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정부가 재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노조추천이사제에 소극적 입장을 보인다면 기업은행 사외이사의 임명 권한을 가진 금융위원회가 노조에서 추천한 이사를 임명하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
15일 기업은행 안팎에 따르면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취임으로 장기간 공석으로 있던 기업은행 사외이사 선임 절차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기업은행 사외이사는 3월 말부터 공석으로 남아 있는 상태다.
IBK기업은행 이사회는 은행장과 전무이사, 사외이사 4명으로 구성된다. 사외이사 가운데 신충식 삼일회계법인 고문과 김세직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가 3월 말 임기를 끝냈는데 후임 이사가 아직까지 선임되지 않았다.
사외이사 선임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기업은행 사외이사 임명 체계와 관련이 있다.
기업은행 사외이사는 기업은행장의 추천으로 금융위원장이 임명하는데 윤석열정부 출범과 맞물려 고승범 전 금융위원장의 거취가 불분명해지면서 지연된 측면이 있다.
게다가 새 정부의 첫 금융위원장에 지명된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한 달 동안 국회 인사청문회의 지연으로 임명이 늦어지면서 더욱 지체되기도 했다.
기업은행 노동조합은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에 기대를 걸고 있다.
노동조합은 올해 3월에 법조계와 노동계, 학계 출신 인사 3명을 사외이사 후보로 기업은행에 전달했다.
윤 행장도 노동조합의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최근 윤 행장은 윤석열정부의 국무조정실장 후보에서 낙마한 이후 해외 출장, 정기인사 단행 등 기업은행 현안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윤 행장은 내년 1월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노조추천이사 도입 문제도 매듭지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올해 1월 국회를 통과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라 8월부터 공공기관에 본격적으로 노조추천이사가 도입될 예정이기 때문에 윤 행장이 금융위원회에 노조에서 내세운 인사를 사외이사로 추천할 명분도 있다.
다만 윤석열정부가 노조추천이사제 확산에 거부감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은 기업은행에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을 어렵게 하는 부분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에 긍정적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민간으로 확대하는데 유보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추 부총리는 올해 4월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 “민간 부문에 노조추천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경영상 의사결정의 전문성·신속성 저해, 경영권·주주이익 침해 등 우려에 대해서도 종합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추 부총리는 이미 법률상 도입이 확정된 기관 이외의 공공기관에 노조추천이사제가 확대되는 것에 부정적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금융 공공기관 가운데는 서민금융진흥원, 신용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5곳이 법률상 도입이 확정됐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이러한 부정적 기류에 영향을 받아 윤 행장이 노조에서 내세운 인물을 사외이사로 추천하더라도 거부할 수도 있다.
기업은행 노동조합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노조추천이사제는 이미 수출입은행에서도 도입된 바 있기 때문에 도입에 큰 어려움은 없지 않을까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노동조합의 경영 참여는 이미 사회적으로 합의된 명제로 볼 수 있다”며 “그런 방향에서 명분이 있기 때문에 잘 되기를 바랄 뿐이다”고 덧붙였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