노미에 따른 규제는 원전에 대한 실질적 투자를 막게 될 것”이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결국 EU 택소노미의 진정한 의미는 당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적으로 에너지 안보가 위협받게 된 상황에 대응해 2045년까지 원전 퇴출에 유예기간을 부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올해 2월 EU 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하자고 제안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등 영향으로 과도기적(transitional) 역할을 하는 기술로 원자력과 가스를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일 뿐이지 원전이 지속가능한 기술이기 때문은 아니다”라고 명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EU 택소노미가 원전 수출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만을 부각시키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7일 유럽연합의 결정을 놓고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원전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하는 것”이라며 “이번 유럽연합의 결정으로 체코, 폴란드 등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인 유럽연합 국가들에서 자금조달이 용이해져 원전 사업 추진에 우호적 환경이 형성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EU 택소노미를 바라보는 정부의 희망적 시선은 당장 한국형 택소노미를 마련할 때부터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국제 여론을 고려하면 EU 택소노미와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수준의 조건을 담아야 할텐데 현실적으로 따져 보면 국내 원전업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18일 대통령 업무보고 관련 브리핑에서 “EU 택소노미의 원전 기준을 국내 실정에 맞게 적용할 것”이라며 “사고저항성 핵연료라든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등 내용을 한국형 택소노미에 포함하겠다”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고저항성 핵연료는 현재 미국 웨스팅하우스에서 개발이 진행 중이나 아직 실용화되지 않은 기술이다.
세계 원전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꼽히는 웨스팅하우스조차 사고저항성 핵연료 개발을 놓고 상용화 일정조차 확정짓지 못해 2030년으로 상용화 목표를 늦춘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고준위성방사성폐기물 처리장 역시 현재 세계에서 핀란드, 스웨덴 등 극소수의 국가들만 운영을 시도하고 있을 정도로 만만치 않은 조건이다. 현재 건설 중인 핀란드 온칼로 방폐장은 지하 450m 암반층에 조성되고 있는데 부지 확정에만 30년이 걸렸다.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준위성방사성폐기물 처리장과 관련해 지난 21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미국, 러시아 등 전세계에 원전을 가진 모든 나라를 통틀어서 지금 딱 한 나라 핀란드가 30년 동안 지질 조사를 해서 내년에 좀 운영해 볼까 하는 정도”라며 “30년이나 지질조사를 한 까닭은 방사성폐기물을 보관할 10만 년 동안 단층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안정된 암반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