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백화점에는 365일 하루 24시간 일하고도 보수를 받지 않는 임원이 있다. 사진은 본점 전경. <롯데백화점> |
[비즈니스포스트] 하루 24시간, 365일을 일하고도 보수를 하나도 받지 않는 특이한 임원이 있다.
이 임원은 회사의 MZ세대와 소통을 담당하며 조직문화를 개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임원은 사업보고서나 기업지배구조보고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 회사의 중요한 공식 보고서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롯데백화점의 ‘김말랑 이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12일 롯데쇼핑에 따르면 롯데백화점은 2021년 초부터 올해 초까지 수평적 조직문화를 대변하기 위해 ‘김말랑 이사’를 주인공으로 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김말랑 이사의 특징은 보수를 받지 않는 특별 임원이라는 점이다. 일주일 내내 하루 24시간씩 근무해도 무리가 없다. 설사 그렇게 일한다고 해도 근로기준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법을 지키지 않아도 이 임원을 쓸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일종의 ‘캐릭터 임원’이기 때문이다. 실제 인간은 아니라는 뜻이다.
롯데쇼핑은 지난해 MZ세대 사원들의 의견을 경영진들이 청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열린 의사소통 채널 ‘주니어보드’를 각 사업부별로 운영했다.
롯데쇼핑은 주니어보드를 두고 “MZ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구성원들의 의견을 경영진이 직접 듣고 이에 답변하는 내용을 게시판에 공지하거나 동영상으로 제작해 전사적으로 공유하며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힘썼다”고 설명했다.
롯데백화점이 주니어보드를 운영하기 위해 도입한 것은 바로 ‘김말랑 이사’다. 롯데백화점 기업문화팀이 주관했다.
김말랑 이사는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이를 사내 그룹웨어 ‘말랑Talk’ 게시판에 공유하는 일을 맡았다.
백화점사업부 대표와 직접 소통하는 라이브 소통회인 '말랑TV'도 김 이사가 직접 주관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사내에 자유롭고 친근한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MZ세대 직원들에게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부여해 직원들의 참여도가 높았다”고 설명했다.
▲ 롯데백화점 '김말랑 이사'. <롯데백화점> |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논의만 이뤄진 것이 아니다.
MZ세대 사원들은 김말랑 이사에게 업무적인 궁금증도 많이 물어봤다고 한다. 상사에게 물어보기 곤란한 문제를 김말랑 이사에게 문의하면 김 이사는 이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상담해주기도 했다.
롯데백화점은 이를 통해 새로운 조직문화에 대한 의미를 재정립하는 시간을 만들어 MZ세대뿐 아니라 모든 임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김 이사는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를 재발견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한 바 있다.
김 이사는 지난해 사내 캠페인 형식으로 ‘말랑말랑 프로젝트’를 주관하며 “내년에도 같이 일하고 싶은 나의 상사를 자랑해달라”고 요청했다.
직원들이 회사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상사의 훌륭한 점과 관련한 사연을 메신저로 보내면 김말랑 이사는 이를 라이브 소통회에서 소개했다.
김 이사는 이렇게 소개한 사연 가운데 하나를 추첨해 한우세트를 선물로 증정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조직문화 개선과 관련한 구체적 내용은 공유할 수 없지만 MZ세대의 의견을 듣고 사내 문화에 반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말랑 이사는 현재 롯데백화점에서 휴직 중이다.
롯데백화점이 기존에 진행해온 김말랑 이사 프로그램은 중단하고 새로운 내용과 형식으로 업그레이드해 하반기에 MZ세대를 위한 새 프로젝트를 선보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김 이사가 새 프로그램에서도 역할을 맡을지 결정된 것은 없다. 그의 후임으로 새로운 임원이 올 수도 있다.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가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임직원들과 스스럼 없는 소통에 애를 쓰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김 이사보다 한 단계 높은 직급으로 새로운 임원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다.
롯데백화점이 조직문화 개선에 진심을 담아 김 이사가 시도했던 다양한 프로그램의 취지를 살려 제2의 김말랑 이사를 만들어낼지 주목된다. 남희헌 기자