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현대백화점이 9천억 원 가까운 금액을 들여 통 크게 인수한 매트리스 제조기업 지누스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지누스가 올해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시장의 기대를 밑도는 실적을 냈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기업가치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지누스 인수로 현대리바트, 현대L&C를 비롯한 계열사들과 시너지를 내겠다는 청사진을 그렸지만 지누스 실적회복부터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15일 최근 넉달 사이 지누스 주가를 살펴보면 하락세가 뚜렷하다.
이날 지누스 주가는 전날보다 6.54% 내린 4만5050원에 장을 마감했다. 현대백화점이 지누스를 인수한다고 밝히기 직전인 3월21일(8만800원) 종가와 비교하면 하락폭이 44.2%나 된다.
현대백화점이 지누스를 인수할 때와 비교하면 지누스 주가의 하락폭은 더욱 심각하다.
현대백화점은 3월22일 기존 경영진이 보유한 지분(474만135주)과 지누스가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진행한 유상증자의 신주(143만1981주)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지누스를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총 투자금액은 8790억 원가량이다.
이 가운데 현대백화점이 구주 인수에 쓴 돈은 7590억 원이다. 1주당 금액으로 따지면 약 16만 원으로 당시 지누스 시세보다 2배 비싼 가격이었다.
현재 지누스 주가는 현대백화점이 구주 인수를 위해 산정했던 기업가치와 비교하면 3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현대백화점이 신주를 인수할 때 산정했던 기업가치(1주당 8만3800원)와 비교해도 절반 수준이다.
지누스 주가가 맥을 못 추는 까닭은 세계적 경기후퇴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 실적 부진 탓이 크다.
지누스는 올해 2분기에 연결기준 매출 2522억 원, 영업이익 142억 원을 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2분기보다 매출은 0.3%, 영업이익은 6.4% 늘어나는 것이지만 시장 기대치에는 한참 못 미친다. 증권가 컨센서스는 매출 3068억 원, 영업이익 256억 원이었다.
한국투자증권이 15일 지누스 분석리포트를 내며 목표주가를 기존 10만 원에서 7만5천 원으로 내린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정 회장으로서는 지누스의 실적 부진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현대백화점이 지누스 인수를 결정했을 때부터 인수 금액 9천억 원은 다소 과한 베팅이 아니냐는 말이 증권가 안팎에서 나왔다. 실제로 현대백화점의 인수합병 역사상 가장 큰 금액이기도 했다.
물론 인수합병에 매우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는 정 회장이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인 만큼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지누스가 최근 3년 동안 연 평균 영업이익 900억 원가량을 냈다는 점에서 이의 10배를 제시한 것은 합리적 수준의 가격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트리스 제조 및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다소 무리한 투자라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중저가 브랜드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지누스의 사업이 현대백화점 본업에 시너지를 주기 힘들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현대백화점그룹은 그룹의 4대 핵심 포트폴리오인 리빙사업부문의 성장을 위해 지누스 인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 지누스 기업가치가 하락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지누스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누스 인수 발표 당시 “현대백화점의 프리미엄 이미지와 구매력이 높은 탄탄한 고객층을 기반으로 중저가 위주의 지누스 사업 모델을 중고가 시장으로 확대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고부가가치 제품 기반의 수면시장 진출도 검토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누스의 현재 상황을 보면 정 회장이 중장기적 밑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지누스 본업에서 실적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 과제가 된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누스 내에 시너지 방안을 고민하는 별도의 조직을 꾸려놓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에서 지원자를 받아 6월 말에 팀을 완성했는데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다.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단기적 시각에서 지누스로 돈을 벌기 위해 인수를 결정한 것이 아니었다”며 “현재 시너지 전략을 고민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추이를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지누스의 실적 부진이 글로벌 물류망과 공급망의 문제 탓에 생겨난 것인 만큼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기업가치가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지누스는 전체 매출의 97%를 해외에서 내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미국의 거대 유통기업인 아마존과 월마트에서 나오고 있다. 아마존과 월마트가 과잉 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월부터 본격적으로 할인행사에 나선 만큼 지누스가 물량 유통에 숨통만 트면 자연스럽게 실적도 올라갈 수 있다.
김명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다시 부각되고 있는 미국 내 물류·공급망 교란 이슈를 반영해 지누스의 2022년, 2023년 실적 추정을 하향했다”면서도 “미국 내 물류·공급망 교란 문제만 해결되면 지누스의 실적과 밸류에이션(적정가치 수준)은 빠르게 회복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